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기운,지운] 동맹/습관

3장/4장
글 입력 2021.08.28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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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

 

   

너는 만약 다른 사람들을 영원히 못 만나고 지운이랑 단둘이 살아야 한다면 어떨 것 같아?

 

지은은 간혹 기운에게 물었다. 기운은 웃으며 너는 어떤데, 되묻고 끝내 답을 안 했다. 답을 하는 건 매번 지은이였다. 나는 너희랑만 살아야 한다면, 그건 괜찮을 것 같아. 이렇게 내 삶을 반으로 나눠서 거짓으로 채우지 않아도 되잖아. 기운은 그저 말없이 지은의 빈 술잔을 채워줄 뿐이었지만, 지은은 기운의 답을 알았다.

“그렇게 사람이 좋아서 이 세상 어떻게 살래?”

“이렇게 날 도와주는 우리 지은이랑 지운이랑 같이 살면 다 해결되지.”

그들의 대화는 몇 번의 변주를 거쳐 그들이 서로에게서 독립할 때까지 반복되었다.

 

지은과 기운 둘 다 주위의 시선에 둔감한 편이었다. 그러나 그들 사이를 규정하려는 사회의 시선에는 속속 무책이었다. 자신들의 사이를 규정하기 이전에 각각의 정체성을 규정해야 하는데, 이것부터가 그들에게는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함부로 단정 지어 내릴 수 없는 일이었다. 이십 대의 지은과 기운은 어딘가에는 운명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점차 그 운명이 다가와도 본인들이 운명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될지 막연하게 짐작했고 조금씩 확신했다. 그렇게 둘의 모험은 계속되었고 동맹은 조금씩 더 견고해졌다.

 

그들은 가급적이면 남들에게 동거한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들이 동거를 밝힐 때 사람들의 반응은 대개 둘이었다. 경악하거나, 쿨한 척 넘기거나. 나중에 결혼식은 하지 않고 혼인신고만 한다고 했을 때의 시선을 지은은 기억했다. 심지어 자신을 닮지 않은 아이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의 시선도. 자신을 두고 뒤에서 어떤 말이 오갈지 추측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세간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자신들의 가족 정체성은 평범하지 않았고, 그래서 자주 누군가의 입에서 함부로 흘러나왔다. 그들의 세계가 아무리 견고해도 그 시선은 자주 그들의 성벽을 공격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성벽을 지키기 위해 사회적으로 서로의 방패가 되어주었다. 타인에게 쉽게 무례를 저지르는 사람들로부터 서로 남자친구가 여자친구가 추후의 결혼 상대가 되어주었고 남들은 우습게도 자신들의 관심이 어느 정도 충족되면 그 이상의 관심을 쉽게 버리니, 지은과 기운은 그들의 세계에서 나가는 일 없이 살아갈 수 있었다. 지은은 퇴근하고 현관문을 열기 전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인기척과 지운이와 기운의 소리를 가만히 서서 듣고는 했다. 그 소리들이 바깥세상에서 소란했던 지은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었다.

   

*

 

지은과 기운은 미래에 각자 어떤 집을 살 것인지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다. 둘 다 나이가 들면 서울에 살고자 하는 마음은 없었다. 각자 추구하는 스타일이 정말 달랐는데, 그래도 하나의 인테리어 잡지를 구독해서 같이 나눠 읽었다.

 

결국 그들은 서울 집을 정리하고, 각자가 오랫동안 꿈꾸었던 장소를 찾아 멀어졌다.

 

기운의 집은 통영에, 지은의 집은 양양에 있다.

 

지운이는 여름엔 주로 지은의 집에 와있고, 겨울엔 기운의 집에 가 있는다.

지은의 집엔 지운이와 그녀의 서프보드가 나란히 서 있다.

지은이 지운이에게 통영집에선 주로 뭐해? 라고 물으면 지운이는 그냥 아빠랑 가만히 누워있어요, 집이 채광이 좋거든요 라고 말한다. 지운이는 둘의 지금이 신기하다고 했다. 지은이 남들과 스스럼없이 서핑을 즐기는 것도, 아빠가 집에 가만히 누워서 책을 읽는 모습도. 왜 둘은 떨어지고 나서야 서로를 닮아가는 거예요? 지운이는 웃으며 종종 물었다.

