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벌거벗은 미술관

글 입력 2021.09.05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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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의 <벌거벗은 세계사>를 즐겨본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비롯해 세계사에 대해 잘 모르지만, 잘 알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던 내게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큼직큼직한 사건들은 역사의 흐름을 익히는 데 꽤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 사건으로부터 발발된 결과가 이것이구나, 와 같이 사건들을 연결하는 눈이 생기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따라서 책 <벌거벗은 미술관>을 처음 접했을 때, 이와 같은 책이 되어주기를 내심 바랐다. 이 책을 통해 미술사의 이모저모를 연결할 수 있는 시야를 가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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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나도 아르카디아에 있다"라는 문장과 함께 시작한다. 죽음과 고통이 없는 낙원, 아르카디아. 하지만 이 문장이 쓰여있는 곳은 다름 아닌 석관 위였다. 책의 시작과 함께 등장하는, 죽음이 없는 곳에서 죽음과 함께 적혀있는 '아르카디아'라는 단어를 통해, 저자는 미술의 운명 역시 이와 같다고 말한다. 아름답고 고귀해 보이는, 고귀하다 여겨지는 미술 작품들도 알고 보면 그 속에 이해관계를 품고 있다고. 따라서 그 속에 숨은 반전을 파헤쳐 보고자 한다며 책의 의의를 밝힌다.

 

이 같은 담대한 포부에 걸맞게 책은 1장부터 꽤 과감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바로 '고전 미술'의 비밀을 낱낱이 파헤치고 있기 때문이다. 고전 미술이라 하면,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의 미술 즉, 기원전 8세기에서 서기 5세기까지의 서양미술. 하지만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던 그리스 미술이 진짜 고대 그리스의 작품들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그리스 작품이라고 알고 있는 작품들은 대부분 사라진 지 오래, 그리스 미술을 좋아하고 추종했던 로마인들이 만든 복제본을 우리는 오랜 시간 동안 '고전 미술'이라 여겨왔던 것이다. (pp.20-23)

 

새하얀 대리석 조각상 역시, 최초의 모습과는 상이했을 것이라 말한다. 조각상이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분명한 색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며 색이 날아가고 대리석의 표면이 그대로 드러난 형상으로 남아, 우리가 그 모습을 감상하고 있을 뿐이지, 텅 비어있는 눈 속에도 분명한 초점이 있었다는 사실은 퍽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나 혼자만 이러한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 <조각 = 새하얀 대리석 조각>이 일종의 공식으로 받아들여졌다니 말이다. 그렇기에 그 후예들이 남긴 조각 역시 새하얀 대리석 표면을 그대로 간직한 형상을 띠게 되었고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져, 현대를 살아가는 조각을 감상하는 사람들에게마저 동일한 공식이 적용되게 되었다 생각하니, 실로 대단한 믿음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pp. 25)

 

조각상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이뿐만이 아니다. (사실은 모방품이지만) 고대 조각상들을 보고 있으면, 굉장한 몸짱이 아니면 조각상의 모델이 될 수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만들기 힘들다는 王 자를 그들에게서는 너무나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 당시에도 식단 관리라는 것이 존재했던 것일까? 서로의 몸매를 비교해보며, 중량 대결을 벌였던 것일까?

 

책에 따르면, 이는 당시의 그리스 사회의 반영물이라 말한다. 당시 그리스 사회는 전쟁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었다. 그렇기에 무엇보다도, 그리스에서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줄 수 있는 전사들이 무척 중요한 자원이었다. 건강한 육체는 이를 대변하는 가장 직접적인 증거로서, 그리스에서의 스포츠 역시 일련의 전사 양성 과정이었다고 한다. 이 같은 관점이 작품에도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육체미를 칭송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투영되어 그들을 우상시하는 작품들이 만들어진 것이고 나아가, 실제보다 더 인간의 몸을 이상화시켜 '신의 옷'을 입힌 작품들이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개인적으로 이 같은 연결고리를 보며 과거든 현재든, 사람들은 그 시대 자신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들을 한 데 모아 신의 형상으로 구현해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은 신의 세계도 인간이 없으면 존재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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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책의 2장은 미술 작품 속 '웃음'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있으며 3장에서는 박물관의 탄생사, 마지막 4장에서는 코로나-19 시대 속 미술의 역할을 다루고 있다. 1장을 통해 살펴볼 수 있었던 것처럼, 책의 전반적인 구성이 개별적인 미술 작품이 아닌 미술사의 흐름 속에서 특정한 주제들을 풀어내는 것이다 보니 마치 연구 논문을 읽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에도 학창 시절부터 박물관, 미술관 가이드를 가장 재미있게 하는 학생으로 유명세를 치렀다던 저자의 스토리텔링 덕분에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흥미롭게 각 장의 주제를 탐구할 수 있었다.

 

책 <벌거벗은 미술관>을 읽기 전까지, 미술사의 달인이 되기 위해서는 미술 작품들만 깊게 분석하고 이해할 수 있으면 될 것이라 상상했었다. 하지만 미술사 역시 하나의 역사적 흐름이기 때문에 결국 그 시대를 이해하고 시대를 분석하는 통찰력 있는 시각이 없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다못해 조각상에 표현된 근육에도 의미가 있기 마련인 것을, 그 의미는 단지 작품을 하루 종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는 발견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포괄적인 배경지식을 갖추고 있는 저자의 방대한 지식에 매 순간 감탄했다.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를 풀어가기 위한 자료들을 수집 및 정리하여 글로써 풀어낸다는 것은 진심으로,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에. 그 대단한 작업을 헤쳐나간 저자를 향해 깊은 존경의 마음을 전하는 바이다.

 

책 <벌거벗은 미술관>은 미술사를 향한 호기심을 가장 적절하게 자극해 주는 책이었다. 너무 가볍지도, 그렇다고 너무 무겁지도 않은 주제를 통해 미술사를 접근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고 익숙해서 궁금해보려 하지도 않았던 부분들에 대해 살펴볼 수 있어 매우 흥미로웠다. 미술사에 대한 관심을 어떻게 뻗어나가면 좋을지 망설이고 있다면, 본 책이 꽤 좋은 가이드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훌륭한 가이드와 함께하면, 어디부터 살펴봐야 좋을지 모를 박물관이 꽤 즐거운 탐험이 되는 것처럼!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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