[리뷰] 선(善)함에 조건이 있다면 - 영화 '좋은 사람'

글 입력 2021.09.06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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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경석은 다른 이들에게 자신이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담당하는 반에서 지갑 도난 사건이 발생하자 그는 범인으로 지목된 학생 세익과 피해 학생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제 반에서 일어난 일에는 본인이 '책임'을 질 일이라며 피해 학생에게는 다른 아이들 모르게 슬쩍 5만원을 주기까지.

 

그러나 진상을 밝혀나가던 도중 또 다른 사건이 터진다. 경석이 딸을 차에 두고 온 사이 차를 빠져나간 딸이 교통사고를 당하고 만 것이다. 심지어 도난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됐던 세익이 이번 교통사고에서도 범인 물망에 오른다. 경석은 혼란스럽다. 다시 한번 중립을 지키며 자신의 학생을 믿어볼 것인가, 혹은 앞뒤 가릴 것 없이 딸의 교통 사고를 파고들 것인가.

 

경석은 세익의 발자취를 좇으며 그를 조사해나간다. 그렇게 하나씩 사건의 내막이 밝혀지며, 경석은 피할 수 없는 진실을 마주한다.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지만 끊임없이 회피해왔던 하나의 사실. 이 모든 사건의 근본적인 문제이자 책임 소재는 경석 본인에게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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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초반부터 경석이 좋은 교사로 노력하는 모습을 부각해 보여주는데 그 모습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무참히 깨지고 만다.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사람이 되는 데에는 조건이 있었다. 그가 좋은 사람일 수 있었던 것은 늘 '본인이 결부되지 않는 상황'에서 였던 것이다.

 

자신을 탓하는 상황, 자신이 책임감을 느끼는 상황에서는 굉장히 날세운 자세로 공격성을 표출하며 건강하지 못한 방어 기제를 펼친다. 면전에 대고 아빠가 싫다는 티를 잔뜩 내는 딸에게는 본인도 자기 싫다는 사람은 싫다며 빨리 차에서 나가버리라고 소리치거나, 딸의 사고에 대해 자신을 탓하는 아내에게는 왜 모든걸 자신의 탓으로만 돌리냐고 네가 이렇게 굴어서 이혼했던 거라고 짜증을 낸다.

 

특히 딸에게 폭언하는 장면만 절묘히 녹화된 블랙박스로 인해 접근금지명령이 떨어지자, 심적 불안감이 극에 달한 경석은 지금껏 중립적으로 바라보러던 학생 세익의 멱살을 붙잡고 딸의 병실로 향하기까지 한다. 이것은 나 때문이 아니라고, 얘 때문이라고.

 

동시에 경석은 애초부터 딸을 차에 혼자 두고 온 것이나 세익에게 폭력적으로 접근한 것 등 문제 상황의 원인이 자신에게도 있었지만 이를 직면하길 두려워한다. '술'이 이러한 심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새로운 진실이 하나씩 밝혀질 때마다 경석은 끊임없이 소주를 병채로 들이킨다. 진실을 마주할 용기는 없다. 피할 수 있다면 계속 피하고만 싶다. 내 편이 아닌 진실은 마음의 무게로 숨통을 짓눌러 질식사하게 만드는 것일 뿐이다.

 

영화는 멈추지 않고 사건의 진실을 향해 다가간다. 그 과정에서 진실과 거짓의 문제를 대하는 태도는 인물마다 각기 다르다. 범인으로 지목 받은 세익은 그런 점에서 경석과 대척점에 있는 인물로 느껴진다. 세익은 자신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도 시종 무표정과 무응답으로 일관해 의심을 사지만, 도리어 경석이 세익에 대해 조사할 때에는 예상과 달리 근면성실하고 착실하게 자신의 미래를 준비해가던 아이임이 드러난다.

 

영화 마지막에 이르러 세익은 경석의 딸이 다친 것에 자신의 책임이 있다고 여기며 그 마음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벽돌로 제 머리를 내려친다. 그리고 병원으로 자신을 데려 온 경석에게 자신을 용서하지 말라며, 자신은 마땅한 죗값을 받아야 한다고 단호히 말하기까지. 사실을 직면하고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모습이다. 어쩌면 좋은 사람이란 스스로에게 진실된 사람, 아무리 그 진실이 두렵고 힘겹더라도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 아닐지.

 

이야기는 학교를 떠나는 경석과 다시 학교로 복귀하는 세익의 모습을 교차해 보여주며 끝을 맺는다.

 

*

 

영화는 연이은 사건 속에서 계속 '좋은 사람'으로 남고자 노력하는 경석의 내적 딜레마를 흥미진진하게 이끌어가며, 진실을 알고 싶으면서도 책임이 두려워 외면하고 싶은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진솔하게 풀어낸다.

 

그리고 그 가운데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과연 당신은 좋은 사람인가. 좋은 사람이란 대체 무엇인가. 결백을 주장하고 서로를 비난하거나, 혹은 죄책감에 썩어문드러가는 속을 붙잡거나. 진실과 거짓이 모호한 상황 속에서 '좋은 사람'의 얄팍함이 드러나고 마는 아찔한 서스펜스 극이었다.

 


[신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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