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울의 서쪽 - 한양도성 순성길 ⑵ [공간]

파란만장한 근대사와 평화로운 자연
글 입력 2021.09.02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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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에 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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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 정상에서 내려오다 보면, 한양도성의 축조 과정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는 야외 전시장을 만난다. 성을 쌓아본 경험이라곤 해변에서 손등 위로 봉긋하게 올린 모래성밖에 없을 우리는 성벽의 견고함을 어떻게 구현해내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군맹무상(群盲撫象)이라는 사자성어처럼 지레짐작하여, 그저 평평한 바위를 가져다 쌓아서 만드는 것만을 떠올릴 뿐이다.

 

하지만 여러 사람이 밀어도, 어떤 무기가 밀치는 시도를 해도, 비바람과 같은 악천후에도 끄떡없이 버텨야 한다. 이를 위해 성벽이 올라갈 곳의 기반을 다지고, 돌 중간중간에 아교 역할을 하는 흙을 다져 넣고, 사람 키보다 높이 쌓기 위해 균형을 잡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결실되어 내부가 드러난 성벽을 보며, 18km나 되는 둘레에 산을 오르내리고 벽돌을 나르며 일을 했을 당시 인부들의 땀 내음이 코를 스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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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숭례문이 화마로 소실된 지도 벌써 13년이 흘렀다. 필자는 숭례문에 대해 기억 하나가 있다. 불타기 하루 전날, 숭례문을 한 블록 떨어져서 보고 ‘다음에 봐야지’ 하며 그냥 지나친 것이다. 다음날, 전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했던 순간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비록 숭례문은 다시 만들어졌지만, 오래된 건축물이 주는 특유의 우아미가 다소 부족하여, 그때의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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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에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정동이다. 끝까지 걸으면 연인이 헤어지고 만다는 소문이 있는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뒤편으로 오면 된다. 옛 정취를 그대로 살리는 동네인 정동에 있으면 고풍스럽고 야트막한 벽돌 건물이 나무 그늘과 함께 자신을 에워싸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정동에는 각국의 대사관, 특히 고종이 도망쳤던 구 러시아공사관도 남아 있다. 애석하게도 필자가 갔을 때는 복원 중이어서 외관조차 볼 수 없었다. 이외에도 배재학당과 이화학당, 신문사, 정동교회 등 한국사 교과서에서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공간이 나온다.

 

본격적으로 외국 문물이 들어오며 이전과는 다른 패러다임이 필요했던 개화기, 한복과 양복, 조선인과 외국인이 공존했던 이곳 정동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남아 있는 사진만으로 상상력을 발휘해서 과거의 모습을 눈앞에 그려내야만 할 때는, 옛날을 간접적으로만 접할 수밖에 없는, 많지 않은 나이가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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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을 벗어나 돈의문, 경희궁을 지나면 인왕산 입구에 다다른다. 쉬운 줄 알았던 남산의 습격으로 다리에 힘이 풀렸고 해도 뉘엿뉘엿 서쪽으로 넘어가고 있었기에, 둘째 날의 여행은 이 정도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2021년 6월 6일(3일 차)

사직단 ~ 인왕산 ~ 윤동주문학관 ~ 북악산 ~ 북대문 ~ 와룡공원

8.32km, 2시간 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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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순성길 완주까지 마지막 관문이 남았다. 인왕산과 백악산, 두 개의 산을 넘어가는 일이었다. 해발고도가 350m도 안 되는 산이니 두 개 정도는 가볍게 넘지 않겠냐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서울의 산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둥근 암봉이 주를 이룬다. 그 때문에 산 정상까지 이르는 길이 짧아, 경사가 급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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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가기 위해서 구태여 산을 넘지 않아도 되는 우리는 왜 산에 오를까? 산이 거기에 있기에 오른다고 심드렁하게 대답한 모 탐험가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무엇을 ‘위해’ 쉬지 않고 자신을 채찍질해야 하는 산 아래와는 다르다. 산 위를 오른다는 것은 오히려 목적성을 내려놓는 행위이다.

 

정상 정복이라는 거창한 목표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 건강과 행복, 즐거움을 위한 수단이 되어 버리는 곳. 누군가와 같이 걸으며, 높이 올라갈수록 넓게 펼쳐지는 전망을 보며, 잠시 현실을 잊는 곳. 산에서는 그 누구도 빠르게 달릴 수 없다. 잠깐이나마 멈추고 싶어서, 우리는 산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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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고, 나무는 점묘화의 점처럼, 건물은 개미처럼 보인다.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고서는 닿지 않을 정도로 떨어져 있는 거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작은 세계에 내가 살고 있다. 하물며 우주에서 바라본 나는 얼마나 작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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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다시 한양도성을 따라 내려오면 창의문에 닿는다. 이 근처에 필자가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인 윤동주문학관이 있다.

