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안녕, 나야.

글 입력 2021.08.27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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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소원 아래 매일 다른 꿈을 꾸던

아이는 그렇게 오랜 시간

겨우 내가 되려고 아팠던 걸까

 

 

가수 아이유의 노래, <아이와 나의 바다>에서 내가 가장 공감하는 가사다.

 

모든 사람의 내면에는 아이가 있다. 이는 ‘내면 아이(Inner Child)’라는 상담학 용어로도 정의된 개념이다. 개인마다 다른 성장 배경에 따라 쌓인 경험은, 아이가 성인으로 자라난 후에도 내면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래서인지 성인이 되어서도 아이 시절의 아픔을 지우지 못한 사람은 좌충우돌하며 상처를 감추려 애쓴다. 나도 그랬고.

 

그래서 나는 마음속 아이에게 말을 건넨다. 너도 그렇게 오랜 시간을 견디며 아팠구나. 다른 멋진 사람도 아닌, 겨우 내가 되기 위해서. 이렇게 커버리다니 미안하다. 너는 훨씬 더 나아진 모습을 기대했을 텐데, 여전히 부딪히고 덜컹거리는 사람이라 미안하고, 너의 아픔을 보듬어주지 못해 더욱 미안해.

 

8살의 나에게 묻는다. 너는 왜 놀이터에 서 있니? 누군가 길을 잃고 주저앉아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 달래주고 있구나. 그 아이는 너보다 더 어려 보인다. 너는 아이를 진정시킨 후 벤치에 앉힌다. 그리고는 집으로 들어가 초코파이 하나를 가지고 벤치로 돌아온다. 너는 아이에게 초코파이를 쥐여주려 했지만, 어느새 아이는 사라졌다. 그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며칠 전에도 아버지는 허리띠를 빼내어 손에 감은 뒤 동생에게 휘두르려 했다. 비록 지금은 폭력의 강도가 낮아졌지만, 나는 말을 아끼며 폭력을 제지했다. 때로는 말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나는 말수가 줄어들었다. 물론 지금도 말이 많은 편에 속하지만.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겨우 되짚어본다. 어린 나는 화장실에서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했다. 손과 발로 저항하면서 동시에 입으로 무어라 외치기도 했다. 긴 시간이 지났음에도 선명히 떠오르는 기억이 있는가 하면 도무지 떠올릴 수 없는 순간도 존재한다. 이 두 가지가 나의 과거를 지배한다. 그곳에서는 고성과 손찌검이 오갔다. 부모의 대화에는 이혼, 도장, 끝 등의 단어가 반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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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아픔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로 커버린 나는 예민한 축에 속하는 사람이 되었다. 온유한 성품을 갖고 싶었지만, 간혹 날카로운 모습을 보일 때면 나 자신을 더 싫어하게 되었다. 물론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었다. 기분이 좋을 때는 아무도 내가 우울하다는 것을 알지 못할 정도의 모습을 보였다. 돌이켜보면 감정 기복이 다소 심했던 것 같다.

 

내가 옛날부터 속으로 되뇌던 말이 있다. ‘앞으로는’. 앞으로는 더 나아지겠지. 앞으로는 내가 더 멋진 사람이 되어 이따위 과거는 없던 것처럼 당당해질 수 있겠지. 앞으로는 내가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겠지. 그래, 이 정도의 아픔도 견뎠는데 내가 못할 게 뭐야. 앞으로는 괜찮을 거야. 앞으로는 좋아질 거야.

 

몇 달 전, 아버지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상처받은 어린아이처럼 울던 아버지의 모습이 기억난다. 나도 그의 죽음 앞에서 저렇게 울 수 있을까. 나는 그 무덤에서 어떻게 있게 될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앞으로는 알 수 있을까?

 

다시 나의 어릴 적을 돌아본다. 나는 그때부터 공연을 참 좋아했다. 지금은 사라진 목동 홈플러스 문화센터 소극장에 어머니의 손을 잡고 보러 간 연극 <파랑새>. 당시 열 살 남짓의 아이가 기억하기에는 벅찰 정도로 많은 것들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떠오른다. 암전 시의 무대장치가 이동하는 모습부터, 대극장 공연에나 어울릴 법한 과한 메이크업을 한 배우의 얼굴까지.

 

어머니가 근무하는 영어 교육 회사에서 제작한 어린이 대상 뮤지컬을 보았을 때도, 나는 집에 돌아와 그 무대를 그대로 재현하기 일쑤였다. 긴 의자로 무대 바닥을 만든 후, 수건으로 커튼을 치고, 가습기로 안개 효과를 만들어 인형 배우를 등장시키는 놀이를 하던 나는 어쩌면 이미 공연예술을 해야 할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였던 그 아이는 아직도 나의 안에 남아있을까?

 

*

 

안녕, 나야.

 

그동안 놀라운 일들이 많이 생겼어.

어린 시절에 너가 꿈꾸던 나의 모습이 기억난다.


그 모습에 완벽히 들어맞지는 않지만,

너는 더 멋있어졌고 성숙해지는 중이야.

여러 능력을 갖추게 되었고 타인을 사랑하는 법도 조금씩 알게 되었지.

 

어쩌면 너의 순수함이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걸지도 몰라.

너는 항상 잘 웃기로 유명했잖아. 나는 그 웃음을 잃고 싶지 않아.

 

지금도 충분히 빛나는 너의 찬란함이

세상을 아름답게 비출 수 있기를 바라며.

 

나에게.


 

나는 지나간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려 받고 싶다… 이미 오래전에 떠나가 버린 지난 어린 시절의 아이, 그 아이가 지금도 당신과 내 안에 살고 있다. 그 아이는 당신과 나의 마음의 문 뒤에 서서 혹시라도 자신에게 무슨 멋진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고 오랫동안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로버트 풀검의 시 ‘가장 받고 싶은 선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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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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