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쌓인 외로움이 무덤이 되지 않도록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 홍성은 감독, 2021
글 입력 2021.08.25 11:18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

본 글은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AI를 대신할 수 있을까?


 

common (1).jpg

 

 

상담사 주인공 유진아는 콜센터 1등 공신이다. 고객의 지나친 요구에도 감정이 무너지지 않고 명랑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모친상을 치른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도 여전히 1등의 자리를 유지하다니, 그는 슬픔도 짜증도 없는 AI인 걸까? 영화 속 팀장은 AI가 상담사를 대신하는 시기라며, 얼른 분주히 일하라고 재촉한다. 그렇다면 반대로 진아는 불완전한 사람 대신 완벽한 AI가 될 수 있을까.


진아는 이어폰을 낀 채 핸드폰 속 TV쇼를 끊임없이 본다. 시끌벅적한 화면과는 다르게 진아의 표정은 한결같이 변화가 없다. 매일같이 복도에 나와 담배를 피우던 남자의 안부에도 응답하지 않는 건 물론이고, 회사 동료들과 함께 밥도 먹지 않는다. 그저 최소한의 대답과 물음만 던질 뿐이다. 이처럼 초기 진아는 꽤 AI처럼 보인다.

 

 

 

고된 현실을 버텨내기 위한 남은 선택지


 

9.jpg

 

 

하지만 무관심한 진아의 AI 같은 태도는 버거운 현실을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감정을 최대한 덜 소비해 삶을 견디려는 시도였을 것이다. 어머니를 두고 바람을 일삼던 아버지에 대한 화를 누르고, 최소한의 가족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 끝없이 들려오는 욕설을 견디고 업을 유지하기 위해 할 수 있던 노력으로 보인다.


그리고 사실은 진아가 늘 외로웠다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영화 전반에 흐르는 가느다란 전화 연결음과 같은 배경음악과 일상소음들은 아무런 말도 없는 진아의 비어있는 곳을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늘 비디오의 소리를 듣고, 심지어 TV를 틀어놓고 잠들었다. 즉 온전히 혼자였을 때가 없다. 혼자였으나 혼자가 아니었다.


나 또한 집에서 혼자 밥을 먹을 때, 유튜브라는 밥 친구가 꼭 필요하다. 지하철에서 에어팟, 이어폰의 존재도 아주 중요하다. 또 사람들은 자신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고 그를 보여주며 함께 소통한다. 이는 온라인으로 계속 연결되려는 사회적 심리와도 연관이 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SNS를 사용하며 함께 ‘무리’ 안으로 들어간다. 진아의 모습에 공감을 표한 이들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혼자가 되고 싶으나, 혼자가 아니길 바라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편 홍성은 감독은 고독사에 대한 위기감에서 영화의 모티프를 얻었다고 한다. 현재 1인 가구가 늘면서, 그 안에서 오는 고독감이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문제도 발생했다. 사회에서 배제되어 가는 이들이 많아진 것이다.

 

 

 

결국은 함께 살아가는 존재



common (4).jpg

 

 

한편 무미건조한 생활을 보내던 진아에게 어느 날 신입 박수진이 교육생으로 들어오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떠밀려 맡게 된 그에게 수진은 거추장스럽기만 한 존재였다. 진아와 달리 수진은 지나치게 명랑해서 무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상담을 받는 진아 옆에서 목을 상쾌하게 하는 ‘프로폴리스 스프레이’를 뿌려주다가 혼나기도 하고, 밥을 왜 혼자 먹냐며 억지로 진아 옆에 끼기도 한다.


그러던 수진이 점차 명랑함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온갖 욕설을 들어가면서도 연신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라고 답한다. 그리고 점차 어두운 옷을 입는 진아를 닮아간다. 그는 진아에게 묻는다. 전화를 받지 않을 때도, ‘뚜뚜’ 거리는 통화 연결음이 계속 들리지 않냐고. 그리고 더는 일터에 나오지 않는다.


이후 수진이 떠난 뒤 진아는 이상한 증상을 겪는다. 잘만 나오던 목소리가 갑자기 막혀 잘 나오지 않고, 수진이 말한 대로 귀에는 계속 ‘뚜뚜’ 거리는 연결음이 들린다. 이 때문에 카드 명세서를 틀리지 않고 AI처럼 읽던 그였는데, 정확하게 읽을 수 없다. 고장이 난 진아는 상황을 견딜 수 없어 밖으로 뛰쳐나온다. 그리고 어머니를 잃은 뒤 사람들과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는 아버지에게 이제껏 내지 못했던 화를 신경질적으로 쏟아낸다. 자신에게 용서를 구하라며. 처음으로 크게 감정을 표출한다.


그렇게 거리를 거닐다가 시간이 흘러 진아는 수진에게 전화를 한다. 자신도 혼자 밥도 못 먹고, 혼자 담배도 못 피우며, 혼자 아무것도 못 하는 것 같다고 말이다. 또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전한다. 만나서 반가웠고 못 챙겨줘서 미안했다고 용서를 구한다. 헤어지는 과정에서 진아는 다시 정중하게 진심을 전하는 방법을 배운다.

 


common (5).jpg

 

 

이렇게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내자 고장 나 있던 그가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아는 영화를 끄고 혼자의 힘으로 잠이 든다. 상담사 업무를 잠시 쉬기로 하고, 돌아가신 어머니 번호로 전화를 거는 아버지도 마주한다. 차마 지우지 못했던 엄마의 빈 전화번호를 떠나보내기로 한 것이다.


혼자 사는 사람들의 제목에는 표면적으로 혼자 살아가는 이들을 뜻하지만, 마음이 심각하게 공허한 사람들이라는 아픔이 숨어있다. 진아는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으나 결국 다시 사람으로서만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를 깨닫는다. 사람은 누구나 완벽히 혼자서기엔 연약한 존재이다. 그리고 강인함 이면에는 외로움이 존재한다는 것도 극명한 사실이다. 이 사실을 피하지 않고 마주할 때, 사람은 더 성장하게 된다.


이렇게 진아는 느리지만 앞으로 나아간다. 이어폰을 빼고, 핸드폰과 TV를 멈춘다. 오로지 ‘나’를 돌보고, 사회 속에서 진정한 홀로서기를 연습하기 위해서다. 꾸밈없이 현실을 담아낸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은 누군가의 쌓여있는 외로움을 발견하고 덜어내고 있다.

 

 

 

심은혜.jpg

 

 

[심은혜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