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와 별] 개와 고래의 시간

글 입력 2021.08.14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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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고래의 시간>은

영화 프리퀀시(2000)의 설정을 빌린 글임을 밝힙니다.


*


1-1.

 

아버지는 열일곱 살 난 적 담배를 배웠다고 했다. 빨갛게 타들어 가는 연초 끝으로부터 시선을 올리면, 어김없이 심 굵은 머리를 슬슬 쓰다듬는 친부의 손길이 느껴졌다고. 그런 날엔 꼭 정수리로 옮겨 묻은 피비린내를 지우고자 펄펄 데운 물로 멱을 감았단다. 아직까지 두껍게 껍질이 앉은 정수리가 그 증거였다. 작업이 끝난 밤이면 막걸리 한 사발을 떠 둔 아버지는 꼭 꿈 없는 눈으로 별을 세었다. 아버지의 작업복은 빨랫줄에 결려 마른 바람을 맞았다. 세월이 세긴 때는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으나 손수 당신의 작업복을 빠는 것을 게을리하는 법이 없었다. 작업이 끝나면 핏자국이 눌어붙은 고무 앞치마를 훌훌 벗어 수돗가로 향한 아버지는 소매를 걷어 검은 팔을 드러냈다. 아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긁히고 찢긴 상처로 가득했다. 아버지의 팔은 곧 아버지의 역사였다. 철벅 철벅. 밤새 하루의 흔적을 지우는 수돗가의 소음을 자장가 삼아 나는 잠에 빠지곤 했다. 밤귀가 밝은 나는 횃대에 앉은 소쩍새의 날갯짓에도 쉽게 눈을 떴다. 잠이 깨면 마당으로 나갔다. 그곳엔 어김없이 아버지가 있었다. 형편없이 마른 손끝에 아슬히 걸린 담뱃대를 보고 있노라면 괜히 속이 추웠다.

 

평상에 올라앉으면 아버지는 내게 전쟁 이야기를 해주었다. 마른 장총을 땅에 디딘 채 선잠에 빠지던 이야기를. 아버지는 땅굴 아래에서 서로의 몸을 끌어안은 채 죽음을 기다리는 법을, 얼어붙은 수통을 하염없이 어루만지며 눈물만은 얼지 않기를 기도하는 법을 배웠다 했다. 전쟁 중 잃은 오른손 약지는 뭉툭하게 불거져 매일 밤 환상통을 불러왔다. 강원도 산비탈을 아슬히 가로지른 초소는 아린 몸 하나 뉠 수 없는 곳이었을 게 분명했다. 그런 아버지가 간혹 내게 마음을 뉘인 것은, 어쩌면 기적이었을 지도 모른다.


아버지에게도 간지러운 꿈이 있었다. 조막만 한 아이들을 어깨에 척척 올려도 무너지지 않는 진짜 선생님이 되는 꿈. 언제든 멋들어지는 시 한 구절 적어줄 수 있는, 아이들 앞에 차갑게 펼쳐진 교과서를 덮어주며 아직은 꿈꿔도 좋다고 말해주는, 그런 선생님. 하지만 아버지는 너무 이른 나이에 꿈꿔선 안 될 처지로 내몰렸다. 꿈의 색이 바래는 줄도 모르는 채 아버지는 전장으로, 그 후에는 할아버지와 삼촌을 따라 도축장으로 내몰렸다.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거라곤 사육장이 딸린 개 도축장 하나와 숱 없는 머리뿐이었다.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아버지는 누런 개의 멱을 따는 법을 배웠다. 육질을 위해 개를 죽을 때까지 때린 후 가죽을 벗기기도 했다. 단번에 숨통을 끊는 것보다 수고스럽더라도 매질을 하는 것이 양질의 상품을 만든다는 건 곧 나에게까지 내려온 지혜였다. 아버지는 팔을 마구 휘둘렀다. 손길이 능숙했다. 사납게 튄 핏방울이 소매를 적실 때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야 개를 죽이는 게 낫지. 아버지는 중얼댔다. 아버지에게는 도축장의 지린내가 매캐한 포탄 냄새보다 나았던 것이다.


