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도망가자

글 입력 2021.08.25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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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가자 본문2.jpg

 

 

선우정아, 나는 그녀의 목소리를 좋아한다. 담담하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하고 굉장히 독특했다가 또 굉장히 따뜻한 목소리, 목소리가 최고의 악기라는 생각을 그녀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종종 하곤 한다.

 

나는 <그러려니>라는 노래를 가장 좋아한다. 한때, 사람 사이의 인연과 그 관계에 허무함을 느끼던 때, 우연히 만나게 된 이 노래는 참 많은 위로가 되었다. 그러려니- 그러려니-, 나는 그러려니라는 말이 그렇게도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는 것을 이 노래를 들으며 처음 알았다.

 

<도망가자> 역시 그녀를 대표하는 노래 중 하나이다. 먼저 그 가사를 잠시 살펴보려 한다.

 

*

 

도망가자

어디든 가야 할 것만 같아

넌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아

괜찮아

우리 가자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대신 가볍게 짐을 챙기자

실컷 웃고 다시 돌아오자

거기서는 우리 아무 생각 말자

너랑 있을게 이렇게

손 내밀면 내가 잡을게

있을까, 두려울 게

어디를 간다 해도

우린 서로를 꼭 붙잡고 있으니

너라서 나는 충분해

나를 봐 눈 맞춰줄래

너의 얼굴 위에 빛이 스며들 때까지

가보자 지금 나랑

도망가자

멀리 안 가도 괜찮을 거야

너와 함께라면 난 다 좋아

너의 맘이 편할 수 있는 곳

그게 어디든지 얘기해 줘

너랑 있을게 이렇게

손 내밀면 내가 잡을게

있을까, 두려울 게

어디를 간다 해도

우린 서로를 꼭 붙잡고 있으니

가보는 거야 달려도 볼까

어디로든 어떻게든

내가 옆에 있을게 마음껏 울어도 돼

그다음에

돌아오자 씩씩하게

지쳐도 돼 내가 안아줄게

 

 

도망가자 본문7.jpg

 
 

괜찮아 좀 느려도 천천히 걸어도

나만은 너랑 갈 거야 어디든

당연해 가자 손잡고

사랑해 눈 맞춰줄래

너의 얼굴 위에 빛이 스며들 때까지

가보자 지금 나랑

도망가자

 

*

 

누군가 나에게 도망가자고 말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노래를 듣는 내 첫 번째 생각이었다. 도망이라는 건, 왠지 혼자 힘으로 만들어내기 어려운 일인 것 같다. 현실을 벗어난다는 결단은 쉽지 않으니까. 그러니 누군가 내 옆에서 함께 도망가자고 말해준다면 참 많은 힘이 될 것 같다.

 

나는 언제 가장 도망가고 싶을까? 아무래도 진짜 하기 싫은 일들만 가득가득 쌓여있을 때인 것 같다. 그럴 때면, 아침에 눈 뜨는 것조차 싫어진다. 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너무나도 하기 싫으니까.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누가 봐도 훌륭한 싱어송라이터인 선우정아 역시 앨범 작업을 앞두고 도망가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주었던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함께 도망가자 말해주던 사람. 그녀의 힘듦을 온 마음으로 이해해 준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그에게서 받은 위로를 돌려주고자 만들기 시작했다던 노래, 그 노래가 점점 커져 아픈 이들을 위로해 주는 노래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책 <도망가자> 역시 그 연장선에서 시작된 프로젝트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우정아의 가사와 일러스트레이터 곽수진이 만나 탄생한 책 <도망가자>는 곽수진이 선우정아의 가사를 들으며, 그리고 그 가사에 응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며 노견과의 여행을 떠올렸다고 한다. 가장 사랑하는 존재와의 마지막 여행, 그 도망은 참으로 아프고 소중한 도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드러운 선의 느낌과 잔잔한 색감, 그리고 나와 사랑하는 강아지. 평화로운 풍경을 바탕으로 함께 하는 여행을 따라 흘러가는 가사를 읽노라면, 그리고 듣노라면 짧은 문장이지만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

 

좋은 시는 노래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좋은 가사는 책이 되기도 한다. 선우정아의 가사는 음미하는 맛이 있다. 지난 나를 돌아보게 하고 지난 시절을 그리워하게 한다. 나는 그녀의 음악이 선사하는 멜랑꼴리한, 오묘한 감정을 온 몸으로 느낀다.

 

책 <도망가자>를 읽는 순간은 귀로 느끼던 감정을 눈으로 느끼는 시간이었다. 그림이 더해져 더욱 진해진 여운과 함께.

 

 

[김규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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