 

*

 

이십 대 초반의 어느 날

 

지은이 고개를 숙인 기운의 얼굴에 입술을 대어본 건 충동적인 일이었다. 그들은 그 일을 여태껏 꺼낸 적이 없었다. 그날은 서로의 첫사랑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쩌다 그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은과 기운은 각자 누군가 좋아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서로 놀랐다.

지은은 중학교 3학년 때 좋아했던 남자애를 오랫동안 잊지 못했었고, 그다음 좋아했던 사람은 자주 가던 카페의 여직원이었다고 말했다. ‘지은아, 네 동네 그 카페 사장님?’이라고 질문을 넣던 기운의 시선에 사실 친구네 집 근처, 집에서 버스를 갈아타서 가야 하는 그 카페를 오직 그 직원의 얼굴과 분위기가 좋아서 자주 갔다고 고백했다. 지은의 고백에 봐봐, 은근 너 얼굴 많이 본다니까라며 기운은 지은을 놀렸다.

 

 

이상하지. 그 두 명을 이후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다고 단정 지어 버린 것이.

그 이상한 사람 여기도 있잖아. 적어도 한 사람보다 두 명 정도 있으면 덜 이상해 보이지 않을까?

 

 

기운의 첫사랑은 남중에서의 학급 친구였다고 했다. 외양이 다른 널 배척하는 어린아이들 사이에서 유독 어른스러웠던 남자애. 기운은 중학교 시절 내내 그 아이와 함께였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서울로 너 혼자 올라오게 되면서 그 아이에게 고백을 했다고 했다. 그 아이는 정중하게 네 고백을 거절하고, 기운에게 친구로 지내면 안 되겠냐고 물어보았다고 했다. 그 친구는 지은도 아는 친구였는데, 둘이 과거에 그런 일이 서로 있었다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럼 지금도 좋아하는 감정이 남아있어?”

“응. 하지만 고백을 했을 때도 그 앨 내가 성적으로 좋아한 건지는 모르겠어. 너도 봤지만 우린 서로에게 너무나 좋은 친구잖아. 내가 정말 걜 좋아했다면, 지금처럼 친구 사이로 남을 수 있었을까?”

난 그런 생각을 종종 하곤 해, 라고 기운은 작게 말했다. 그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보고 지은은 충동적으로 입을 맞추었다 떼었다. 기운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웃었다. 그러고는 바닥을 짚고 있던 지은의 손을 들어 장난스레 손등에 입술을 대었다 뗐다. 지은은 그들 사이의 공기가 마치 오랫동안 햇빛 아래 놓아둔 빨래처럼 느껴졌다. 둘 다 빨래를 걷는 일을 잊어버린 것이 아닌, 그렇게 햇빛 아래 가만히 누워있도록 두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이 한 명이 아니라 둘이라는 건 참 다행이구나, 지은은 기운을 따라 웃었다.

 

 

그 후 아주 훗날의 어느 날

 

지은이 지운이와 마주 앉아 밥을 먹던 어느 날이었다.

“지은 씨, 우리 아빠가 술 취하면 꺼내는 이야기 중 하나가 뭔지 알아요?”

“뭐 서러운 거 이야기하면서 울거나, 울겠지.”

“아닌데요. 그거 말고 가끔 어쩌다 한 번씩 하는 얘기 있는데.”

“그게 뭔데?”

“지은 씨 앞에선 한 번도 한 적 없나 보네요?”

“뭔데 그래”

“지은 씨가 우리 아빠한테 뽀뽀한 적 있다면서요? 내가 그 이야기 처음 들었을 때 진짜 놀랐었는데.”

 

지은은 입안에 가득 찬 밥알을 더 천천히 씹으며 그게 언제 적 이야기인지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그리고 그 일을 한 번도 기운과 서로 입 밖으로 낸 적이 없다는 것도 기억해냈다. 그날 둘을 둘러싸고 있었던 공기가 지금까지 지은의 곁을 맴돌고 있었고, 기운 역시도 그러할 것이라 생각했다.

