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마술 같은 미술 속 인간적 매력에 빠지다 - 벌거벗은 미술관 [도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미술 이야기
글 입력 2021.09.06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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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본 -벌거벗은미술관_입체띠지.jpg

 

 

 

들어가며: 양정무의 책 <벌거벗은 미술관>



책 <벌거벗은 미술관>은 다양한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미술사를 풀어내는 우리나라 최고의 미술 안내자, 양정무가 쓴 미술 에세이이다. 총 4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장 고전은 없다

2장 문명의 표정

3장 반전의 박물관

4장 미술과 팬데믹

 

각 장의 제목부터 읽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고전’이 지금까지 이야기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터인데 애초에 ‘고전은 없다’고 말하고, 미술 작품 속에서 ‘표정’, 그것도 ‘웃는 얼굴’을 중심으로 파헤쳐 보는 이야기는 새롭게 느껴졌다. 게다가, 박물관에는 어떤 반전의 역사가 존재하며 팬데믹 시대에 미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은 무엇일지 궁금했다.

 

고전미술의 신화부터 문명의 표정, 박물관과 미술관의 뜨거운 역사, 팬데믹과 미술까지 책에 다루는 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주제와 관련한 자잘한 질문과 함께 펼치는 미술 이야기는 꽤나 흥미롭고 간결하며 흡입력 있다.

 

 

생명 속에 죽음의 그림자가 있고 

에덴의 동산에 선악과가 있듯 

아름다운 미술에도 늘 그늘이 존재한다

 

- 프롤로그에서

 

 

작가는 반전의 모습을 가진 미술 이야기를 펼치기 위해 과감하게 거대한 질문을 던진다. ‘고전미술이란 무엇인가’ ‘미술은 문명의 표정이 될 수 있는가?’ ‘미술관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그리고 이러한 거대한 질문을 안고 책을 읽다 보면, 생각을 뻗어 이어나갈 수 있는 역사적인 ‘맥락’이 생긴다. 어쩌면 과거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포괄하여 미술의 중요한 맥락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가치 있다. 그럼, 각 장마다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자세히 살펴보자.

 

 

 

들여다보며: 반전을 거듭하는 마술 같은 미술 이야기


 

1장에서는 태초의 미술, 고전미술이 실제로 어떤 것인지 ‘출생의 비밀’과 그것의 신비화 과정, 그리고 고전미술이 한국에 소개되던 순간들까지 살펴본다.

 

먼저 고전의 어원을 밝히는 것으로부터 본격적인 고전미술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고전의 어원은 라틴어 ‘클라시쿠스’로 최상의 클래스, 즉 최상의 계급에 속한다는 의미였다. 중세 시기에 이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이 시기 주로 라틴어로 쓰인 중요한 문헌을 의미했다. 라틴어 문헌의 상당수의 기원이 고대 그리스였으며 이때부터 클래식의 의미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헌, 더 나아가 역사 전체를 포괄하는 용어로 쓰이게 된다. 이때, 클래식 또는 고전이라는 용어 속에 그리스 로마의 것을 최상의 것으로 보는 인식이 생기면서 ‘그리스 로마 시대의 작품=고전미술’이 성립되기 시작한 것이다.

 

18세기 당시 고전미술에 대한 예찬은 정말 대단했다. 심지어, 고전 미술의 아름다움은 가장 완벽한 인간, 가장 완벽한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자리 잡혔다. 그중 파르테논 신전은 아름다움이 특정한 법칙에 의해 결정된다는, 미의 결정론의 극치를 보여주는 예시이다.

 


파르테논 신전.jpg

 

 

그러나 20세기부터 미술사학이 고도화되면서, 우리가 ‘고전’이라 여겼던 그리스 로마 시기의 작품들이 알고 보면 복제본이거나 고전기에서 한발 떨어진 시기에 제작된 작품이라는 점이 실증적으로 밝혀지게 된다.

 

이렇듯 고전-그리스로마-페르시아 전쟁-파르테논 신전-미의 기준-신격화까지, 고전이라는 어원에서부터 신격화되는 역사의 흐름을 이어나가다 보면 우리가 품고 있는 미에 대한 고정적인 생각이 착각이나 허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동시에 미술이라는 것은, 어쩌면 몸과 마음 모두 불완전하다고 생각한 인간의 시선에서 완벽하다고 느낀 존재, 신에 대한 동경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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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에서는 웃는 표정을 역사적으로 추적한다. 막상 미술 작품 속 표정을 추적하다 보면, 웃음 짓는 표정이 그리 많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기별로 대표하는 표정이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같은 시기에 공통적으로 특징지어지는 사회·문화적 분위기가 있고, 그에 맞게 인류의 정신을 투영시키거나 때로는 숨기기 위해 예술가들은 표정 하나에도 나름의 의미를 담았다는 점에서 그렇다.

