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금, 모두가 주목하는 컬렉션 [미술/전시]

역대 최대 규모의 국가 기증 '이건희 컬렉션'을 살펴보다.
글 입력 2021.08.31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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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문화예술계의 화두는 ‘이건희 컬렉션’이라고 할 수 있다.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별세 이후 그가 수집했던 다수의 작품에 많은 이들의 이목이 쏠렸다. 삼성은 총 23,000점에 이르는 미술 작품들을 국가에 기증하기로 결정하였고 우리는 국내 각지의 미술관에서 그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에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국가기증 사례로 기록되는 이번 이건희 컬렉션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리하여 이번 오피니언에서는 어떤 기증 작품이 있는지와 더불어 이로 인해 발생되는 현상들을 간단하게 적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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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 인왕제색도, 1751


 

조선 후기 최고의 화가 겸재 정선의 작품이다. 국보 제216호인 이 작품은 최고의 진경산수화라는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인왕(仁王)의 의미는 인왕산을 뜻하고, 제색(霽色)은 비가 온 후 갠 풍광을 뜻한다. 즉 소나기가 스치고 지나간 인왕산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안개가 피어오르는 그 찰나의 순간을 그림으로 담아내 조선 정취의 색다른 모습을 즐길 수 있게 했다. 대담함이 느껴지는 먹물과 필치는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뒤편에 크게 자리한 암벽이 무게감 있는 진경산수화를 완성시킨다.


각각의 바위들은 각자 다른 이름이 있고, 지금의 인왕산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바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그림을 통해 과거와 지금을 비교해보는 것은 감상자로 하여금 재미를 불러일으킨다. 또한 이 그림을 그린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추측이 있다. 자신의 60년 지기 친구 이병연이 병을 이겨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그림을 그렸다는 추측, 후원자 이춘제의 저택을 그렸다는 추측, 비가 개는 풍경에 취해 그림을 그렸다는 추측으로 나뉜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각 상황에 몰입해보며 그림을 다시금 찬찬히 들여다보게 하는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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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 황소, 1950년대


 

이중섭은 ‘소’를 소재로 그림 그리는 것을 즐겨했다. 소는 끈기와 인내가 있는 한국을 상징하는 이미지였으며 그의 작품 황소에서도 그러한 아우라를 느낄 수 있다. 당시 이중섭은 전쟁과 해방 등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소 연작을 그리며 마음을 다잡았고, 그의 그림을 감상하는 국민에게도 강인한 마음을 전달하고자 했다. 붉은 배경과 굵은 선에서 그 마음이 절로 읽힌다. 또한 소는 이중섭 작가 자신으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즉 자화상인 것이다.


소의 눈빛은 굳세 보이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슬픔이 담겨있는 듯하다. 이는 작가의 소 연작에 나타나는 공통점인데, 반짝이는 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작가의 눈을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진실함, 절실함 등 복합적인 감정이 든다. 작품에 담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이었는지, 당시의 환경이 어땠는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붉은 황소 머리를 그린 작품은 단 4점만이 현존한다고 한다. 이번 컬렉션을 통해 더 많은 대중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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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여인들과 항아리, 1950년대


 

폭이 6m에 달하는 초대형 그림이다. 이 그림은 1950년대 방직 재벌 삼호그룹의 회장이 김환기 작가에게 직접 주문한 작품이다. 그리고 1960년대 삼호그룹이 쇠락하게 되며 미술시장에 나온 이 작품을 이건희 회장이 소장하게 된 것으로 추정한다. 값을 매기기 어려울 정도로 그 가치가 커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자연스러운 선과 투박한 조각보 같은 배경은 김환기 작품의 조형적 특징을 보여준다.


