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미치거나 혹은 치열하거나 - 120BPM [영화]

글 입력 2021.08.19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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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문화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단어들 가운데 하나로 ‘투쟁’을 꼽을 수 있다. 프랑스혁명을 시작으로 자유정신에 입각한 프랑스인들의 투쟁정신은 거센 저항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행동으로 드러내게끔 그들을 이끌어왔다.

 

지금도 프랑스인들은 자신들의 신념과 어긋난 태도를 국가 혹은 기업이 보일 시, 18세기 조상님들이 그랬듯 거리로 뛰쳐나가 자신의 주장을 몸소 행동으로 보여준다. 오죽하면 ‘내 깡패 같은 연인’에서 이런 대사가 나오지 않았던가? “아주 우리나라 백수들 착해. 프랑스 백수 애들은 일자리 달라고 다 때려부수고 난리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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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20BPM>은 에이즈 예방에 무책임한 국가와 기업을 상대로 투쟁하는 액트업파리(ACT UP PARIS) 활동가들의 이야기다. 이들은 질병 예방에 소홀한 프랑스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시위를 벌이며 미비한 에이즈 대처의지를 지적한다.

 

그들의 투쟁은 단순히 목소리만 드높이는 것이 아닌, 국가행사 혹은 기업내부에 자신들의 신념을 말 그대로 투척함으로써 행동으로 완성된다. 행동의 옮고 그름을 떠나서 액트업파리의 투쟁은 결코 말로 끝나는 법이 없다.

 

액트업파리 활동가들의 대다수는 에이즈 양성환자이자 동성애자다. 그들은 에이즈와 동성애라는, 현 사회가 수용하기 힘든 두 가지 특성을 동시에 지녔다. 하지만 사회의 멸시와 차별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운명 속에서도 액트업파리 활동가들은 하우스 클럽에서 그들만의 끈끈한 연대의식을 다지며 가혹한 하루를 견뎌낸 자기자신을 거친 춤사위로 위로한다.

 

실제 게이클럽에서 주로 흘러나오는 하우스 뮤직의 평균 비트수가 120비트임을 반영한 영화의 제목은 사회의 적개 가득한 시선과 싸늘한 무관심 속에서도 어떻게 해서든 생존하고자 하는 활동가들의 몸부림을 가리킨다. 날이 갈수록 드센 사회의 적개심, 그리고 다가오는 필멸(에이즈)의 운명을 잊기 위해 액트업파리는 오늘 밤에도 심장 박동수를 120비트에 맞추며 뜨겁고 치열한 몸짓을 벌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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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 예방에 무책임한 사회에 저항하는 인물들의 치열한 투쟁기이면서 동시에, 영화 <120BPM>은 죽음도 가르지 못한 인물들의 가슴 시린 로맨스 작품이다.

 

극 중 액트업파리에 신입으로 등장한 ‘나톤’(아르노 발노아)은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투쟁 활동을 수행하는 ‘션’(나우엘 페레즈 비스키야트)에게 깊은 호감을 갖는다. 그런 ‘나톤’에게 역시 호감을 가진 ‘션’이지만, 에이즈 양성환자인 자신을 향해 서서히 드리우는 죽음의 그림자 때문에 쉽게 ‘나톤’을 향한 자신의 애정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하지만 ‘나톤’은 체액이 섞이는 것을 두려워 자신과의 키스를 거부한 ‘션’을 향해 “에이즈, 까짓 거”이란 말을 내뱉으며 그와 입을 맞춘다. 죽음보다 사랑이 더 중요하다는 이들의 개인적인 신념 역시 단순히 말로 끝나지 않는다. 국가와 사회, 그리고 죽음에까지 항거하는 이들의 사랑 또한 투쟁적임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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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와 사회라는 거대한 세력 앞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는 인물들의 투쟁은 극 중 그들의 연대의식을 통해서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안긴다. 결국 에이즈라는 불치병 앞에서 세상과 작별하고 마는 ‘션’을 위해 활동가들은 늦은 새벽시간에도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찾아온다.

 

과거 자신이 죽을 시 유골을 투쟁활동에 사용해달라는 ‘션’의 유언을 반영한 활동가들은 그의 어머니에게 ‘션’의 유골을 얼마큼 나눠줄 지를 물어본다. 그 과정에서 활동가들과 ‘션’의 어머니가 나누는 가벼운 농담(“20대 80, 물론 20은 내 몫!”)은 보는 이들에게 소소한 유쾌함과 동시에 죽음 앞에서도 쉽게 나약해지지 않는 액트업파리 활동가들의 단단한 의지를 엿보게 한다.

 

잘못 된 건 바로 잡아야 한다는 활동가들의 계몽정신. 죽음을 앞에 두고서도 오히려 불타오르는 ‘나톤’과 ‘션’의 사랑. 그리고 이 모든 걸 지탱해주는 인물들 간의 연대의식은 프랑스인들의 날 선 투쟁정신을 보다 치열하고 뜨거운 열정의 한 부분으로서 묘사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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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계몽활동에서 발생되는 불가피한 혼란스러움은 프랑스의 적극적인 행동문화에 상대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국내 관객들에게 쉽게 이해하기 힘든 구석을 내포하고 있다. 여기에 그 주체가 성 소수자인 만큼, 영화 <120BPM>은 다수에게 쉽게 환영 받기 힘든 작품이다. 그런 의미에서 관객들 눈엔 이들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극과 극의 평가로 나뉠 수 밖에 없다. “미치거나, 혹은 치열하거나”

 

하지만 자신의 신념과 엇갈린 사회에 대항하여 단 한번이라도 내부의 목소리를 외부로 표츌하고 싶었던 사람들에겐, 극 중 활동가들의 몸짓이 결코 낯설지 않을 것이다. 영화 <120BPM>은 한 번이라도 자신의 신념을 위해 생을 바치고 싶은 사람들의 심장을 박동시키는, 그런 에너지가 넘치는 작품이다.

 

내부의지는 지녔으나 주변환경에 막혀 이를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몇몇 한국 관객들이라면 느낄 수 있는 영화에너지일 것이다. 굴복하기는커녕, 생을 다해 소리 높여 외치는 액트업파리. 이름 따라 그들은 오늘도 자신의 신념을 행동에 옮기고 있는 중이다. 아니, 투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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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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