 

고대 문명의 어색한 입가의 미소는 생명의 충만함을 예찬하는 의미로 새겨졌으며, 그리스 고전기에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침착하고 경직된 모습의 관념화 이상화된 인간 형상을 조각했다. 중세 시대부터 웃음을 긍정하는 기록이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르네상스에 이르러서는 개성을 드러내고 자연스러운 웃음이 등장하며 그림에는 생동감이 느껴진다.

 

한편, 웃는 표정을 계속 유지하기란 어렵기 때문에 웃는 얼굴을 그려내는 것은 화가 자신의 관찰력과 그림 실력을 보여주기 위한 가장 유리한 주제이기도 했다. 그래서 많은 화가들이 다양한 표정과 감정을 연구했는데, 대표적인 인물의 예시로 다빈치가 있다. 다빈치는 인간의 표정을 관찰하고 해부학을 연구하면서 안면 근육의 움직임과 구강 구조를 면밀히 분석했는데, 집요한 연구 끝에 만들어낸 결과물이 바로, <모나리자>의 은은한 미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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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서 화가는 다양한 감정이 담긴 얼굴에 주목하게 된다. 그리고 어떤 특정한 목적을 인물의 표정에 드러내기도 한다. 때로는 절대자로서 위엄을 드러내기 위해 또는 구체제의 권위에 도전하고 풍자하기 위해 말이다. 현대에 와서는 표정에 더 다양한 의미가 덧입혀지기 시작한다. 웃음에도 진짜와 가짜가 나뉠 정도로 개인 내면의 감정과 외부의 표정 사이의 간극이 극대화된 시대에 살고 있으며, 표정에 담긴 다양한 감정을 수치화하는 ‘얼굴 행동 코딩 시스템’도 등장하였다.

 

이렇듯 웃음에도 역사가 있으며, 웃음에 담기는 의미와 사회문화적 시기에 따라 그림의 이미지와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게 느껴진다는 점이 정말 흥미롭다. 막상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각들의 표정을 들여다보니 대개 억제되고 절제된 감정의 표정들이 많이 보여 살짝 슬프게 느껴지기도 했다. 끝으로 ‘우리 문명의 표정이 보다 따뜻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는 작가의 말에 끄덕이며 당분간 박물관 또는 미술관에서 마주하는 그림의 표정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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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에서는 박물관의 역사를 추적한다. 박물관 또는 미술관에서 우리는 앞서 말한 웃는 표정의 그림을 찾아보기 드물 정도로 대개 무거운 표정의 그림들을 많이 마주하게 된다. 어쩌다 박물관은 무겁고 어려운 곳이 되었는지, 그 역사를 추적해 보며 앞으로 미래의 박물관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볼 수도 있다.

 

 

박물관은 사회와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고, 공중에게 개방되는 비영리의 항구적인 기관으로서, 학습과 교육, 위락을 위하여 인간과 인간의 환경에 대한 유형·무형의 증거를 수집, 보존, 연구, 교류, 전시한다.

 

- ICOM 박물관 윤리강령

 

 

위 정의에 따르면 박물관은 꽤 좋은 목적으로 지어진 공간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박물관은 마냥 긍정적인 목적과 이념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실상은 어두운 역사의 내면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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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의 위계를 정하는 기준으로 고전미술을 숭배하였던 18세기 당시, 고전 미술품은 국력과도 같았다. 그렇기에 위대한 고전 미술품을 뺏고 빼앗아 ‘그들의 것’으로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나폴레옹이 있다. 그는 혁명 이념의 수호자라는 명분으로 유럽을 정복해 나가는데, 그의 원정으로 이탈리아의 미술품 중 600여 점을 선별해 프랑스 파리로 보내어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다. 참담한 정복 전쟁 속에서 벌어진 부당한 미술품 갈취가 결과적으로는 박물관의 시대를 열었다니,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이렇듯 박물관과 미술관의 시작은 결코 선하지 않았다. 국가적 자부심을 과시하고 문화적 전통과 위엄을 보여주기 위한 공간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영국의 네셔널 갤러리, 즉 일반 국민에게도 열린 공간이 주어졌다는 점은 눈에 띌 만한 혁명이라고 볼 수 있다.