한 번은 읍내 구청에서 턱이 뾰족한 남자들이 대거 찾아온 적 있었다. 값싼 모직 코트를 입은 남자는 버릇처럼 자꾸만 안경을 끌어 올렸다. 그는 성을 내는 아버지에게 우리 집 사육장을 보겠다고 했다. 산에서 놀다 오라며 등 떠밀린 나는 아주 오래도록 멀어지는 집 대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도축장 쪽으로 향한 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날 밤, 온 무릎이 흙투성이가 되도록 아이들과 산을 탄 나는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집으로 돌아왔다. 평상에는 담배를 뻑뻑 펴대는 아버지와 명주댁이 있었다. 명주댁은 간혹 우리 사육장에 개를 납품하곤 했는데, 정이 헤퍼 나에게도 곧잘 푹 익은 홍시 따위를 쥐여주기도 했다. 그런데 그날은 그늘진 얼굴로 한숨을 폭폭 내쉬고 있었다.

 

“그래도 지금 법으로는 완전 금지하지 못한다니까, 너무 걱정은 마쇼. 냄새랑 소음만 좀 해결하면 될 것 아닌가.”

 

명주댁의 말이 귓불을 훌훌 스쳤다.


“동물 권리는, 우라질것들. 지들은 개미 한 마리 못 죽여봤다나. 그게 사람 명줄보다 중혀?”


아버지의 욕지거리가 부엌까지 내 뒤를 따라왔다. 명주댁이 축축한 목소리로 중얼댔다. 요즘 도시는 여타부타한 운동들로 온통 소란이잖우. 좀 더 버텨 봅시다. 설마 목숨 줄을 내팽개치라고 할까. 담배 연기를 내뱉는지 설익은 숨이 끼어들었다. 아버지는 지지 않고 쏘아 붙였다.


"내팽개치게 하겠어? 내팽개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겄제."


솥에 쌓인 감자를 들어 후후 불면서 나는 맹렬한 개들의 울부짖음을 들었다. 감자에선 질긴 가죽 맛이 났다. 개들은 저들이 처한 운명을 아는 게 분명했다. 그 후에도 턱이 뾰족한 남자는 몇 번이고 우리 집을 찾아왔고, 아버지는 대낮에도 평상에 드러누워 별 없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이 잦아졌다. 읍내 식당으로 고기를 나르곤 하던 아버지의 트럭은 산화된 몸체를 천천히 부식시켜갈 뿐이었다. 모든 것이 천천히 낡아가는 계절이었다.


그날 밤, 마당에서는 큰 소리가 났다. 쿵쿵대는 소리와 함께 방으로 들어온 누나는 책가방을 집어 던지며 이 비린내 나는 집구석을 꼭 나가고 말 거라고 소리쳤다. 그래서 어디로 갈 건데? 내 물음에는 그렇다 할 대답을 내놓지 못한 그였다. 씩씩대던 누나는 누런 장판을 쿡쿡 밟아댔고, 나는 쏟아지는 불만들을 새겼다. 이마가 시뻘게질 때까지 악을 쓰는 걸 보며 서로에게 조금도 상냥할 수 없다는 듯 구는 누나와 아버지를 떠올렸다. 나는 끝도 없이 어렸다. 그저 문 틈으로 쏟아지는 개들의 괴성에 ‘너희 잘못이 아니야’하고 중얼댈 수밖에 없는 나이였다.

 

그러니 누나도 나를 용서하겠지 싶었다.


*


그날은 유난히 교실이 떠들썩했다. 아이들이 지난 밤 성일댁에 모여 봤다는 티브이 얘기를 하고 있었다. 오로라가 찾아온다고. 나는 오로라가 뭐냐고 되물었다. 꼭 잘난 채를 하고 드는 녀석이 검지를 내빼더니 빠르게 설명을 늘어 놓았다.