이 작품에는 김환기가 평소 즐겨 그렸던 그림의 소재들이 모두 그려져 있다. 항아리, 여인, 사슴 등을 한 화폭에서 만나볼 수 있다. 항아리를 사랑한 화가로 잘 알려져 있듯 이 작품에서도 물을 긷고 있는 여성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이들은 고운 천을 입고 있는데 이는 당시 전쟁으로 힘들었던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풍요가 존재했음을 보이고자 한 것이다. 뒤편의 궁궐, 꽃수레 등이 이러한 분위기를 더욱 부각시킨다. 작품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이밖에도 이건희 컬렉션에서 주목할 작품과 유물은 매우 많다. 한국 추상화의 선구자로 불리는 유영국 작가의 ‘작품’, 인간의 선함을 그린 화가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문자 추상의 선구자 이응노의 ‘구성’ 등 한국 예술에 한 획을 그은 많은 예술가들을 만나볼 수 있다.


또한 석가모니 부처의 일대기를 기술한 ‘석보 상절’, 삼국시대 불상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일광삼존상’, 천수관음보살 신앙을 그림으로 전한 고려 유일의 ‘천수관음보살도’ 등 한국 역사와 예술에 많은 영향을 끼친 유물들도 살펴볼 수 있다. 컬렉션을 통해 만나기 어려웠던 작품들, 한 획을 긋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게 되어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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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컬렉션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입장 제한인원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고도 예약 경쟁, 빠른 매진과 암표 거래 등과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우스갯소리로 BTS 콘서트를 방불케한다는 말도 떠돈다. 흔하지 않은 미술관 예약 대란 사례는 더욱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우선적으로 국내 최대 기증 사례라는 점이 궁금증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라 추정한다. 막대한 규모의 작품과 유물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에 높은 의의를 두었을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기업가의 예술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기업과 예술의 상관관계는 직접적이지 않다고들 생각한다. 그런데 세계적인 기업가가 예술애호가라니, 자연스레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어떤 이유에서 예술에 관심이 가져졌는지, 그가 생애 좋아했던 예술가는 누구인지, 어떤 작품을 수집했는지 등 다방면에 호기심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를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기에 이번 컬렉션에 큰 궁금증을 품게 된다.


이밖에도 다양한 이유에서 이건희 컬렉션에 관심을 품었을 것이다. 이중섭, 박서보, 김환기 등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끼친 예술인들의 작품을 눈에 담기 위해, 현재 대두되고 있는 사회적 이슈를 살펴보기 위해, 기업가에 대한 관심 때문에 등 여러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건희 컬렉션은 예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막대한 기증품 수와 그 각각의 가치는 이목을 사로잡았다. 예술애호가에만 국한되지 않은 전 국민적 관심은 모두가 예술의 적극적인 향유자로 설 수 있게 했다. 비교적 치우쳐있던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을 고르게 만든 것이다. 즉 하나의 촉매제 또는 환기제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관심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또한 국가 기증을 통해 문화적 자산을 풍성하게 했다. 회화, 판화, 공예, 조각, 유물 등 다양한 미술품은 한국 역사와 예술을 성장시켰다. 뿐만 아니라 국립 박물관과 미술관 소장품의 질과 양을 높이며 문화예술에 대한 연구를 촉진시키고 있다. 특히 희귀한 한국 근대 미술 작품이 다수 기증되어 근대 작가와 근현대 역사에 대한 논의가 다시금 이루어지게끔 했다. 이는 국내를 넘어 세계적으로도 높은 경쟁력을 갖게 한 것이다.


*


근래 가장 이슈 되고 있는 이건희 컬렉션에 대해 살펴보았다. ‘하늘의 별따기’라고 불리며 많은 대중들의 관심을 산 컬렉션은 예술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중요한 기점이 되었고, 국내 역사와 예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선례가 되었다. 누군가는 이번 이슈에 대해 기업을 둘러싼 윤리적‧사회적 문제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하기도 한다. 물론 이를 완전하게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문화예술적 관점에서 분명한 의미가 있는 이슈이기에, 직접 방문해보고 관심을 가져보는 것을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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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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