 

지운이는 그날 그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다고 했다. 지은은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지은은 자신의 허락을 받고 신난 지운이의 뒷모습을 보며 주로 주방에서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기운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지운이는 그날따라 지은에게 이것저것-주로 지은과 기운의 이십 대 시절-을 물었는데, 지은은 주로 기운과 있었던 재밌거나 즐거운 일들을 말해주었다. 지은 씨랑 아빠를 괴롭히는 사람은 없었어요? 라고 지운이가 물었지만, 이상하게도 그들을 괴롭혔다고 한때 생각했던 사람들의 말은 지은의 마음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

 

가끔 기운이 없는 날에는 지은이 요리를 했다. 기운은 친구가 많은 것치고는 저녁엔 집에 있는 편이라 그럴 일이 별로 없었지만. 그들은 외박하는 날에는 꼭 메모를 냉장고 위에 붙여두고 나갔다. 세 사람 나름의 규칙이었다. 지은은 ‘외박입니다’라고 적어두고, 기운은 ‘오늘 집에 없음!’이라고 붙여놓는 편이었다. 지운이도 나중에는 그들을 따라 친구 누구 집에서 자고 오겠다며 적어두고 나갔다. 기운과 지은 둘 다 지운이의 메모를 보고 아이에게 따로 연락하지는 않았다. 그런 그들을 보며 어느 날 집에 놀러 온 지운이의 친구는 쿨한 부모님을 둬서 좋겠다고 부러워했다. 그럼 맞은편에 주로 앉아있던 지은은 우리가 쿨한 게 아니라, 우리 집 규칙이 그래, 라고 말했고 옆에서 기운은 냉장고 옆 나란히 붙어있는 세 장의 메모를 보여주었다.

그들이 같이 살던 초반에는 굳이 메모를 남기지 않았다. 어느 날 암묵적으로 합의를 했다. 빨래를 하다가 기운이 벗어두는 외출복에서 나는 낯선 타인의 냄새를 맡고 지은은 자신이 먼저 메모를 붙여두었다. 메모가 붙어있는 한, 서로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건 서로가 서로에게 비밀이 있고 없고를 떠나 어느 순간부터 각자의 시간을 존중하는 방법이 되었다. 기운은 지운이가 함께 한 이후로 집을 비운 적이 없다. 그런 기운에게 지은이 줄 수 있는 어쩌다 한 번의 휴가에 기운은 친구들을 만나거나, 홀로 캠핑을 다녀왔다.

 

지은은 간혹 절실하게 혼자이고 싶었다. 그럴 때 냉장고 위에 지은의 메모가 오랫동안 붙여져 있었다. 지은은 직장이 있었으므로 길게 집을 비운 적은 몇 없다. 그럼에도 기운과 지운이는 삼 일 넘게 지은이 돌아오지 않으면 슬며시 번갈아 연락을 했다. 지은은 어느새 그 연락을 기다리다가 항상 집으로 돌아갔다. 기운이 지은에게 곧잘 말하는 우리는 동맹 관계잖아, 라는 그 말을 지은은 좋아했다. 혼자이고 싶다가도 그 말에 매번 넘어갔다.

 

   


 

 

습관

 

   

빔 스크린에 영화를 틀어놓고 거실에 모여 자는 건, 그들의 오래된 습관이다. 지은과 기운이 처음 만난 날 지은의 방에서 영화를 보다 잠이 든 것처럼, 그들은 같은 공간에 함께한 이후로 돌아가며 자신의 취향인 영화를 틀었다. 그들이 선택한 영화의 분위기는 어느 순간 비슷해졌다.

지운이와 함께 한 이후로는 지운이가 좋아할 법한 애니메이션 혹은 판타지 영화도 즐겨봤다. 지은은 뒤늦게 새로운 장르의 영화의 매력에 빠져서 지운이와 둘이서 좋은 영화는 몇 번이고 다시 보았다. 밤늦게까지 영화를 보는 둘을 보며 기운은 걱정 어린 잔소리를 늘어놓고는 했다.