 

"저기, 코 아래 고드름 나게 추운 데에서만 볼 수 있는 예쁜 빛무리를 말하는 거야. 무지개보다 배는 알록달록 하단다.”


태양의 흑점이 커졌다느니, 곧 폭발할 거라느니 하는 무시무시한 뉴스에 비해 아이들은 신이 올라 있었다. 조회를 들어온 담임 역시 뉴스 얘기에 열을 올렸다. 전자기기에 오작동이 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며 주의할 점과 그 대처법을 칠판에 써 갈겼다. 담임은 아이들에게 오로라가 아니라 ‘북극광’이라고 불러야 옳다며 정정했다. 그러나 나로서는 오로라를 잊을 수 없었다. ‘오로라’. 입술이 둥글게 말렸다. 그 단어를 발음하는 것만으로도 입안에 은하수가 구르는 기분이었다. 별가루가 입천장을 잔뜩 긁었다. 같이 하늘을 보러 가지 않겠냐는 아이들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막걸리를 물처럼 삼키며 대청에 앉은 뒷모습이 떠올랐으므로. 아버지가 울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밤하늘보다도 더 섧게.


그날 오후, 집은 비어 있었다. 날카롭게 터져 나오는 개 짖는 소리에 아버지의 행방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얇게 이어지는 이명에 곧 귀를 틀어막았다. 방으로 향했지만 누나는 없었다. 만화책 몇 권을 뒤적대다 마당으로 나온 나는 낯선 인기척에 창고로 향했다. 아버지의 잔뜩 굽은 등이 무언가를 찾는 듯 잡동사니들 사이로 연신 들썩대고 있었다. 뒤를 슬쩍 돌아본 아버지는 긴 막대 몇 개를 뽑더니 나를 지나쳐갔다. 눈빛이 사나웠다.


“승희랑 밥 해 먹어라. 아버지 늦는다.”


홀연히 대문을 나선 아버지는 발을 질질 끌며 사육장 쪽으로 멀어졌다. 아버지가 걸은 길이 땅의 상처로 길게 남아 있었다. 나는 어둑한 창고로 고개를 돌렸다. 하늘이 푸르스름해지고 있었다. 그 탓인지 창고를 채운 먼지가 수상하게 일렁였다.


창고에는 녹슨 낫이나 도끼 같은 작업 도구들과 용도를 알 수 없는 자루 더미, 고쳐 쓸 수도 없는 생활용품 따위로 어지러웠다. 어릴 적에 누나와 숨바꼭질을 하다 곧 잘 숨어든 곳이었는데, 그렇게 자세히 굽어본 것은 그날이 처음이었다. 부유하는 먼지에 연신 컥컥대며 나는 손을 뻗어 창고 문을 닫았다. 그때였다. 희미한 소음이 발목을 잡았다. 창고 안쪽에서 생경한 진동이 새어 나왔다. 일정한 기계음. 의심과 함께 확신은 무게를 더해갔다. 목 언저리가 섬짓했다. 마치 빨려 들어가 듯 나는 다시 창고로 발을 들였다. 켜켜이 싸인 자루 뒤쪽이었다. 흙내 나는 자루를 힘겹게 걷어냈다. 거대한 먼지 덩어리가 허공을 뿌옇게 흐렸다. 그러자 잡동사니 더미에서 칠이 죄 벗겨진 휴대용 라디오 하나가 굴러 떨어졌다. 머리가 비죽 솟는 기분이었다.


- 치익 치직…


다시금 거친 신호음이 귓바퀴를 훑었다. 솜털이 바짝 선 나는 빠르게 뒷걸음질 쳤고, 공구 더미에 발이 걸려 보기 좋게 나동그라졌다. 아린 뒤통수를 문지르기도 전, 긴 소음이 뚝 끊기더니 채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전에…


- 여보세요?