 

상수도 가압장을 리모델링한 이곳은 작지만 내실 있게 꾸며진 전시실과 더불어, 굴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영상실에서는 윤동주의 생애를 다룬 짧은 다큐멘터리를 상영한다. 20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의 관람을 마치고 나면, 이어 위층의 카페에 올라가 차를 마시며 산 아래로 펼쳐진 서울을 바라본다. 윤동주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가져가 함께 읽으면 더욱 좋다.

 

마침 이날은 윤동주문학제를 하고 있었다. 문학관 주변으로 축제를 알리는 안내 포스터와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필자는 다음 산을 올라야 했기에 금방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지만, 오랜만에 문학관에 다시 오게 되어 반가웠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인의 숨결을 서울 한복판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일지도 모른다. 데이트 코스로, 또는 혼자 사색할 장소로 이곳보다 좋은 장소는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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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문을 지나면 백악산 탐방로가 시작된다. 산을 두 개째 오르면 뒤늦게 깨닫게 된다. 아... 남산은 산이 아니었구나... 남산은 올라온 계단 수를 낙서해놓을 여유라도 줬지, 백악산은 난도를 증명하듯 사람도 거의 없고 위를 향하는 계단만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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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까지 가는 길이 보수 공사 중이어서 정상을 찍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크나큰 위안이 되었다. 중간까지 갔다가 북대문 쪽으로 성벽을 따라 내려왔다. 백악산의 풍경은 인왕산의 그것과는 또 달랐다. 빌딩 숲이었던 광화문이 산 능선에 가로막혀 보이지 않고 낮은 건물 위주의 서울 중심부가 메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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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대문인 숙정문을 지나 더 내려가다 보면 말바위안내소가 나오고, 여기에서 북(北)에 해당하는 스탬프를 받을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스탬프를 받는 방법을 글에서 언급한 적이 없다. 동, 서, 남, 북대문에 가면 도장이 있고, 길을 알기 위해 들고 다녔던 지도에 스탬프를 찍는 칸이 있다. 네 곳을 모두 인증하면 마지막 안내소에서 완주 기념 배지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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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두 개를 넘은 직후에 받은 배지여서 그런지 더 감격스러웠다. 평상시에 운동을 잘 하지 않아서 완주를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었는데 삼 일에 나눠 걸으니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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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배지를 받았다고 하여 끝낼 수 없었다. 첫날 시작했던 지점인 와룡공원까지 20분 정도 더 남아 있었다. 와룡공원까지 남은 길도 산길이었지만 미션을 모두 완수한 후의 발걸음은 상당히 가벼웠다. 기분 좋게 시작점까지 무사히 돌아왔다.


**

 

지방에서 나고 자란 필자는 서울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고 볼거리도 풍부하고, 생활 여러 면에서 편리한 대한민국 제1의 도시. 필자가 살았던 고향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했고.

 

처음 몇 년은 서울의 모든 것을 누리며 잘 지냈다. 시간이 지나며 점차 서울살이에 적응해 나갈수록 환상은 옅어지고 현실이 엄습하며, 서울은 살기 좋은 곳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해야 하는 도시로 여겨졌다. 착한 친구들도 많이 만났지만, 그만큼 감당해야 할 이상한 사람들과 거대한 현실도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이제 다시 한적한 어딘가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한양도성을 따라 걷는 여정은 실망감과 부담감을 주던 서울의 인식을 바꿔주었다. 500년 도읍을 굳건히 지켰던 성벽을 따라 난 길. 여기에 있는 동안에는 다른 도시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내가 사는 도시를 위에서 내려다보고 가보지 않았던 구석구석을 돌아다님으로써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서울의 매력을 몸소 체험해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난 무언가에 대해 다 안다’는 생각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직업을 구할 때까지 당분간 서울에 살아야 하고 또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 않고 살 수는 없겠지만, 훗날 서울을 추억 속에만 간직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르니, 시간이 나면 틈틈이 아직 다 알지 못하는 이곳의 아름다움을 찾으러 다녀야겠다. 독자 여러분도 날이 좀 더 풀리고 가을이 되면 한양도성 순성길을 돌아보길 강력히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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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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