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을 뿐 - 좋은 사람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우리는 과연 좋은 사람일까?
글 입력 2021.09.05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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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영화 <좋은 사람>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좋은 사람이 되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과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 각자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의 정의는 다르겠지만, 믿고 따를 수 있는 사람,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알게 모르게 힘이 되는 듬직한 사람, 뛰어갈 힘이 남아있지 않을 때 걸어가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 자신이 몸담고 있는 분야에서 유능하고 그런 유능함을 다수를 위해 쓰는 사람, 가족을 위해 굳은 일 마다하지 않는 사람 등 최소한 남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그리고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꺼려진다. 나쁜 사람이 되어 미움받고자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쁜 사람이 되어 사람들로부터 외면받는 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다. 그런 끔찍한 일을 일부러 겪을 필요는 없다. 돌로 맞는 게 아플 것이라는 건 굳이 직접 맞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처럼 이 세상에는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이미 우리가 체득하고 있는 선험적인 지식들이 많이 있다. 나쁜 사람이 되면 안 된다는 것도 그중 하나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은 우리의 본능적인 욕구다.

 

... 그런데 좋은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거지?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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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인공, 경석은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좋은 선생님, 좋은 남편이 되어 나름대로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키려고 한다. 극 중 그가 자신이 담당하는 반에서 "너희들은 모두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해"라고 외치는 모습은 그에게 '좋은 사람'에 대한 일종의 강박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할 정도이다.

 

하지만 그의 바람이 너무 과했던 것일까,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그의 집착은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모두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영화 초반 지갑 분실 사건이 일어난 후, 경석은 확실한 범인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범인으로 의심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펼치지만 세익이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주머니를 뒤지고 있었다는 다른 학생의 증언을 들은 후로 세익을 범인으로 확신하게 된다. 자신이 직접 본 것이 아니고 일종의 목격담만 들은 것인데도 그는 세익의 무고를 믿어주는 것이 아닌, 증언을 해준 학생의 말을 더 신뢰한다.

 

그리고 세익이 제 입으로 범행 사실을 실토하기를 바라며 '좋은 사람인 척' 세익에게 다가간다. "난 네가 훔쳤다 해도 믿을 거고, 훔치지 않았다고 해도 믿을 거다. 그러니 네가 그때 뭘 했는지 A4용지에 써봐."라며 세익을 은근슬쩍 회유한다. 마치 형사가 취조실에서 피의자를 앞에 두고 심문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경석 앞에서 세익은 나쁜 사람이 되어버리고 만다. 경석은 범인을 찾아낸 좋은 사람으로, 세익은 지갑을 훔친 나쁜 사람으로.

 

영화 중반 딸의 사고 소식을 들은 경석은 마찬가지로 확실히 단정 지을 수 없는 상황에서는 그 누구도 함부로 의심해선 안된다는 자세를 취하며 최대한 이성적인 대처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가능한 중립을 지키며 누구에게도 미움받고 싶지 않아 하는 그의 연약함이 숨어있다.

 

아내인 지현에게도, 자신의 학생인 세익에게도, 사고를 낸 트럭 운전기사에게도 그는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어 한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은 경석에게 지현은 '지나치게 감정적인 사람'이고 세익은 '진실을 숨기는 사람'이며 트럭 운전기사는 '범인이 되고 싶지 않아 학생을 몰아가는 몰지각한 사람'이다.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경석에게는 자신이 다른 사람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좋은 사람이 되는 게 더 중요했다.

 

 

 

거짓으로 얼룩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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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과 불안 속에서 갈피를 못 잡고 미쳐가는 경석에게 야속하게도 좋은 사람이 될 기회는 점점 사라지고 만다. 사건 해결의 주체자로서, 가장 깊게 사건에 연루된 관계자로서 그는 '진실된 사람'과 '거짓된 사람'을 가려내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마주하는 것은 보기 불편한 자신의 모습이었다.

 

좋은 아빠로 인정해 주지 않는 딸에게 끝내 화를 내고 만 경석, 그런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될까 두려워하던 경석, 반 아이들의 상황을 제대로 인지조차 하지 못하면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설파하던 경석, 누구를 믿어야 할지 누구를 의심해야 할지 몰라 이리저리 흔들리고 마는 경석, 그리고 그런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지워질 수 없는 상처를 주고 마는 경석, 모두 그가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그의 다른 모습이었다.

 

거기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경석은 점점 폭력적인 사람이 되어간다. 처음엔 누구 하나 건드리는 것조차 망설이던 그였지만 멱살을 쥐고 손찌검을 하며 주먹을 휘두르는 것에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냉혈한으로 변해간다. 그는 자신이 휘두르는 폭력에 관대해진 것은 물론 타인이 스스로에게 휘두르게 될 폭력(영화 내에서는 자해)에 대해서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게 된다. 제자가 벌벌 떨리는 손으로 벽돌을 집어 드는 것조차 무심하게 바라보는 사람으로. 벽돌을 든 세익 앞에서 그는 좋은 선생이 아니었다. 제자의 괴로움을 눈앞에서 목격하고도 방관한 나쁜 선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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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후반, 벽돌로 자신의 머리를 내려친 세익을 병원에 데려다주고 난 후, 경석은 세익으로부터 충격적인 진실을 듣게 된다. 그와 동시에 세익은 그러한 진실을 말할 수 없었던 자신을 '나쁜 사람'이라 칭한다.

 

좋은 사람을 표방하던 경석과 나쁜 사람임을 자처한 세익.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소리치면서 결국 주변인들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버린 경석과 주변 모든 사람들로부터 나쁜 사람이라는 의심과 비난을 받아야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나쁜 사람에서 제일 벗어나 있던 세익.

