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에게는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여행이 있다. ① [여행]

잠에서 깨어나면 신기루처럼 사라질 듯한 부산 여행을 다녀왔다.
글 입력 2021.09.03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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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친구들과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다. 학창 시절의 수련회나 수학여행, 혹은 가족 여행을 제외하고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다. 밖에 돌아다니면 체력이 금방 바닥나서 바닥에 드러누워 있기를 좋아했고, 이런 내가 여행을 가면 분명 숙소에만 누워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스무 살이 됐을 무렵에 '인생은 한 번뿐, 즐기면서 살자'라는 뜻의 '욜로(YOLO)'가 유행했는데, 인스타그램이 여행을 떠난 사람들의 사진들로 도배가 됐다. '#욜로#욜로족#탕진잼#소확행' 이라는 해시태그도 같이 붙어 다녔다. 그때 난 '20대에 여행을 가보라고 왜 그렇게들 강조할까'라는 반항심에 젖어 있었던 것 같다. 20대들이 떠나는, '청춘을 즐기는 여행'이 공장에서 찍어내는 여행 같다고 생각했다. 비슷비슷한 경로로 다닐 거면 여행가는 의미가 있나, 그냥 편한 집에 있고 말지, 하고 여행에 상당히 비관적이었다.

 

주변 사람들한테서 너는 무슨 낙으로 사냐는 질문도 종종 받았다. 인간관계가 그리 넓은 것도 아니지, 매일 학교-집-알바만 반복하지, 외출도 잘 안 하지 주변 사람들이 '지혜 쟤는 인생을 사는 재미가 있긴 한 걸까' 의문을 가질 만도 했다. 어찌 보면 내 삶의 영역을 넓히는 것에 조금 겁을 먹었던 것 같기도 하다. '길고 가늘게 살자'가 삶의 모토였기 때문에 그저 잔잔하게 흘러가는 일상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던 도중, 올해 1년 휴학을 하면서 매너리즘에 빠졌다. 취업을 준비하는 나이가 되면서 졸업을 하거나 인턴을 하는 친구들이 많아졌고, 나 또한 자격증 준비나 취업 관련 대외활동으로 바쁜 듯하나 엄청 바쁘지는 않은 시간을 보냈다.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서 지루함을 느꼈다. 코로나로 바깥 활동이 제한되면서 지루함이 증폭됐다. 무료함을 해소할 수 있는 돌파구가 필요해졌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친구들과 부산 여행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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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짐을 풀고 여행 첫 번째 코스인 조개구이집으로 향했다. 하늘이 나를 도우려고 하는 건지, 날씨가 화창했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었고, 그리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고 선선했다. 여행 오기 딱 좋은 날씨였다.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진리의 말이 있는데, 어디론가 훌쩍 떠나기에 적절한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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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맛집 탐방이 빠지면 섭하다. 숙소 근처에 있는 조개구이집 가서 밥 달라고 부르짖는 배를 달랬다. 원래 해산물을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찾아간 곳이 블로그에서 여러 차례 소개된 조개구이 맛집이었다. 여행에 돈을 탕진하러 갔기 때문에 우리는 통 크게 조개구이 모듬을 시켰다. 뭐가 무슨 조개인지 구분이 안 갔지만, 그중에서도 전복 버터구이가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싱싱하고 쫄깃쫄깃한 전복에 버터가 스며들어 고소해진 풍미가 식욕을 더욱 돋웠다. 글을 쓰는 지금도 입에 군침이 돈다.

 

산낙지 탕탕이도 처음 먹어보았다. TV에서나 보던 산낙지 탕탕이를 실제로 보니 조금 징그럽기도 했다. 몸이 끊어졌는데도 꿈틀거리는 게 이상했다. 용기를 내서 참기름에 푹 찍어 한입 먹어봤다. 첫 소감은, 산낙지의 빨판 힘이 장난 아니었다는 것이다. 입안 여기저기 달라붙었다. 짭조름한 산낙지 탕탕이에 참기름의 감칠맛이 어우러져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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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구이에 산낙지 탕탕이까지 들어가니 술이 슬슬 당겼다. 맥주를 시킬까 했지만, 평소에 마셔본 적이 없는 술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참고로 낮술은 처음 해봤다. '초 깔끔한 맛'으로 광고하는 진로 소주를 시켰다. 무엇보다도 투명한 하늘색 병이 예뻤다. 청명한 부산 하늘과 닮았었다. 진로 소주는 다른 소주들보다 목 넘김이 깔끔했다. 소주 특유의 쓴맛이 입안 가득 퍼졌지만,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잘 익은 조개구이가 쓴맛을 중화시켰다.

