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그때의 나를 기억해줘요 part.2 드라마 [음악]

OST가 담고 있는 수많은 기록들. 바로 그때, 그 브라운관 속으로
글 입력 2021.08.28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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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_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 대표 이미지


 

이 세상의 가치는 대부분 유한함에서 비롯된다. 나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시간과 기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유한한 시간 속에서 어떤 기억은 서둘러 놓아 버리려 애쓰지만 또 어떤 기억은 계속해서 붙잡으려 애쓴다. 나는 언젠가 흐려질 내 유한한 기억력을 대신하여 찰나의 기억을 간직해 주는 것들을 좋아한다. 사진, 향, 그리고 음악.

 

위 세 가지는 각각 우리의 시각, 후각, 청각을 자극함으로써 잠시나마 우리를 과거의 어떤 순간으로 데려다준다. 오늘은 그 중 음악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플레이리스트를 랜덤으로 재생해 놓은 후, 이어폰을 꽂고 가만히 버스에 앉아있다 보면 가끔 자연스럽게 머리에 어떤 순간이 그려지도록 하는 곡들이 흘러나온다.

 

바로 드라마나 영화의 OST다.

 

[Opinion] 그때의 나를 기억해줘요 part.1 영화 [음악] 발췌

 

 


바로 그때, 그 브라운관 속으로


 

영화 속 특정 장면을 상기시키고 극 중 인물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영화 OST와 달리, 드라마 OST는 나만이 가지고 있는 기억과 함께 재생되기 시작한다.

 

영화에 비해 좀 더 오랜 시간 동안 인물과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는 드라마는 그 주제와 사건 역시 영화보다 현실적이고 친근하기 때문에 자신을 극 속에 투영하고 공감하기 쉬운데, 이 특징은 OST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 때문에, 위로를 얻기 위해 감명 깊게 봤던 드라마를 다시 돌려볼 필요 없이, 우리는 OST만 들어도 다시 그때의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위로 - 권진아, <멜로가 체질>

 

 

작년, 많은 이들의 인생 드라마라는 <멜로가 체질>을 정주행했다. 가슴을 쿡쿡 찌르는 장면들이 많아 혼자 밥을 먹으며 보다 눈물을 닦는 일도 잦았지만 마지막 화까지 시청을 잘 마쳤다. 마지막 화가 끝나자마자 또 보고 싶은 장면은 은정(전여빈 분)의 '안아줘' 대사 부분이었고, 계속 듣고 싶은 노래는 '위로'였다.

 

노래를 재생하자마자 흘러나오는 네 번의 피아노 소리. 같은 음의 반복일 뿐인 이 인트로는 신기하게도 뻥 뚫린 듯한 마음을 잘 토닥여 메워 준다. 슬픔과 외로움을 눌러 왔던 은정이 자신의 아픔을 고백하고, 말없이 안아 주는 친구들의 위로는 이 노래에 담긴 채 온전히 전해진다.

 

'위로하려 하지 않는 그대 모습이 나에게 큰 위로였다'라는 가사는 내 침묵을 함께 침묵으로, 하지만 관심을 가지고 기다려 준 사람들을 떠올리게 했다. 생각의 파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나를 위해 긴 위로의 말보다 한 권의 책을, '전국 식료품 공장 주소록'이 적힌 쓸데없는 정보가 가득 적힌 책을 보내준 친구가 떠올랐다.

 

몇 주째 표정을 잃은 상태였던 내 얼굴에, 손바닥만 한 작은 책 한 권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던 그 오후가 떠올랐다.

 

 

나의 어제에 그대가 있고

나의 오늘에 그대가 있고

나의 내일에 그대가 있다

그댄 나의 미래다

 

 

하지만 이어지는 후렴구의 가사는 반대로 내 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 유일한 위로가 되어 주기도 했다.

 

유난히 절실했던 나에 대한 희망은 '그댄 나의 미래다'라는 가사와 함께 작은 불꽃을 피운다. 내가 누군가의 희망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고, 나의 희망이 되어 줄 존재조차 찾지 못할 때, '위로'는 내가 나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바람이 부네요 - 이소라(원곡: 박성연, 박효신), <슬기로운 의사생활>

 

 

생과 사, 기쁨과 슬픔 사이를 오가는 병원이라는 공간. 그리고 그 공간 안, 지금도 떨어지고 있을지 모를 어떤 이의 눈물을 알려 주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산다는 건 신비한 축복

분명한 이유가 있어

세상에 필요 없는 사람은 없어


처음 태어난 이 별에서

사는 우리 손잡아요

 

 

나와 다른 사람의 조언과 위로가 필요할 때도 있지만, 가끔은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는 사람의 존재가 필요할 때도 있다. <멜로가 체질>의 '위로'가 양손을 맞잡고 눈을 마주치며 속삭여주는 상대의 위로라면,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바람이 부네요'는 같은 온도의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서로 내어 주는 작고 좁은 어깨다.

 

'처음 태어난 이 별에서 사는 우리'는 서로 작은 어깨를 기대 이 별에서 살아갈 하나의 팀이 되고, 작은 바람에 혹 상처 입을까 안아주는 가족이 된다.

 

*

 

영화와 드라마에서 OST는 때로는 인물의 역할을, 때로는 대사의 역할을, 또 때로는 배경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세월이 지난 후의 우리를 위해서는 흐려져 가는 기억과 감정을 꼭꼭 담아 둔 고마운 타임머신의 역할을 한다.

 

극의 내용은 하나하나 기억나지 않더라도 나는 여전히 'A Million Dreams'를 들으면 밝게 빛나는 달 아래 한 폭의 그림 같았던 바넘과 채러티의 춤이 그려지고, '위로'를 들으면 자취방에 홀로 누워 유난히 잠 못 이루던 언젠가의 밤이 떠오른다.

 

OST가 영화와 드라마에서 많은 역할을 하듯, 내 삶 속에서 OST는 때로는 나의 벗이, 때로는 나의 가족이, 또 때로는 나 자신이 되어 감정의 배출을 돕는다. 그렇게 OST는 내 삶의 OST로, 내 삶과 함께 흘러간다.


 

[이건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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