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사 [공간]

이번 선택도 최고의 선택이었기를
글 입력 2021.08.20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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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서류를 낼 일이 있어 주민센터에서 나와 부모님의 초본을 발급받았다. 세상에, 원래 초본이 이렇게 길었었던가? 무려 네 쪽에 걸쳐 당신이 살아왔던 주소, 집의 역사가 상세히 쓰여 있었다. 행정명이 바뀐 것을 제외하고 이사만 열 번 넘게 하셨다.


나는 20대 후반인데도 부모님에 필적할만한 양이었다. 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서 여러 번, 서울에 올라올 때 한 번 옮기고, 2년 뒤 이사, 2년 뒤 군대, 또 2년 뒤 이사... 어쩜 머물렀던 집마다 재계약을 못 하고 쫓겨났는지. 착잡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와 함께 정처 없이 옮겨 다닌 짐은 원래부터 거기에 있었다는 듯 아무 말 없이 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서울에 본가가 있는 것마저 ‘스펙’인 세상이다. 초등학생의 장래 희망을 묻는 설문에서 1위는 프로게이머, 운동선수를 거쳐 이제 ‘건물주’가 되었고, 우연히 ‘주(主)’가 뒤에 붙는 바람에 점점 살기 팍팍해진 세상에서 건물주는 단순한 주인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와 동급으로 신격화되었다.


물론, 나도 건물주가 되고 싶다. 돈이 돈을 낳고, 돈으로 권력이 결정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두가 계급을 높이기 위해 아등바등한다. 더 위로 올라가기 위해 연애도, 결혼도, 여가도 포기하지만, 그렇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만이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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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도 졸업을 앞두고 있겠다, 그런데도 잔류를 선택한 이유는 본가가 있는 지방에서 할 수 있는 것이 극히 제한적이라는 데에 있었다. 마침 학교에서 조금 더 떨어진 동네에 신축 건물이 싸게 나왔다고 하여 또 한 번의 이사를 결심했다. 이 이사가 옳은 선택일까? 그냥 부모님 도움 필요 없이 학교 앞에서 계속 살 걸 그랬나? 크게 인생이 달라지지 않을 것 같은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임대차계약서에 서명했다.


모든 인프라가 어린 대학생 위주로 짜여 있는 학교 앞에서의 생활은 점점 불편해지고 있었고, ‘너는 지금 20대 후반인데 아직도 학교 앞에서 살아?’라며 ‘지박령’ 취급받는 것도 싫었다. 한 동네에서 집만 요리조리 옮기다 보니 피로하기도 했고.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어야 했는데, 여러 측면에서 매너리즘에 빠져 허덕이던 나는 새로운 동네로 옮겨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 버렸다. 정신 차리고 보니 손에 펜을 쥐고 사인을 하고 있었고, 또 어쩌다 보니 이사를 하는 날이 왔다.

 

언제까지 임대차계약서에 세입자로 서명을 하고, 언제까지 짐을 옮겨야 하는 걸까. 문득 본가 생각이 났다. 고등학교 동창 중 한 명은 내가 사는 동네를 보고 ‘슬럼가’라고 했고, 언젠가는 본가 앞을 지나던 아주머니 두 명이 우리집 주택을 가리키며 ‘흉물스러우며 귀신이 나올 것 같다’고 하고 몸서리치며 갈 길을 가는 것을 보았다. 30년 넘게 일만 하셨는데 이곳저곳 못 받은 돈이 많아 몸은 몸대로 성한 곳이 없고 아직도 가난과 월세 신세를 못 벗어난 가족이 떠올랐다. 20대 후반인데 아직도 부모님 등골을 빼먹고 있는 것 같아 죄책감이 들 따름이다. 울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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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나하게 술에 취해 들어와 몸을 던져넣던 침대에서 이불이 빠지고, 옷장도 텅텅 비어버리고, 책장에도 아무것도 없다. 2020년 2월 말, 전역과 동시에 바로 복학하기 위해, 휴가를 나오자마자 군복 차림으로 계약된 집에 들어가 후련함에 절로 사진을 한 장 남겼던 때가 떠올랐다. 안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에서 해방되고, 앞으로 닥치는 어려움은 군 시절의 그것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일 테니 무조건 이겨내리라는 패기로 가득했던 때. 누구나 그렇듯, 자신감이 넘치는 복학생 모드였던 때.


1년 반 전의 모습으로 돌아가 다른 세입자를 맞이할 준비를 한 집을 바라보며, 형언할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밖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집에는 돌아와야 했고, 현관문을 닫는 순간 혼자가 되며 속으로 삭이던 감정을 분출했다. 내 마음대로 세상이 움직여주지 않는 법이라지만, 사람에 당하고 치이는 경험은 면역이 되지 않는다. 집 곳곳에 1년 반 동안의 스트레스가 아로새겨져 있다. ‘우리가 오래 살아온 공간에는 상처가 있다’는 어느 에세이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살아갈수록 생채기로 얼룩지는 팍팍한 삶을 버티게 해 준 좋은 기억도 물론 있다. 내 자췻집을 ‘DT(대현텔)’ 내지는 ‘TD(더 대현)’이라고 부르며 아지트처럼 들락날락하며 나와 보내는 시간을 좋아해 준 친구들. 가족과 떨어져 살아도 친구들이 있었기에 학교를 무사히 마치게 되었다. 짐은 모두 챙겼지만, 좋았던 일, 짜증 났던 일, 행복했던 일, 슬펐던 일은 이 집에, 이 동네에 놓고 간다. 미래에 여기를 다시 들른다면 추억으로 바뀌어 버린 기억을 반추하겠지. 지척에 있어 조금만 손을 뻗으면 잡힐 것 같은 과거가 아스라이 멀어졌음을 느끼면서.


**


새로 이사 간 집은 월세가 저렴하지만, 에어컨, 세탁기 같은 가구가 전무하다시피 하여 모두 내가 마련하여 들어갔다. ‘옳은 선택이었을까?’ 하는 회의감이 다시금 솟구쳤다. 조심스럽게 어머니께 의견을 제시하자, 더운 데 건드리지 말라는 투의 답변이 돌아왔다. ‘내가 더 이득이라고 했으면 그냥 그런 줄 알어.’


저 말씀이 큰 힘이 되었다. 이 집에서 계속 살지, 또 어딘가로 이사해야 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사 갈 걱정이 없는 내후년까지는, 이번 선택도 최고의 선택이라고 믿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그래서 이 집을 떠날 때만큼은 여기에 좋은 기억을 두고 아쉬움 없이 떠날 수 있게. 다시, 힘을 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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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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