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함께라면 무서울 게 없어 - 도망가자

글 입력 2021.08.31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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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적지 않은 위로를 준 적도, 받은 적도 있다. 그럴 때마다 ‘힘내’라는 말과 경험에서 빗댄 이해와 공감, 조언은 어김없이 존재했고, 이보다 더 적절한 위로는 없었다. 무엇보다 함부로 손을 뻗기엔 쉽게 깨질까 두려운 마음이 컸다. 이 모든 건 마치 세상이 정한 암묵적인 규칙과도 같았고, 대부분이 큰 저항 없이 수긍하며 지내왔다. 모두가 위로의 교과서에 따른 행동을 하던 중 이제껏 보지 못한 새로운 위로가 세상에 나타났다. 바로 선우정아의 음악에서 말이다.

 

그녀는 한국을 대표하는 싱어송라이터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음악으로 꾸준히 표현해왔다. 2019년 12월 발매한 앨범의 타이틀곡 <도망가자>는 발매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유튜브 창을 빼곡히 채운 커버 영상, 그 아래 자리한 수많은 사연은 저마다 다른 모양을 띠고 있었다. 각기 다른 이야기들은 ‘공감’에서 비롯되어 한 곳으로 모여 큰 사랑으로 빚어졌다. 그녀의 음악 안에 담긴 세상이 사람들의 마음이 사는 세상과 너무도 비슷해서 차마 그냥 지나칠 순 없었나 보다.

 

수많은 사연이 덧대어져 더욱 큰 몸집을 자랑하는 이 노래가 또 한 번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려 한다. 이번엔 선우정아의 노래와 곽수진 작가의 그림이 만나 재탄생한 어른들의 동화책 <도망가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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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도망가자>의 노랫말에 그림을 얹은 형식으로 어릴 적 보던 동화책과 매우 유사하다. 책을 구성하는 글이 노랫말인 만큼 노래와 함께 감상하는 것을 권유한다. 흘러나오는 선율과 소박하지만 따스한 그림을 한 장 한 장 천천히 음미하며 감상하다 보면 고즈넉한 분위기 속의 따뜻한 위로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곽수진 작가 그림의 특징은 번지르르함은 없지만 소박하고 아늑하며 친근하고 따스하다는 점이다. 화려함이 주는 황홀함도 좋지만 가끔은 소박함이 주는 따스함도 우리에겐 필요하다. 그 따스함이 우리의 마음 한구석을 어루만져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닮은 듯 다른 선우정아와 곽수진, 그녀들이 만나 하나의 작품으로 많은 사람에게 안위를 묻고 위로를 전하려 한다.

 

선우정아는 실제로 위로의 말로 도망가자는 말을 자주 들어봤다고 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는 늘 나의 안위를 살폈고, 네가 망해도 다 회피해도 같이 있어 주겠다는 말을 건네주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상대가 힘겨워할 때 이번에는 자신의 차례라 여기며 가장 잘 할 수 있는 음악으로 손을 내밀었다. 함께 도망가자고. 네가 가진 힘듦을 나누고 ‘함께’ 도망갔다가 씩씩하게 ‘함께’ 돌아오자고.

   

 

있을까, 두려울 게

어디를 간다 해도

우린 서로를 꼭 붙잡고 있으니

가보는 거야 달려도 볼까

어디로든 어떻게든

내가 옆에 있을게 마음껏 울어도 돼

그 다음에

돌아오자 씩씩하게

 

 

‘도망가자’는 말이 갖는 부정적 의미를 깨끗하게 씻어내 준 곡이다. 우리는 여태 ‘도망’이라는 단어의 회피적 성격이 주는 비겁함의 단면만 보고 살았는데, 그 이면에는 누군가에게 희망으로 보일 빛이 있었다. 너와 나 둘이 함께라면 두려울 것도, 무서울 것도 없을 테니 어디로든 달려보자는 속삭임은 처음 노래를 접하던 나에게 조용히 묵직한 울림을 선사했다. 그 어떤 위로에서도 ‘함께’는 찾기 힘들었는데, 여기서는 너무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도망가자는 권유부터가 이미 함께이니 과정도, 그 끝도 전부 함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함께 도망간 곳에서 묵묵히 네 옆을 지키고, 괜찮아지면 다시 씩씩하게 함께 돌아오자는 말은 마치 이제껏 내가 했던 위로는 전부 형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며 알려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이다. 어느 누가 자신이 사랑하는 이에게 뭐든지 함께, 그러니 함께 도망가자는 말을 듣는다면 위로가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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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수진 작가의 ‘함께 도망가고 함께 돌아올 대상’은 지금은 그녀의 곁을 떠난, 그녀의 고양이다. 아직도 더 잘해주지 못한 아쉬운 마음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과거를 그리워하는 간절한 마음을 그림에 담아 ‘오랜 시간 내 곁을 지켜준 노견과 동행하는 마지막 여행’으로 표현했다. 늘 자신에게 힘을 주던 반려동물에게 이제는 내가 힘을 주고, 아픈 현실로부터 도망도 갔다 씩씩하게 돌아오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말이다.

 

그녀의 그림 속에는 오직 둘 뿐이다. 그 누구도 추가로 등장하지 않고, 오로지 둘이서만 떠나는 마지막 여행이다. 반려동물이 없는 나로서는 그녀의 감정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림으로 표현한 그녀의 마음이 노랫말과 어우러져 있는 모습을 눈에 담았을 때, 뚜렷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

 

선우정아는 노래를 쓸 때 당시의 심정은 혼자가 아니고 같이 도망가는 거였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내내 행복하기만 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에게 사랑하는 이와 함께라면 슬픔을 회피하고 동굴 안으로 숨어버리는 행위조차 행복의 범주 안에 속할 거라는 그녀의 말은 환상 속의 이야기에 불과했다.

 

마냥 어렸을 땐 마주하기 싫은 상황에 분명 누군가와 무모하게 도망치기도 했던 것 같은데, 성인이 되고부터는 이 행동이 어떻게 비칠지,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에 대한 두려움에 먹혀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만약 그 당시 힘겨워하던 나에게 누군가 함께 도망가자는 말을 건넸다면 나는 무언가 달라졌을까, 혹은 내가 사랑하는 이에게 따스한 위로를 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힘겨워할 때 자신만의 위로를 건넬 줄 아는 사람이 된다는 건 조금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도움이 됐던 말이 상대방에겐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만일 위로에 막막함을 느끼거나 말할 용기가 없다면 음악과 그림이 만들어낸 따스함을 조용히 건네보는 건 어떨까. 이 책이 대신 그 사람에게 위안을 묻고, 따스함을 전해줄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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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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