 

뜬금없지만 술잔에 쓰인 '청춘'이 딱 우리를 나타내는 말이라서 찍었다. 청춘인 우리가 청춘을 즐기러 온 부산 여행에서 술잔에 청춘을 담아 치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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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배부르게 먹고 해운대로 이동했다. 드넓게 펼쳐진 하늘과 바다를 보니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바다에서 수영하고 공놀이를 하는 사람들을 보니 덩달아 나도 물에 들어가고 싶어졌다. 수영복을 챙겨오지 않아 아쉬웠지만 시원한 바람이 부는 바다를 마음껏 만끽했다. 짭짤한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바람이 상쾌했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난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느끼기 위해 몸의 온감각을 총 동원했다. 그리고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해운대를 사진에 가득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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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근처에 있는 예쁜 카페에 들어갔다. 카페 이름은 '랑데자뷰'. 사람이 정말 많았다. 운 좋게도 친구들과 내가 들어갔을 때 4인 좌석 딱 하나가 남아서 앉을 수 있었다. 해운대 근처에 있고 블로그에 후기가 많은 곳이라 대강 알고 갔는데 핫플레이스였다. 다시 검색해보니 인테리어가 예쁘고 음료와 케이크가 맛있어서 SNS에서 소문난 감성카페였다.

 

나는 녹차 케이크와 소다 라떼를 주문했다. 녹차 케이크는 먹어본 적 있었지만, 소다 라떼는 처음 먹어보았다. 이름답게 소다 맛이었다. 아이스크림 뽕따를 녹인 맛이라고 묘사하고 싶다. 친구들은 어떤 것들을 시켰는지 기억이 안 나지만 녹차 케이크의 쌉싸름하고 꾸덕꾸덕한 맛과 소다 라떼의 달달한 맛이 한데 어우러져 찰떡궁합이었다. 랑데자뷰를 가는 사람에게 무엇보다 녹차 케이크를 꼭 먹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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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요트 투어를 하러 갔다. 여행 계획을 짤 때 요트 투어는 꿈에도 생각 못 했었다. 부산에서 할만한 것을 검색하다 보니, 요트를 타고 야경이 예쁜 곳들을 구경할 수 있다는 요트 투어를 발견했다. 그래서 밤바다 바람이나 쐬자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요트 투어를 여행 계획에 넣었다. 하지만 나는 요트 투어가 부산 여행에서 가장 잊지 못할 순간으로 남았다. 부산 여행의 백미로 꼽고 싶다.

 

요트경기장-마린시티-동백섬-광안대교-광안리해수욕장-요트경기장 코스를 거쳤다. 야경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적은 처음이었다. 다들 서울 야경이 그렇게 예쁘다고 하는데, 나는 요트 투어를 하면서 본 부산 야경이 더 예뻤던 것 같다. 갖가지의 조명들이 자신의 빛을 뽐내며 황홀한 광경을 연출했는데, 부산의 밤이 환해졌다. 눈으로 호사를 누렸다.

 

 

 

 

요트 투어를 부산 여행의 백미로 선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로 요트 선상에서 바라본 불꽃놀이 때문이다. 야경도 야경이었지만, 불꽃놀이가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불꽃놀이'라는 이름답게 불빛이 모여 만드는 꽃이었다. 아직도 불꽃놀이를 볼 때의 분위기와 그 현장감이 생생하다. 화려한 야경 앞에 펼쳐지는 불꽃놀이. 아드레날린이 치솟는 분위기를 한층 더 뜨겁게 돋우는 노래. 요트 투어는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

 

요트 투어를 마친 후에는 숙소로 돌아왔다. 굶주렸다고 아우성치는 배에 치킨과 과자와 맥주를 좀 넣어주었다. 미국 하이틴 영화도 봤는데, 종일 부지런하게 돌아다녀서 그런지 소파에서 뻗어버렸다. 든든하게 기름칠한 배를 쓰다듬고 기분 좋게 잠들었다. 내일 있을 일정들이 기대되었다.

 

 

- 다음 편에서 부산 여행이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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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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