나는 사육장의 개처럼 소리치며 창고를 빠져나왔다.


 

1-2.



“야, 왜 그래? 안 와?”


고개를 든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혼이 죄 빠진 기분에 깜빡이는 불빛만 응시했다. 귓가에 웅웅 요란이 솟고 등골이 섰다. 고장 난 무전기가 반응하다니. 곱씹어봐도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갑작스레 잡힌 신호음에 홀린 듯 꺼낸 무전기 너머에서는 큰 마찰음과 누군가의 비명, 그리고 개 짖는 소리가 약하게 들려왔다. 무전기를 가방에 넣은 나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아이들이 부르고 있었다. 그날은 오로라가 요란을 부리는 날이었다.

 

이맘때쯤 내가 태어난 땅끝에선 고래잡이에 흥이 오르곤 했다. 동네 언덕을 따라 줄지은 슬레이트 지붕을 눈으로 좇다 보면 하얀 소금 바람이 불어왔다. 희멀겋게 마른 멸치 대가리는 손에서 파삭 부서져 내리기 일쑤였지만, 나에게는 그마저 삶의 리듬이 되었다. 어린 내 손마디에선 여타 바닷마을 아이들과 달리 고소한 흑연 냄새가 진동했다. 밤새 불을 켜 두고 붓을 드는 나를 마을 사람들은 퍽 유난스럽게 여겼다. 쟤는 뭐가 되려고 철야로 종이를 갈겨댄다니? 서른 가구 남짓한 마을 어른들은 내 생일 날에 스케치북 몇 권을 엮어 선물했다. 소금기를 머금은 정이었다.


작은 화가의 존재는 마을 사람들의 자랑이었다. 동네에서 진료소를 운영하는 료스케 씨는 할머니를 뵈러 간 나에게 빈 담장을 하나 내어주며 말했다.


“여기, 예쁘게 해주지 않겠니?”


눈부시게 희고 깨끗한 벽이었다. 쓰나미에 건물을 잃어 임시 천막을 친 페인트 집 딸 나오코는 나에게 여분의 페인트 통과 붓을 내주었다. 마을은 잔치처럼 들썩였다. 주말에는 진료소 담장 앞에 온 동네 아이들이 모였다. 아이들은 페인트 통에 손목을 담그고는 담장에 여린 손바닥을 찍어댔다. 형편없이 줄줄 흐르는 페인트에도 빠진 이를 드러내며 아이들은 와르르 웃었다. 붓을 든 나는 신나게 벽면을 누벼갔다. 아이들의 알록달록한 손자국은 내 손끝에서 곧 배로, 파도로, 물고기로 피어났다. 그 한가운데를 차지한 고래 벽화는 마을의 얼굴이기도 했다. 마을은 온통 나의 흔적으로 샛푸르렀다. 간혹 벽화를 보러 마을 언덕을 오르는 외지인들도 있었다. 엄마는 지독한 페인트 냄새를 빨아 흐리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어머, 오늘 어디 가세요? 누군가 물으면 치맛단에 비린 손을 벅벅 문지른 어머니는 너를 닮은 보조개를 보이며 웃곤 했다.


"뭔 놈의 바람이 불었는지, 애가 또 지역 사생 대회에서 상을 탔다지 않아요. 거기에 가봐야 쓰지 않겠어요?"

 

*


바다 바위 귀퉁이에 앉아 짭짤한 바람을 맞던 나는 헌 피부가 벗겨져 나갈 적에도 그리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화구가 어질러진 가방 귀퉁이에는 항상 아빠가 먼 바다에 나갈 때 쓰던 무전기가 있었다. 말하자면 부적 같은 것이었다. 바다에 나간 아빠를 기다리다 보면 해가 넘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파도 소리 사이로 깨질 듯한 짐승의 소리가 들리곤 했다.


