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15년에 걸친 여름나기 : 여름날 우리

글 입력 2021.08.26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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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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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개봉했던 박보영, 김영광 주연의 영화 <너의 결혼식>을 리메이크한 영화 <여름날 우리>는 서투른 여름의 사랑을 품고 등장했다. 원작을 보지 않아서 원작과 비교를 하기는 어렵지만 흔히 청춘물, 로맨스에서 등장할 법한 클리셰들의 향연은 요즘 나오는 영화보다도 2000년대의 영화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여러 클리셰를 담은 청춘의 이야기는 진부하고 뻔하지만 그럼에도 간질거리게 하는 묘한 설렘을 준다. 그 시절의 감성은 서투르고 맹목적이어서 모든 걸 제치고 사랑 하나만 보며 무조건 들이받는다.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 ‘저우 샤오치’가 그렇다.


주변 시선이 어쨌건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쩄건 간에 그의 목적지는 오로지 자신의 사랑 ‘요우 용츠’에게로 향한다. 빨간 천을 향해 돌진하는 황소 같은 무서운 사랑의 열기로 그의 주변은 언제나 한여름의 아지랑이가 치열하게 피어오른다. 이 영화는 무려 15년 동안 지속된 폭염이 서서히 식어 가을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처음이었다, 사랑이 싹트는 기분


 

뚜렷한 목적 없이 바람결 따라 흘러가는 인생을 살던 샤오치의 인생에 하나의 이정표가 등장한다. 그 이정표는 그가 줄곧 해오던 수영도, 불현듯 떠오른 성공의 욕망도 아니었다. ‘요우 용츠,’ 중국어로 수영장의 발음을 닮은 이름을 가진 소녀가 그의 이정표였다.


샤오치가 결심한 모든 일들의 끝 지점에는 언제나 용츠가 있었다. 꼴찌에 가까웠던 수영부에서 처음으로 3등이라는 기록을 했던 순간도, 낙서만 가득했던 책을 밤새 들여다보고 천장에 머리를 매달고 공부하면서까지 대학에 들어가야 했던 이유도, 그 어떤 남성도 들지 않았던 여성회에 거리낌 없이 들어가 치어리딩을 했을 때도, 자신의 미래를 뒤로한 채 기꺼이 몸을 날릴 수 있던 모든 동력원은 오로지 용츠다.


무려 15년 동안 그랬다. 그 긴 세월을 한 사람에게 모조리 갖다 바칠 수 있는 사람이, 그렇게 사람을 눈멀게 하는 사랑이 얼마나 있을까, 막막한 위험 속에 미래를 담보로 무작정 뛰어들 멍청이가 과연 현실에 존재하긴 할까. 지금은 그런 판타지 같은 사랑을 기대하기엔 팍팍한 세상임을 안다.

 

그래서일까, 세상은 사랑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이들을 꽤나 한심하다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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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다고 걔가 알아주냐"


일방적인 짝사랑도, 연예인이나 닿을 수 없는 누군가를 향한 덕질을 할 때도 종종 그런 말을 듣는다. 그것은 무모한 사랑을 해보지 않은 겁쟁이들의 빈정거림일 뿐이다. 상대가 알아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내게 남는 것들이 있다. 그것은 누군가와 닿기 위해, 혹은 닮기 위해 노력하며 얻은 명예가 되기도 하고, 치열하게 사랑했던 기억이 되기도 한다.


샤오치가 용츠를 위해 펼친 불꽃놀이는 자신을 알아달라는 징징거림이 아니었다. 그저 제 가슴에 담아 두기엔 벅찬 사랑이 터져 나와 그저 행동했을 뿐이다. 용츠, 한 사람을 위해 쏘아 올린 순정의 불꽃은 높이 솟아 어느 순간 펑 하고 터진다. 그럴 때마다 샤오치의 고백이 울려 퍼지는 듯했다. 비록 그 소음에 가려 진짜 샤오치의 고백은 용츠에게 닿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샤오치는 자신이 빠졌더라도 그 순간을 용츠가 오랫동안 기억하길 바랐다.


