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일단 파티부터 시작해봅시다

같이 파티해요, 아모르 파티!
글 입력 2021.08.19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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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파티부터 시작해봅시다



고등학교 2학년의 겨울이었습니다. 시험을 거하게 망친 추운 어느날이었죠.

 

어느 때와 다름없이 등교 전에 앞머리 고데기를 하고자 화장대 앞에 앉습니다. 고데기 전원을 키고, 기다렸어요. 기다리는 1분동안 문득 '죽고싶다'는 생각을 했죠.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해서요. 그깟 시험 하나 거하게 망친 것때문에 스스로가 그렇게나 싫어졌습니다. 그날의 아침은 뜨끈한 거실 바닥에서 시작했지만 마음은 시베리아 벌판과도 같이 추웠어요.


그때는 몰랐습니다. 사랑을 '받는 것'보다 사랑을 '하는 것'에 대해서요. 그리고 그 사랑의 대상이 거창할 필요도 없었다는 걸요. 제 인생에서 가장 피폐했던 순간은 18살의 늦가을과 겨울 사이였습니다. 저는 사랑하는 대상이 없었어요. 그래서 스스로도 사랑할 수 없었죠. 그때 깨달았습니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사랑할 수 없다는 걸요.


그로부터 4년이 지난 한 여름. 어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 전에 앞머리를 매만지고 화장대 앞에 앉았습니다. 고데기는 귀찮아서 생략했죠. 밖으로 나가기 전 1분동안 기도를 했습니다. '오늘도 나랑 이 하루를 잘 만들어보자.' 이제는 누구보다도 스스로를 사랑하는 제가 되었습니다. 저 자신을 사랑하게 되니, 정말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더라구요. 내게 펼쳐질 모든 순간과 가능성들에게 사랑의 기도를 빌게 되더랍니다.


이제야 알게됐어요. 사랑을 받는 것. 황홀한 경험이죠. 그러가 '나'라는 사람이 사랑을 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깨달았습니다. 18살의 추운 겨울과 달리 22살의 더운 여름은 사랑하는 것들로 가득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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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파티를 좋아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파티가 있어요. '아모르 파티(Amor fati)'입니다. 운명애(運命愛)로 번역할 수 있는 이 라틴어 어구는 "운명에 대한 사랑"으로 뜻을 담고있는데요.


이 말을 쓴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렇게 말했어요. "운명을 긍정하고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사랑하라!"고요. 아모르 파티는 좋고 나쁨, 상실과 고통 모든 것을 포함하여 자신의 운명 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 운명을 사랑해요. 더 나아가 운명을 개척하는 것이 진정한 아모르파티라고 해요.


돌이켜보면 가장 편안했던 순간은 나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때였어요. '그래, 나는 그런 역사가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있어.' '다시 돌아갈 수 없다면 지금이, 앞으로가 나에겐 전부야'라는 생각을 하곤 하죠. 이런 생각을 더 많이하면 할수록 과거에 대한 미련과 후회는 사라지고 현재에 대한 존중은 확고해졌어요. 그리고 이 바탕에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사랑을 이야기한 김에, 제가 지금 사랑하는 것들을 말해볼까요? 거창한 것이 아닌 사소한 것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네요. 저는 뱃살이 두둑하고 파란빛의 영롱한 색을 뽐내는 우리집 구피를 사랑합니다. 뽈뽈거리면서 헤엄치고, 치어(구피 새끼)를 낳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면 예뻐 죽겠어요. 저 작은 물고기 한 마리도 자신의 생명을 위해서 매일마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때로 위로가 되더라구요.


하늘 위에 둥실둥실 떠다니는 구름들도 사랑해요. 동화책에서나 볼 수 있는 환상적인 풍경을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잖아요. 구름과 하늘을 보는 데는 그 어떤 비용도, 노력도 들지 않아요. 그냥 고개만 들면 1초만에 행복해지는 마법을 얻어요.

 

한없이 작고 어리고 여린 존재라는 생각이 들 때면 구름을 바라봅니다. '그래. 나는 이 넓은 우주 중에서도 조그만 지구, 그 안에서도 작디 작은 귀여운 생명체야'라는 생각이 들면 그 날은 깊은 잠을 잡니다.


지금, 사랑하고 있나요? 이번 에세이를 통해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사랑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면 좋겠습니다. 설령 지금 아무것도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해도 괜찮아요. 일단 파티부터 시작해봅시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컬쳐리스트 신지예 명함.jpg


 

[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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