 

경석이 애타게 찾던 '거짓된 사람'은 세익도, 트럭 운전기사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좋은 사람이 되기는 왜 이렇게 어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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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좋은 사람>은 우리에게 두 가지 메시지를 던져준다.

 

첫 번째 메시지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실제로 가능하냐'라는 것이다.

 

우리는 경석의 시선만 따라갈 뿐이지 경석 본인이 되어본 게 아니기 때문에 그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무엇을 노력했는지는 알 수 없다. 영화 내의 경석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겉만 번지르르한 말만 했을 뿐이지 실제로 행동하지는 않았다고 보인다.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증언해 주고 있지 않나.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좋은 선생이 되기 위해 아이들과 눈을 맞추려는 작은 시도는 했고, 좋은 남편이 되기 위해 중독 수준으로 마시던 술을 줄이긴 했으며,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딸과 대화해보려는 시도는 했다.(하지만 딸에게 폭언을 하는 모습이 바로 뒤에 나오기 때문에 이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다만) 세상의 모든 위대한 일은 작은 것에서 시작되는 법이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한다면 언젠가는 남들로부터 정말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자신이 바라보는 '좋은 사람'과 타인이 바라보는 '좋은 사람'의 간격이 컸다는 것이 문제였다.

 

경석이 생각한 '좋은 아빠'는 '딸과 함께 여기저기 놀러 다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과거부터 쌓인 '나쁜 아빠'의 이미지가 너무 컸기 때문에 '좋은 아빠'의 이미지는 겉으로 드러날 수 없었다. 되려 '좋은 아빠인 척' 하는 것으로 밖에 비치지 않았다. 경석은 자신의 말과 행동이 하루빨리 '좋은 아빠'로 인식될 수 있기를 바랐고 딸과 지현으로부터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겠지만 경석은 너무 조급했고 인내심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경석이 생각한 '좋은 선생'은 반 아이들을 포용하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이 생각한 '좋은 선생'은 부정적 상황을 모면하게끔 도와주는 사람이 아니라 긍정적인 면을 더욱 고취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반 아이들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 학생들이 아무 불편 없이 학교에 다니고 있는지, 아이들 이름은 무엇이고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 그러한 사실들로부터 기인해 학생들이 쾌활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게 지원해 주는 사람이 바로 좋은 선생이었다. 경석은 세익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학교 내 상황을 제대로 직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러한 점을 체감했다.

 

우리들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바라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나 스스로는 분명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 테지만, 그것이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정말 '좋은 사람'에 걸맞은 행동인지는 우리로서는 알 방법이 없다. '좋은 사람'은 지극히 주관적인 단어이기 때문이다. 설령 안다고 해도 거기에는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하다. 100만큼 해야 좋은 사람으로 비칠 수 있다고 가정을 해보면, 노력을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70도 하기 힘들기 때문에 50정도만 해놓고 '제발 날 좋은 사람으로 봐 줘'라고 외칠테다. 주변 사람들은 우리의 그런 작은 노력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엄격한 잣대로 우리를 바라볼 테고, 결국 그런 기대와 실제의 차이로 인해 좋은 사람이 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것이 심화되어 내가 보는 내 모습과 상대가 보는 내 모습의 괴리가 커진다면 상대는 우리를 '위선자' 내지는 '좋은 사람인 척하는 사람'으로 볼 가능성이 높다.

 

좋은 사람은 너무나 주관적인 명칭이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개개인의 노력이 쉽게 티 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두 번째 메시지는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은 상대적 일뿐이다'라는 것이다.

 

영화 내 상황을 다시 돌아보자.

 

처음 경석은 지현과 세익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가 이도 저도 안되는 상황에 처하고 만다. 둘 다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누구에게 온 마음을 다하지 못한 탓이다. 만약 경석이 선생으로서의 역할보다 사고를 당한 딸의 아버지 역할에 적극적이었다면 세익에게는 '나쁜 사람'으로 보였을지 몰라도 지현에게만큼은 '좋은 사람'으로 남았을 테다. 그 반대였다면 지현에게는 '나쁜 사람', 세익에게는 '좋은 사람'이었을 테고.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은 다른 누군가에게는 나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누군가가 A라는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B라는 집단의 불이익을 초래했다면, 그는 A집단에서는 좋은 사람이 될 것이고 B집단에서는 나쁜 사람이 될 것이다.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불리지는 않는다. 그러한 판단은 판단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어떤 상황에 처해있냐에 따라 종이가 강풍에 뒤집히듯 쉽게 바뀌는 것이다.

 

 


경석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내가 몇번 말하지만

 

사람 다 잘못하고 실수하고 살아.

 

근데 중요한 건 자기가 잘못한 거 인정하고 되돌리는 거야.

 

너희들이 그럴 용기만 있으면 

 

몇번을 잘못하고 실수해도 좋은 사람 될 수 있다고.

 

 

모든 진실을 알게 된 경석이 과연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 그에게 좋은 사람이 될 기회는 아직 남아있는 것일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경석이 마주한 나쁜 사람 경석.

 

일은 이미 일어나버렸고 책임질 사람은 본인밖에 없다. 지독히 불편한 그 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정말 좋은 사람이 될지, 지금 상태에 머물지 결정될 것이다.

 

영화 초반 경석이 이야기한 좋은 사람의 자격은 이제 경석 본인을 시험대에 놓으려 하고 있다. 잘못과 실수로 얼마큼 성장했는지, 과연 그러한 잘못 들을 다 제대로 직면하고 되돌릴 수 있는지,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을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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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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