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38인의 섬세한 고백 - 아트인사이트 Vol.1: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방식

글 입력 2021.08.25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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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미지근했다. 호오가 뚜렷하지 않았고, 싸움이 조장되는 분위기를 싫어했고, 크게 손해를 보는 게 아닌 이상 타인의 의견을 존중했다. 크게 모난 구석이 없는 무난한 성격과 상황에 딱히 개의치 않는 무던함은 늘 미지근한 온도를 세팅해주었고, 나 역시 이 온도에 맞춰 살아감에 큰 불편을 느낀 적은 없었다.

 

20년을 넘게 미지근하게 살다가 딱 한 번, 정말 크게 ‘아, 이거 좀 잘못된 것 같은데’ 싶은 생각이 든 적이 있었다. 무던함의 대명사라 생각했던 자신이 실은 그렇지 않았고, 나와 잘 맞을 거로 생각했던 게 되려 스트레스로 다가온 순간, 처음으로 스스로에 큰 혼란을 느꼈다. 당시 꽤 큰 충격이었는지 에세이를 쓰는 걸 선호하는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곳에 나를 잘 모르겠다는 내용의 글을 기고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그때의 나는 분명 나를 잘 알기도 하지만 동시에 잘 모르겠으니 사소한 거라도 하나씩 자신에게 질문해가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분류하기로 약속했다.

 

약 4개월이 지난 지금, 누군가 그 약속은 성공적이었는가 하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요’라고 답하겠다. 시도는 좋았으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그냥 대부분 적당히 좋을 것 같았고, 몇몇은 싫을 것 같았다. 모든 게 그럴 것 같은 확신 없는 대답이었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좋아하는지는 늘 나의 연구 대상 중 하나였다. 나는 아직도 혼란과 공존하고, 나를 보듬어주는데 서툴고,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게 낯설기만 한데, 다른 이들은 대체 어떠한 방식으로 행하고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더군다나 멋진 글을 작성해준 분들의 이야기가 모인 책인 만큼 더더욱 망설임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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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명의 사람과 38개의 이야기가 있다. 수십 개의 좋아하는 대상과 수십 개의 좋아하는 방식이 있다. 이제껏 내가 했던 좋음의 표현 방식이 이들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고 느껴질 만큼 열렬히 좋아하는 모습을 보였다. 좋아하는 대상이 너무 좋아 어쩔 줄 몰라 하고, 어떻게든 흔적을 남겨두고, 때로는 가만히 바라만 보기도 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아는 것은 나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아주 중요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p.143

 

그러한 나의 취향들이 조각조각 모여 나를 완성하는 것이다. -p.152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는 다양하다. 인간관계, 학교, 사는 곳, 직업, 그리고 취향. 첫 만남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 좋아하는 것 하나쯤은 필수적으로 언급하는 게 당연해진 듯, 좋고 싫음의 취향 역시 ‘나’를 구성하는 중요한 한 조각이다. 그리고 이러한 조각들을 발견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자 필연이다.

 

책의 한 부분 중 무언가를 좋아하는 건 자연적으로 발현되는 게 아니라 애정 어린 노력이 있어야 생긴다는 맥락의 인용 구절이 있었다. 앞서 내가 ~일 것 같다는 불확실한 대답을 한 것도, 여태 제 단면만 보고서 그게 전체일 거라 확신한 것도, 이 모든 건 ‘무관심’에서 기인했다.

 

살다 보면 자연스레 체득할 거라는 생각에 아무런 시도 없이 가만히 있었고, 항상 타인을 관찰하며 파악하는 건 당연했으면서 정작 자신을 관찰하는 건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자신에 대한 관심이 없으니 확실한 선택은 생기지 않았고, 점점 나라는 존재에 대해 스스로 내리는 확신이 모호해지는 건 당연했다.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굳이 말하자면 적당히, 미지근하게 좋아한다. 그것이 지금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방식이다. (중략) 사람이 정상 체온보다 뜨거운 온도를 가지고 있으려면 그만큼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p.54
 

 

책 안을 수놓은 형광펜의 흔적이 무색하게도 책장을 덮고 나서 오로지 한 대목만이 진하게 새겨졌다. 미지근하게 느껴지는 좋은 감정을 감히 ‘좋다’라는 말로 확실히 표현해도 되는 걸까에 대한 내 의문을 들은 것만 같은 답변이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데 무조건 뜨거운 온도로 타올라야 할 필욘 없고, 미지근하게 좋아하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라는 말이 생경하지만 반갑기도 했다.

 

미지근한 온도를 유지하는 내가 무언가를 미지근하게 좋아하는 건 오히려 잘 된 일 일수도 있다. 너무 뜨거우면 언제 손을 델지 모르지만 미지근하면 오랫동안 잡고 있을 수 있으니까.

 

*

   

이들은 저마다 자신의 좋아하는 것을 아낌없이 써 내려갔고, 자신의 경험을 비추어 독자에게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해주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확실히 알고 그것을 세밀히 관찰하고 열정을 다해 애정을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에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처음 도서를 신청했을 때부터 오랜 나의 혼란이 정성 어린 고백을 통해 조금은 잠잠해지길 바랐다. 책장을 덮자마자 ‘아, 이 책이 나에게 방향을 제시해줬어’ 따위의 극복 스토리가 아니라, 38명의 섬세한 이야기가 나에게 좋은 영양분이 되기를 희망했다. 그리고 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정성스레 꾹꾹 눌러 담아준 이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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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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