 

지은은 혼자 사는 지금도 저녁을 먹은 뒤엔 습관적으로 영화를 고르고, 영화를 바라보다가 잠이 든다. 침실의 의미가 무색하게 빔 스크린이 있는 거실 소파 위에서 깨는 날이 많다. “나는 이래, 너도 그래?”라고 기운과의 통화 중에 물었는데, 기운도 그렇다고 했다. 지은은 이제 혼자서 반신욕을 즐긴다. 서울에서는 퇴근한 지은의 표정을 살피던 기운이 종종 준비해줬는데, 이제 물을 받고 온도를 맞추는 건 오로지 지은의 몫이다. 매번 욕조에 받는 물의 온도를 맞추며 기운과 자신의 온도를 상상한다. 딱 그 정도의 온도가 좋다.

 

그들은 때때로 저녁마다 통화를 한다. 어쩔 땐 길고, 대부분은 짧다.

 

지은은 안락의자에 기대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운의 목소리를 듣는다. 가끔은 흘려듣는다. 반면 기운은 지운이와 대화하면서 혹은 텔레비전을 켜 놓고 지은과 통화한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다큐멘터리가 좋은 것 같아.”

“왜?”

“딱 우리랑 닮은 분위기의 목소리인 경우가 많거든.”

기운이 알려주는 다큐멘터리를 지은도 간혹 본다. 성우가 말을 많이 하지 않고 오로지 풍경을 보여주는 영상을 보면 기운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자연이나 과학 다큐멘터리를 지은은 오래 보지 못하고 도중에 잠들어버리기 일쑤다. 그런 의미에서 기운의 목소리를 대신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지운이의 목소리도. 기운은 지은과 통화한 것들을 잊은 적이 없다고 했다.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오는 기운의 목소리를 듣는 걸 지은은 좋아했다. 아주 옛날의 일도 기억하는 기운은 그마저도 기운다웠다.

 

기운은 통화하며 이것저것을 한다. 기운이 설거지하기 전에 전화를 걸면 그날의 통화는 꽤 길어진다. 지은은 설거지를 여전히 싫어하는 기운이 아이 같았다. 기운은 가끔 설거지를 하다가 그릇을 깨기도 했다. 그럴 때면 지은은 이만 전화를 끊자고 해도 기운은 계속해달라고, 혼자서 하는 설거지는 도무지 하기 싫다고 말한다.

 

지은과 기운이 서로에게 거의 완벽한 동거인일 수 있었던 이유는 각자 잘하는 일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기운은 요리에 관심이 많았고 까다로운 분리수거 방법을 달달 외우고 있었다. 반면 지은은 집을 청소하는 걸 좋아했고, 빨래를 널고 갓 마른 옷가지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개는 걸 소소한 행복으로 여겼다. 지운이를 돌보는 건 기운의 몫이었다면, 지운이를 친구처럼 놀아준 건 지은이었다. 그들의 이러한 역할분담은 서로가 부재할 때를 제외하고는 바뀐 적이 없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로부터 독립했을 때 제일 난감했던 것은 그동안 거의 해본 적 없는 가사 일에 대한 부분이었다.

여전히 지은은 요리를 잘하지 못한다. 그래서 간단한 레시피가 아닌 요리를 즐기지 않는다. 기운은 밥 먹고 식기를 물에 담가두고는 그대로 잊어버리기 일쑤라고 했다. 그래서 지은과 통화해야지, 하며 설거지를 시작한다고 했다. 그 외에도 기운은 최대한 빨래를 끝까지 미루다가 해치웠고, 지은은 대충 끼니를 챙기다가 지운이가 놀러오는 날에 혼나며 냉장고를 채우곤 했다. 지운이가 전등을 갈아주면서 아빠는 아직도 벌레를 잘 못 잡아요, 한심해하면 지은은 여전하네, 하며 웃었고 그쵸, 지은 씨도 여전하죠 라고 지운이 말했다.

습관은 한순간에 고칠 수 없어서 그들은 서로의 미숙함에 웃으며 혹은 서로의 부재를 실감하며 살았다.

 

 

다음 장, '홀로'

 

 

[전지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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