멀리서 불그스름한 파도가 밀려오면 뱃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잔뜩 무게를 실은 배는 위태롭게 둥둥대며 부두로 들어왔다. 선박은 닻을 내리고, 곧 배에서 붉은 상처가 그인 진회색 고래들을 줄줄이 운반되었다. 축축한 고래들은 그들의 고향을 등지고 마른 땅으로, 땅으로 끝없이 밀려났다. 비릿한 바다 내를 묻히고 온 어부들은 마치 승전보를 알리며 회군한 군악단처럼 노동요를 불러제끼곤 했다. 아빠의 머리 꼭대기가 보이면 나는 화구들을 챙겨 뱃머리 앞으로 달려갔다. 막내 어부인 카즈마 씨는 개중에서도 유난히 성격이 좋았는데, 항상 소금기 가득한 손으로 내 머리를 흐트러트렸다. 너어, 크게 되면 아저씨들 모른 채 하면 못 쓴다. 장난을 건 그는 내 스케치북을 넘겨다 보며 종종 물었다.

 

"그보다 오늘은 뭘 그렸니?"

 

피비린내는 어김없이 종잇장에 옮겨 묻곤 했다. 그런 밤이면 꼭 고래만 한 꿈을 꿨다. 죽음이 익숙한 고래들. 누군가의 식량이 되어 실려 나가는 고래들. 저 크고 많은 고래들의 부재를, 바다는 슬퍼할까. 부둣가에 선 채 생각이 꼬리를 물도록 놔두는 하루가 이어졌다. 더 어릴 적엔 고래 등을 타고 섬을 넘나드는 꿈을 꿨던 것 같다. 그에게 이름을 지어준 것도 같은데, 기억은 물에 잠긴 듯 떠오르지 않았다. 피 냄새가 짙어질 때면 눈을 감았다.


나는 피가 무서웠다. 얼만큼 무서웠냐면, 어릴 적 아이들과 버려진 그물을 갖고 놀았을 때의 일이다. 갈고리 끝에 걸린 꼴뚜기를 떼어서 바다에 돌려놓다가 손을 베였는데, 그날 밤 붉은 쓰나미에 덮쳐져 온 가족이 죽는 꿈을 꿨다. 유일하게 살아 남은 내 손에는 그물 바늘들이 촘촘히 박힌 채였다. 빨강 바다를 끼고 자란 나는 점점 겁쟁이가 되고 있었다. 제일교포로 한국 전쟁 때 한반도에서 간호사 생활을 했던 할머니는 피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간, 체온, 그리고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 살과 피부로 덮인 이들을 통해선 알 수 없던 사랑을, 솟구치는 피의 온도로 배울 수 있었다고. 한국 전쟁 때 부상병들을 돌보던 할머니의 말에는 어딘가 설득력이 있었다. 어린 내게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이란 참 이상한 것이었다. 저 앞바다를 붉게 물들인 어부들과 그들의 어깨에 실린 고래들을 생명이란 말로 묶기에는 혀가 쓰렸다.

 

 *


 마을 어귀에 세워진 하얀 돌고래 상은 하늘을 향해 주둥이를 처든 모양새였다. 무언가를 소리치는 것 같았다. ‘예쁜 돌고래가 있는 우리 마을로 오세요’라는 뜻이라기엔 흰 돌고래는 괴로움을 떨치고자 포효하는 듯 보였다. 그 상을 넘어가면 좌판 몇 개가 늘어진 시장이 있었다. 관광객들도 고래 고기를 사기 위해 꼭 찾는 곳이었다. 동네 녀석들은 그곳에서 대가리를 맞아 피를 질질 흐르는 멀건 생선을 구경하느라 바빴다. 훠이 내쫓는 시장 사람들의 성화에도 좀처럼 움직일 줄을 몰랐다.

