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경인미술관 예찬론 [공간]

미술관에 남겨보는 편지
글 입력 2021.08.1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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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에서



친숙하진 않더라도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장소. 대표적인 전통문화의 거리로 알려져 있으며, 안국역부터 종로 2가까지 이어지는 길, 인사동이다. 난 동년배에 비해 이 장소에 많은 추억이 있을 것이라고 자부한다.

 

가장 오래된 기억은 인사동 초입에 위치한 골동품점에서 작은 돼지 자기 조각을 고른 경험이다. 어릴 적이지만 같은 가격이면 많은 것이 좋다는, 가성비를 따지는 어린이였기에 세 마리가 붙어있는 우애 좋은 돼지 조각을 샀다. 그 가게 앞을 지나갈 때면 돼지 인형을 신중히 고르던 내 모습이 생각나곤 했는데 이제는 그 골동품점이 사라졌다. 추억이 사라지는 듯하여 섭섭한데, 오래 남아있던 가게의 간판이 떼어내진 후, 붉게 변색하여 남은 간판의 흐릿한 글자는 여기가 추억 속의 보물창고라고 내게 속삭인다.


요즘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은 익선동이라는 곳이 있다. 인사동에서 5분 정도 걸어서 위치한 곳이다. 이십 대 초반의 나이, 요즘 사람이라고 불릴만한 나는, 약속 겸 ‘인싸문화’를 체험해 보기 위해 익선동에서 친구를 만난 적이 있다. 외관은 한옥을 많이 유지한 채, 한식부터 태국 음식이나 양식 등 다양한 타국의 음식이 있었으며,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는 줄도 상당했다. 간단히 즐기는 디저트류와 음료를 판매하는 카페와 작은 소품들을 갤러리처럼 디스플레이한 상점들도 있었다. 좁은 골목길에 기운 넘치는 사람들이 가득했고, 활기찬 분위기였다. 트렌디함을 정의하자면 익선동이 아닐까 싶었다.


익선동도 좋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인사동이 좀 더 정이 간다. 아직도 예전부터 자리를 지키던 인사동의 곁에 계속 머무르고 있다. 서울에서 타지역으로 이사한 이후에도 인사동에 한 달에 한두 번은 방문한다. 어느 위치에 어떤 가게가 있었는지 대략 기억하는데, 그곳에 ‘임대’라는 글자가 텅 빈 가게 앞에 붙어있다. 작은 화랑에서도 발견한다.


괜한 오지랖도 생겨 구제 방법이라든지, 서울시 사업으로 인사동을 부활하는 방법이 없을까 하며 참견도 해본다. 이 정도로 내가 애정이 가는 거리가 있을까 떠올려본다. 나는 왜 인사동을 좋아하는가.


인사동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름도 있겠지만, 여기는 내 장소만은 아니다. 우리 가족과 수없이 왔고,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식당도 위치하고, 엄마를 따라 한지를 구경하며 찰랑거리는 한지 소리와 아늑한 색감에 빠져드는 곳이다.




경인미술관 예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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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현대인이다. 눈은 떴지만, 아직 잠들어 있는 뇌를 깨우기 위해서는 아메리카노가 필수다. 그런 이유로 카페를 가면 무조건 커피를 시킨다. 그런데 인사동만큼은 예외다. 이곳에서는 카페 대신 찻집에 간다. 나는 보통 오미자차를 시키는 편이다. 이는 음료의 가격으로 그곳을 향유하기 위하여 지불하는 소감에 가깝다. 물론 차의 맛은 좋으나, 오미(오미자의 다섯 가지 맛)와 함께 나의 오 각을 일깨우는 찻집이다.


자주 가는 찻집의 위치는 경인미술관에 위치한다. 인사동의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나무라고는 겨우 가로수만 있을 정도인 서울에서, 녹음이 짙은 미술관이 있다. 조선 시대의 가옥에 담쟁이덩굴과 차양처럼 덮인 나무는 산뜻한 기운을 뿜어낸다. 자연 속에 위치하면 더욱 어울릴까, 빌딩 숲 서울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장소로 느껴진다. 내가 사랑하는 장소인 경인미술관에서 옛 시절 문인처럼 경인미술관 예찬론을 펼쳐보고자 한다.


경인미술관은 태극기를 만든 사람으로 알려진 박영효의 저택이었던 곳이다. 현재에도 건축양식을 둘러볼 수 있도록 가옥을 증축과 개축을 통해 현재의 모습을 맞이했다. 보통의 미술관은 건물 내에 구역을 나뉜 후 기획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경인미술관은 큰 공간은 전체의 가옥과 정원이며, 각 전시관은 작은 한 채씩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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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전시의 일정이 올라와 있으나 미리 확인하고 가지는 않는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콩깍지가 쓰이면 어떤 행동을 해도 사랑스럽다. 경인미술관은 나의 일방적 사랑이긴 하나,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더라도 기쁘게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다. 혹여나 전시가 없는 날에 방문하더라도 미술관의 외관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경인미술관에는 다른 미술관과 분리되는 큰 특징이 있는데, 전시관에서 나와 다음 전시관으로 가는 길이 나무 아래를 지나, 그 아래의 흙을 타박타박 걸어간다는 점이다. 그리고 전시를 감상할 때 이곳의 풍경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전시관 내에서 큰 유리문을 통해 외부의 모습이 보이니 작품에도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외부의 풍경이 반영된다. 여러 작품과 자연을 함께 즐기니 황홀할 따름이다.


