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기억과 이야기를 전달하는 향기에 관하여 - 슬리핑 듀(Sleeping dew)

글 입력 2021.09.06 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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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은 생각보다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감각이다.

 

향기는 맛있는 냄새를 맡으면 군침이 도는 것처럼 다른 감각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쇼윈도에 비치는 화려한 옷들은 보고 지나쳐도 디퓨저나 바디워시같은 제품들의 향기가 발목을 붙잡을 때도 있다. 무엇보다, 향기는 하나의 기억과 결부되어 추억의 강력한 촉매제가 되어준다.

 

그렇기에 누구나 잊지 못할 향기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향기는 내 인생 가장 첫 향수가 갖고 있던 향기다. 메이크업이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해보기 시작한 스무살 때, 성년의 날 선물로 향수를 받았었다. 향수 브랜드 ‘필로소피’의 ‘어메이징 그레이스’라는 이름을 가진 향수였다. 은은한 꽃 향기와 함께 갓 세탁해서 기분 좋게 버석버석한 커다란 이불 같은 상쾌한 향기가 코에 맴돌았다.

 

어쩌면 그 이후로 꽃향기와 깨끗하게 빨린 면의 향기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내 것'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게 되었던 그 향기가 그대로 나의 취향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마음에 들었고, 그 향수를 뿌리고 나면 진짜 어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꽤 큰 편이었던 향수병 한 통을 다 비울 때까지 매일같이 뿌리고 다녔다. 그만큼 오랫동안 잊지 못하고 있는 향기다.

 

향기에 관한 개인적인 추억을 서두부터 왜 늘어놓았냐 하면, 이 향기를 떠올리게 하는 향을 다시 만났기 때문이다. 바로 향수 브랜드 '오브뮤트'의 '슬리핑 듀'라는 향수다. 오브뮤트라는 브랜드의 이름은 영어 단어 'of'와 'mute'를 합성해 만들어진 것으로, 소리 대신 향기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정말 적절하지 않은가. 이 향수를 통해 나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문득 궁금해져서, '어메이징 그레이스'와 '슬리핑 듀'에 들어 있는 향기를 비교해 보았다. 은방울꽃의 향인 '뮤게'와 '머스크'의 향기가 공통적으로 들어 있었다. '슬리핑 듀'의 향기는 처음부터 나의 추억을 되살려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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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슬리핑 듀'가 나에게 개인적으로 일깨워준 이야기 말고, 원래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그리스 신화의 님프들에 관한 이야기다.

 

'슬리핑 듀'는 은방울꽃의 향을 담았는데, 이 은방울꽃은 태양의 신 아폴론의 손에서 탄생했으며 자신의 님프들이 향기롭고 부드러운 땅을 밟을 수 있도록 융단처럼 은방울꽃을 바닥에 깔아주었다고 한다. 낭만적이기 그지없는 이야기가 이 향수에 담겨 있었다.

 

특히 잠자는 님프들의 몸에 배인 새벽 이슬과도 같은 향을 담아내고자 했다는 것을 알고 나니, '슬리핑 듀'의 향을 나의 잠자리에 더하고 나면 괜히 님프가 된 것 같은 마법같은 착각에 빠지게 되었다는 고백은 덤이다.

 

이렇듯 향기는 누군가의 추억을 불러일으키고, 괜히 한 번 더 주목을 끌어 관심을 갖게 한다. 늘 그렇게 여겨왔기에 다양한 향기를 즐기는 사람이었지만, 향기가 음성이나 글자의 도움 없이도 충분히 훌륭한 이야기의 전달자라는 건 '오브뮤트'라는 브랜드를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더불어 향기가 품고 있는 이야기를 알게 되면, 그 향기를 더 깊숙이 즐길 수 있다는 사실도 직접 몸으로 체험하며 처음 깨닫게 됐다.

 

단순히 나의 기분과 옷차림에 맞추어 향을 더한다는 생각으로 향수를 사용해오고 있었다면, 오브뮤트의 향수를 통해 향기가 가진 고유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는 건 어떨까. '슬리핑 듀'를 통해 내가 한밤중 그리스 신화의 님프들 곁에 누워 잠들었듯, 눈에 보이지 않는 향기가 눈에 보이는 나의 공간까지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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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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