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아이들에겐 꿈과 희망을 - 빛과 그림자의 판타지 展 [전시]

자연의 아름다움, 생명의 존엄함, 인생
글 입력 2021.08.23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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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린 시절 우연히 들었던 믿지 못할 한마디. 이 세상을 다 준다는 매혹적인 얘기 내게 꿈을 심어주었어.


- 애니메이션 ‘원피스’ KBS판 1~6기 오프닝곡 ‘우리의 꿈’ 中

 

 

아무것도 (물리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간직하지 않은 채로 태어나는 아이. 그야말로 오감으로 받아들이는 모든 것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기 시작한다.

 

어른의 눈에는 마냥 귀엽게만 보일 아이들에게, 될 수 있으면 꿈과 희망이 가득한 세계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같다. 장밋빛 세상을 마주하고서 분명 누군가는 우람한 포부를 키워나갈 것이다. 마치 어린 시절 우연히 들었던 어른의 한마디가 꿈으로 탈바꿈한다는 내용의 어떤 노랫말처럼.

 

필자는 태어나자마자 단지 ‘남보다 앞서 나가기 위한’ 공부를 시키는 데 반대한다. 미취학아동 시절부터 소위 ‘영재성’을 발굴한답시고 자녀를 학원 순환 열차에 탑승시키며, 즐겁게 살 준비가 아닌 출정 준비를 시키는 부모님들이 적잖이 있다. 아직 만으로 한 자릿수 해만큼 산 아이들에게 줘야 하는 건, 학원 쳇바퀴를 돌면서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그 바깥의 세상을 온몸으로 맞으며 얻는 건강하고 충만한 마음이 아닐까.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두뇌 발달에 좋다는 학습지를 해야 한다’ 등 학부모님들 사이에서 돌아다니는 유언비어로 교육의 방향이 획일화되는 세상. 초록색을 한껏 눈에 담으라는 의미에서 교외에 있는 숲으로 여행도 자주 다니고,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마음껏 뛰놀고, 영화도 보고 만화도 보면서 인생을 다 바쳐도 모자란 ‘경험’을 채워나갔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억압하는 교육 환경 속에서도 꺼지지 않을 꿈 하나가 자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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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낮은 오랜만에 휴가를 내고 미술관을 찾은 가족들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사람 많은 것을 질색으로 여기는 필자는 들어가면서부터 머리가 지끈 아파지기 시작했다. 한가람미술관 1층은 피카소 전을 하는 중이었다. 특히 그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를 아이들이 피카소 전을 보기 위해 긴 줄을 꾸역꾸역 참아내고 있었다.

 

일전에 피카소와 비슷한 저명도의 외국 화가 전을 보러 갔을 때, 한 어머니가 칭얼대는 아들에게 다그치듯 한 말이 귀를 타고 들어왔던 일이 생각났다. ‘이 사람 유명한 사람이야! 알아두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거야. 잔말 말고 따라 들어와.’

 

다행히 필자가 그날 보기로 한 ‘후지시로 세이지 - 빛과 그림자의 판타지 展’은 3층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1층과는 딴판으로 한산한 분위기가 공간을 휘감았다. 너무 사람이 없어서 살짝 우려될 정도였다.

 

그러나 전시장에 들어가면, 피카소 전을 기다리고 있는 1층 아이들을 데려와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샘솟는다. 독자 여러분도 필자의 글과 아트인사이트 내의 다른 리뷰를 참고하여 꼭 전시회에 가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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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생인 후지시로 세이지는 카게에(影絵; 그림자 그림) 장인이다. 일본 미술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우키요에(浮世絵; 에도시대 중기에서 후기에 유행했던 판화)가 당시 유럽의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끼쳤듯, 후지시로 세이지의 카게에는 21세기 일본 현대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다.

 

1940년대 후반부터 이어온 그의 그림은 공백기가 없다. 반세기에 가깝게 그가 전념해온 분야는 다름 아닌 ‘인형극’이었다. 1952년 NHK 개국과 함께 방송 콘텐츠 개발을 담당하게 된 그는 빛과 그림자를 활용하여 성경, 서유기, 안데르센 동화, 러시아 민화 등 전통적인 이야기를 재현하기도 하고, ‘은하철도의 밤’, ‘울어버린 빨강 도깨비’처럼 직접 캐릭터를 개발하여 연출하기도 했다.

 

그의 그림을 가까이서 접하면 어릴 적 언젠가 봤던 것 같은 익숙한 느낌도 든다. 캔버스에 그려진 유화가 아니고 그림 뒤에서 빛이 나오며 그림자 효과가 극대화되기 때문에, 직접 오지 않고 팸플릿이나 휴대폰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감동할 수 없다. 이름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돌아가는 원통의 틈 사이로 시시각각 바뀌는 그림을 보는 애니메이션 장치 속에 들어온 느낌이다.

 

독서에 필적하는 상상력을 심어주기 위해 노력한 그는 인형극 말고도 밝은 미래라는, 여타 화가들이 말하고 싶었던 주제에도 더불어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나는 빛과 그림자로 자연의 아름다움, 생명의 존엄함을 그려가고 동시에 인생을 그려가고 있다’는 화가의 말처럼, 우울하기 짝이 없는 어른들의 세계에서 ‘아름다움’을 보려고 했다.

 

평화로운 미래를 염원한 거대한 작품들 역시 관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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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리 두드러져 보이는 검은 눈동자와 굵직굵직한 선은, 호랑이, 장난감, 개구리, 소년, 고양이가 그림 속이 아니라 관객 바로 앞에서 대화하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할 정도이다. 오랜만에 유년기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후지시로 세이지가 만약 가능하다면, 화가로서 더 많은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만의 화풍으로 구현해 낸, 여러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을 아이들이 직접 경험하면서, 거대한 그림의 크기만큼이나 거대한 꿈을 키워나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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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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