그리고 날씨가 강한 작용을 주는데, 햇빛이 강한 날에는 작품의 색이 산뜻하다. 습한 날에는 유화 물감의 냄새가 진하게 올라온다. 만약 방문하는 날 비가 온다면 그것은 엄청난 행운이다. 어떤 작품이든 초연하게 보이니 집중이 잘된다. 처마 끝에 모여 떨어지는 빗방울의 특유한 소리와 운이 더욱 허락된다면 처마 아래로 비를 피해 앉은 고양이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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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전시관이 있는데, 공예, 회화, 조각, 입체 등 다양한 작품이 있다. 개인전도 있고, 단체전도 있다. 취미를 적극적으로 하기 위해 동호회에 들어가 단체전에 참여한 작가도 있고, 대학원의 논문을 대신할 전시가 열리기도 한다. 각기 다른 이야기를 품은 전시를 감상하며 얻게 되는 신기한 힘이 있다. 그럼 나도 그들을 따라 언젠가 이곳에서 전시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눈물나게 힘들다는 대학원 과정이라지만 막연하게 대학원을 가고 싶다는 소망을 품는다.


전시관의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한 나는 잠깐 스치는 사람이니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진다. 다음 집에 방문하기 전에는 마음을 가다듬는다.


전시관에 들어갈 때, 누군가의 마음 담긴 화환을 마주친다. “여보 첫 전시 축하해요.”, “개인전 축하드립니다.” 등 다양한 이야기가 함께한다. 어느 전시관에 가든 화환이 있는 경우를 자주 목격하는데, 작가의 작품이 꽃이라는 말이 있으나 그래도 화환이 있으니 잠시 지나가는 이라도 환영해 주는 듯하여 더욱 좋다. 특히 경인미술관은 화환이 있으면 자연이 이를 감싸줘서 아름답고, 혹시 화환이 없더라도 여러 이름 모를 식물들이 화환의 역할을 수행해준다.


큰 마을 아래 각각 집을 방문하듯, 이곳의 미술관도 작은 집에 들어가는 기분이다. 전시관을 들어갈 때 보통 그곳을 지키는 분들을 마주한다. 눈이 마주쳤으니 인사를 하게 되고, 인사를 하고 들어갔으니 나올 때도 잘 봤다는 인사를 남기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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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감상하고 난 후, 위에서 말했듯 찻집을 들르곤 한다.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되도록 창을 열어놓고 앉는다. 특별하게도 이곳에는 선택지가 많다. 카페 외부의 정원과 카페 안에 들어갈 수 있으며, 입식과 좌식을 선택할 수 있다. 만약 좌식을 선택했다면 카페 양 끝은 방 구조여서 어느 방에서 머무를지 선택할 수 있다. 오래 앉기에는 입식이 적합할지 몰라도 가옥에 들어온 이상 좌식이 어울린다는 통념이 들어 굳이 좌식에 앉는다.


좌식의 자리는 오래된 함이 테이블의 역할을 한다. 여행을 가면 감탄하듯, 이곳도 새로움이 가득하여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어떤 이야기든 창밖의 풍경처럼 싱그럽다. 창 너머의 미술관을 조망한다. 전시관이 보이고, 전시관에 아까 마주했던 작품들이 보인다. 각기 다르지만, 정답게 어느 한쪽도 튀지 않는 자세를 갖추어 화합하려 노력한다.


오미자차는 다섯 가지의 맛을 찾는 여정의 즐거움이 있다. 엄마는 따듯한 대추차를 시키고 나는 시원한 오미자차를 주문한다. 풍경과 이야기로 한층 향기로운 나의 감각이 차의 맛까지 생생히 전해진다. 뭉뚱그린 단맛과 약간의 떫음이 아닌, 각각의 다섯 가지 맛도 느껴진다. 다른 차도 향기롭겠지만 나는 오미자차가 가장 즐겁다.


자연물을 예찬하는 문인의 마음을 이해하듯, 나도 이곳을 찬미한다. 자연과 작품과 한잔의 차가 함께하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인사동의 장소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듯, 이곳도 언젠가 사라질지 모른다. 그래도 근처에 갈 일이 있다면 한 번 더 들려보고, 그렇게 경인미술관의 안부를 물을 것 같다. 그 자리에 있을 때까지는 사랑하기 위해 내 생애 최초로 미술관에 남겨보는 편지이다.

 

 

[임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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