 

조개 껍질을 손에 꼭 쥔 채 쪼그려 앉은 아이들은 칼날이 붉은 살점을 도려낼 때마다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의 순간에 생에 그 어떤 때보다 열심히 파닥대는 그 생선들이 나는 무서웠다. 할머니가 내어놓던, 동굴에서 죽어가던 부상병 얘기가 자꾸만 떠올랐다. 죽음에 다다랐는데 자꾸만 붉은 피를 울컥 쏟아내는 사람들, 생선들, 그리고 고래. 어부들의 노랫소리. 그들의 기이한 조화. 이 모든 걸 곱씹으며 그날 저녁, 나는 불현듯 고래 벽화 앞으로 달려가고 싶은 욕구를 참지 못했다. 붉은 바다 냄새가 났다. 비릿한 굵은 소금의 향도, 거침없이 칼끝에 잘려 나가 플라스틱 통으로 떨어지는 생선 머리의 감각도. 모두 생생했다.


그날은 시내까지 나가 사생 대회 상패를 받고 돌아온 날이었다. 시상에 앞서 축사를 나온 시장은 오늘같이 화려한 오로라가 떠오르는 날, 훌륭한 학생들과 모여 시상식을 거행할 수 있어 기쁘다며 유난을 부렸다. 오로라라니? 앞 자리에 앉은 부인이 묻자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 오늘 밤에 뜬다더군. 이 열도에 말이야. 42년 만에 태양 이변 현상이래. 마지막이 1986년이었다지, 아마. 부인이 입을 막으며 대답했다. 일본에 오로라가? 지구가 멸망하려는 거 아니야? 그들의 숨죽인 대화에 집중한 나는 내 이름이 호명되는 것도 모르고 멀거니 앉아있을 뿐이었다. 상과 박수를 받고 단상을 내려오는 와중에도 오늘 찾아온다는 오로라의 존재는 마음을 뜨지 않았다.

 

여느 때처럼 수평선 너머로 해는 졌고, 나는 하늘 구경을 가자는 아이들의 메시지에 바다로 나갔다. 아빠의 오랜 무전기도 꼼꼼히 챙겼다. 쌀쌀한 바닷바람에 두 손이 절로 비벼졌다. 모퉁이를 하나 돌자 아이들의 머리꼭지가 보였다.

 

“카이세이! 얼른 와!”

 

그리고 그때였다. 땅을 박차던 발에 제동이 걸린 것은. 거칠게 귓가를 긁는 소리. 가방이 옅게 진동했다. 분명 무전기의 신호음이었다. 싸한 한기가 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게 첫 번째였다. 무전기 너머의 수상한 소음에 밤잠 이루지 못한 게.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신호를 기다렸지만 모든 게 환영이었다는 듯 무전기는 요지부동이었다. 아빠에게 그에 관해 물었지만, 배터리 하나 온전치 않은 무전기라는 걸 다시 확인받을 뿐이었다. 기상 이변으로 연신 말썽힌 TV를 고치느라 성화인 아빠에게서는 그리 성실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그래, 그럴 리가 없지.

 

학교가 파하자마자 집으로 돌아온 나는 책상 위로 엎어졌다. 휴대폰 알람이 울리고, 어서 진료소에 할머니를 모시러 가라는 엄마의 문자를 읽었을 즈음이었다. 꿈인 게 분명하다고 곱씹으며 현관으로 향했다. 나는 종종 엉망으로 뒤얽힌 현실과 꿈 사이에 끼어있곤 했으니까. 바닷바람을 너무 맞은 걸까. 그리고 그때였다. 그날과 똑같은, 먼지를 머금은 소리가 들린 것은. 낡고도 낮은 소음. 발에 끼우던 운동화를 내던진 나는 빠르게 방문을 열었다. 달칵, 적요가 짙었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어떻게 거신 거예요?"

"저기…"

한국어?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켰다.

"누구세요?"

 

 

다음 편에서 계속

 

 

[오송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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