 

이때 19세기 당시 정치가 토머스 와이즈가 말한 ‘미술에 대한 정의’가 인상 깊다. '미술은 사치가 아니라 문명화된 삶의 본질이며, 강력한 만큼 보편적인 언어이다.' 이 때문에 그는 미술이 몇몇 소수의 특권층에 한정된 세계가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되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들이 ‘국력’이라는 국제주의적인 목적을 앞세우는 반면, 어쩌면 그는 미술의 가장 본질적인 측면을 근거로 하여 박물관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본질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해당 대목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의 박물관의 존재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만든다. 양정무 작가는 미래의 박물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새로운 인간성과 아이디어를 촉발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라면 박물관과 소장품이 꼭 유물이나 미술품에 한정되지 않아도 좋다.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대목이다.

 

결국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마주하는 작품이란 인간의 체온과 손길이 닿은 인간의 창조물이며, 그것을 통해 자극을 받고 사유할 수 있게 되니까 말이다. 실제로 박물관과 미술관에 전시되는 작품의 종류와 전시의 형식은 여러 가지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박물관과 미술관이 어떻게 역동적이고 변화무쌍한 공간으로 변하는지,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고 즐겨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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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에서는 팬데믹 속 미술의 분위기 및 변화를 그려낸다. 이때 중세의 흑사병과 20세기 초의 스페인 독감을 예시로 들어 인류가 이 시기를 어떻게 극복해 나갔는지 미술을 통해 살펴봄으로써 코로나19 이후의 미래의 모습을 고민해 본다.

 

죽음이 도처에 널린 시대에 사람들은 전염병이 신의 분노라 생각했고 종교에 더 깊이 의지하고 내세의 구원을 바랐다. 특히 흑사병 시기 기적을 발휘하는 성모상을 안치한 오르산미켈레 성당은 피렌체인에게 구원의 성지로 추앙받았는데 당시 조성된 종교단체의 기금으로 성당으로 개조하고 외관을 대대적으로 꾸미는, 일종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이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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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책<벌거벗은 미술관> p.239 - 오르산미켈레 성당 외부 전경

 

 

결과적으로는 오르산미켈레 성당이 위치한 이 거리를 거닐며 많은 예술가들이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는데, 가장 대표적인 예술가로 미켈란젤로가 있다. 재난의 상황에 만들어진 돈으로 예상치 못한 멋진 조각품의 등장이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지만 그게 또 다른 위대한 예술가를 탄생시키는 영감이 되었다는 점에서 예술이 주는 힘이라는 생각을 했다.

 

엄청난 팬데믹의 공포 속에서도 예술의 꽃을 피워나간 예술가들도 있다. 스페인 독감으로 목숨을 잃은 에곤 실레와 에드바르 뭉크가 대표적이다. 둘의 공통점은 그림을 통해 고통에 대한 슬픔과 아픔을 스스로 치유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여기서도 팬데믹 속 예술이 주는 힘이 역설적으로 설명된다. 예술은 자체로 치유, 위로, 영감, 자극의 힘을 지니며, 이것이 바로 팬데믹과 같은 재난의 상황 속에서도 예술이 더욱 꽃 피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덮으며: 인간에게 미술이란 무엇인가



위대한 명작이나 걸작은 실수라고는 있을 수 없는 완벽한 작품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고전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나 박물관 미술관에 대한 신비화 또한 이러한 심리적 배경에서 만들어졌다고, 작가는 말한다.

 

앞서 본문을 통해 살펴본 미술의 역사는 도리어 실패와 미완성으로 이루어진 고뇌와 좌절의 역사였다. 새로운 변화, 혁신, 진보의 이면에는 인간적인 고민, 번민, 역경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위대한 예술도 인간은 실수를 하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니, 실망보다는 미술이 가진 인간적 매력에 한층 더 빠져들기를 권한다.

 

끝으로 작가가 결국 던지고 싶었던 질문은, ‘인간이란 무엇이고, 인간에게 미술이란 무엇인가’이다. 이 질문과 함께 ‘예술가들이 감동적인 이유’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았다. 예술가들은 인간으로서 어쩔 수 없이 겪는 일상적 번민을 예술로 승화시킨다는 점에서 위대하다.

 

인간은 늘 방황하고 실수하지만 다시 도전해서 새로운 변화를 일구어낼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인간적인 고민과 빛나는 도전을 향해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격려하고 감동받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흐르고 있는 역사 속에서 예술로 꽃피우고 있을 인간의 끊임없는 도전을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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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송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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