불꽃과 함께 터진 샤오치의 마음에서 튀어나온 불티들이 다시 불꽃이 되던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불꽃놀이라는 낭만의 분위기에 취한 청춘들은 샤오치처럼 소음에 기대어 제 마음들을 전한다. 누군가는 숨겨둔 고백이 되고, 누군가는 애정 어린 원망을 쏟고, 누군가는 쑥스러워 감춰둔 진심을 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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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작은 순정들이 만들어내는 커다란 용기와 집념을 이야기한다.

 

대책 없는 긍정과 사랑과 관심을 위한 발버둥, 마음을 계속 끓게 하는 무서운 집념을 마구 쏟아내는 서투른 그의 사랑은 어떤 의미로든 웃음 짓게 하고 마음을 녹인다. 순애보의 사랑을 기대하기엔 지금은 팍팍한 세상임을 안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를 보는 동안만이라도 풀어진 마음으로 샤오치를 더욱 응원하게 된다.

 

 

 

몇 번의 여름이 지나고 다시 만난 너,

이젠 놓치지 않을 거야.



가질 수 없는 것과 가졌다 잃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한 번이라도 손에 쥐어보는 것이 좋은 것일까, 아예 기회 없이 영원한 소망으로 남는 것이 더 좋을까. 불꽃놀이를 바라보는 용츠를 바라만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자신은 옆으로 빠져도 좋다 했던 거룩한 순정이 거뭇한 후회의 그림자에 가려지는 것도 한순간이었다.


여러 번의 어긋남 끝에 어렵게 닿은 둘의 마음은 샤오치의 현실을 만나자 흔들렸다. 모든 걸 제치고 바라보던 사람을 내 옆에 두고 나니 이제 현실이 보인 것이다. 용츠를 구하기 위해 희생한 어깨는 나름대로 그가 쌓아 온 모든 커리어를 흔들었다. 그 대가는 혹독했음을 샤오치는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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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갈림길을 마주하고, 때때로 내가 선택한 길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뒤를 돌아보며 미련을 툭툭 흘린다. 용츠만 옆에 있다면 그런 것쯤이야 상관없다 여겼던 샤오치도 결국 돌진했던 발걸음을 늦추고 자꾸만 몸을 돌렸다.


소유라는 것은 그런 것일까, 시간이 지나면 흐릿해지는 것은 당연한 걸까. 사랑의 본질은 후회일지도 모르겠다. 친구에게만 털어놓은 솔직한 그의 후회는 결국 또다시 용츠를 떠나보냈다. 샤오치는 제가 무심코 건넌 길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뒤만 바라보았다.

 

 

 

널 만난 건 내 인생 최고의 행운이었어.



그렇게 떠나보낸 용츠가 어느 날 느닷없이 보낸 청첩장, 샤오치는 가지 않겠다 다짐하지만, 끝내 마지막으로 제 진심을 전하러 간다. 어리고 볼품없던 시절에 찾아와 15년의 세월을 헌납하고도 여전히 마음이 남은 제 첫사랑을 떠나보내기 위해 말이다.

 

지금껏 자신을 이루던 모든 순간들의 목적지였던 그를 보내며 샤오치는 치열했던 여름의 끝자락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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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청춘도, 강렬한 사랑도, 뜨거운 여름도 영원하지 않다. 묵묵히 제 갈 길을 가는 시간을 정신없이 좇다 보면 아무리 선명하게 남겨진 자국도 흐릿해지기 마련이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고통을 지우고 아련함만 간직한 채 미화된 기억을 곱씹는다.

 

그땐 그랬지, 하고 웃으며 넘길 추억 하나가 새겨진 것만으로도 이미 그들은 충분히 멋진 여름을 보냈다.

 

 

[오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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