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야심차게 해체하고 황홀하게 조립한 21세기형 중세 신화 - 그린 나이트 [영화]

글 입력 2021.08.13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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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오피니언은 결말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창작자의 노고가 절실히 느껴지는 작품을 리뷰할 때의 마음가짐은, 작품에 투입된 작가의 고뇌와 시간에 비례해야 한다는 태도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미약하게나마 예술을 향한 어느 믿음을 가진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가장 최선의 방식으로 선보일 수 있는 보답이기 때문이다. 영화 <그린 나이트>의 리뷰어들이 유념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영화 <그린 나이트>는 영화예술이 구현할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입증한 작품이자, 영화예술을 향한 영화팬들의 무한 신뢰와 우정을 올곧이 충족시킨 수작秀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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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이브를 기념한 '아서왕'(숀 해리스)의 연회장에 불쑥 찾아온 '녹색 기사'(랄프 이네슨)는 원탁의 기사들을 향해 '목 베기 게임'(Beheading Game)을 제안한다. 목숨이 오가는 게임의 규칙 때문에 모두가 침묵을 지키는 와중에 나 홀로 손을 든 ‘가웨인’(데브 파텔)은 아서왕의 검을 빌려 녹색 기사의 목을 내리친다. 하지만, 녹색 기사는 목이 잘린 채 그를 향해 "1년 뒤"라는 말만 내뱉은 뒤 꺼림칙한 웃음소리와 함께 자리를 뜬다. 그렇게 1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난다.


우스갯소리로, 영화 <그린 나이트>는 게임을 빙자한 금수저 도련님의 험난한 세상 체험기라 해도 전혀 과언이 아니다. 호기롭게 녹색 기사의 목을 벰과 동시에 '경'이라는 명예로운 호칭과 함께 가웨인의 입지는 삽시간에 뒤바뀐다. 하지만, 범국민적 명성을 얼마 누리지도 못한 채 야속한 시간의 흐름은 순식간에 그를 녹색 예배당으로의 위험천만한 여정으로 이끈다. 많은 이들의 축복을 받으며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애써 무릅쓴 채 길을 나서지만, 그를 반기는 건 황폐한 토양과 부패된 시체 그리고 앙상한 해골이 난무하는 죽음의 풍광뿐이다.


'J.R. 톨킨'의 원작 소설(<가웨인 경과 녹색기사>)을 영화화 했다는 기대와 달리, 영화 <그린 나이트>에는 스펙터클한 액션과 그에 따른 대리만족으로서의 쾌감이 전혀 없다. 영화는 주인공의 위대한 업적을 노래하는 대신, 그저 한 개인의 불온한 내면을 골똘이 응시하며 기사로서 응당 지켜야 할 미덕과, 그럼에도 주체하기 힘든 욕망이 벌이는 치열한 갈등에 주목한다. 어린 시절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어느 용감한 기사의 모험담은 안타깝게도 가웨인의 그것과는 아득히 거리가 먼 전개다. 영화 <그린 나이트>는 원전을 야심 차게 해체한 뒤 황홀하게 조립한 21세기형 새로운 중세 신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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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과 달리, 가웨인은 세상 물정에 무지한 상류층 청년이다. 밤새도록 술집에서 향락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삶의 낙인 아들내미를 두고서 우려 섞인 목소리로 일갈하는 어머니(사리타 초우드리)의 모습은 그의 철부지스러운 면모를 직접적으로 대변한다. 영화는 기사로서의 준비가 아직 미비한 가웨인의 소년성을 통해 그가 직면할 운명의 잔혹함을 극적으로 대비한다. 비록 수염을 길렀다 할지라도 여전히 소년 끼가 다분한 '데브 파텔'의 얼굴 또한 이를 부각시키는 대목 가운데 하나다.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녹색 기사의 제안은 기존의 모험 서사와 비교했을 때 꺼림칙한 기운이 지배적이다. 신화 속 모험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악당과의 1:1 대결과는 전혀 무관한 녹색 기사의 크리스마스 게임은 사실상 참여 조건으로 목숨을 담보로 하는 비상식적인 방식으로 진행된다. 더불어, 게임의 참여자는 서로의 '신뢰와 우정'을 확인하며 헤어진다는 녹색 기사의 서신 내용은 누가 들어도 기가 차는 상황. 하지만, 이미 녹색기사의 목을 벤 가웨인이 직면할 운명은 단 두가지 뿐이다. 받아들이거나 혹은, 회피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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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녹색 기사의 게임 구성만큼이나 석연치 않는 건 가웨인이 제안을 승낙하기까지의 전후 사정이다. 먼저, 왕의 조카로서 최상류층 출신의 그는 상대적으로 낮은 계층에 속한 '에셀'(알리시아 비칸데르)을 사랑한다. 그렇지만, 머나먼 여정을 앞두고서 '에셀'이 건네는 질문("나와 함께 할 수 있어?)에 관한 가웨인의 답변은 계층의 차이를 미처 극복 못한 어느 상류층 도련님의 우유부단함을 방증한다("돈은 많이 줄 수 있어").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가웨인의 환상 시퀀스는 계층 간 괴리를 메꾸지 못한 두 남녀의 비극을 사실상 암시한다.


출신만 놓고보면 이미 기사로서의 자격은 충분한 가웨인이지만, 정작 자신의 역량을 입증할 만한 자신만의 '이야기'(Legend)가 전무하다. 그런 시점에서, 때마침 등장한 녹색 기사의 존재는 가웨인에게 있어 본인의 입신양명을 위한 좋은 먹잇감에 다름이 아니다. 비단, 가웨인에게만 해당되는 속 사정은 아니다. 척 봐도 노쇠한 기운이 감도는 아서왕은 자신의 왕위를 물려받을 후계자로서 애시당당초 가웨인을 책정해둔 상태라는 걸 은연중에 드러내며("너는 저들과 다르지"), 그만큼 하루빨리 그가 기사들 앞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만큼의 명성을 쌓길 바란다("눈앞에 뭐가 보이지?" / "전설들입니다").


이와 직결된 정황은 연회가 진행되는 와중에 교차 편집된 가웨인 어머니의 의식 시퀀스에서 포착된다. 원작의 '모건 르 페이'(마녀) 포지션을 이어받은 가웨인의 어머니는 해당 쇼트들을 통해 사실상 녹색 기사를 소환시킨 주체가 그녀라는 가정을 가능케한다. 이는 곧, 아들(혹은 조카)의 입신양명을 목적으로 어머니와 삼촌의 공모가 위험천만한 게임을 촉발시켰다는 섬뜩한 추측으로 이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전 국민이 주목하는 '가웨인'의 여정은 막중한 목적을 띈 위대한 모험보다, 상류층의 욕망이 은밀하게 발화시킨 정치적 사건(혹은 농단)으로 분류되어야 마땅하다는 음모론을 제기할 수 있다.


중세 신화에 감춰진 계층 간 괴리와 상류층의 은밀한 욕망을 모험의 원동력으로 삼았다는 점은 흡사 경직된 시대상을 향한 비판적 인상을 암암리에 풍기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해체 단계 중 일부일 뿐이다. '데이빗 로워리'의 관심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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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웨인을 둘러싼 일련의 갈등 구조는 전부 등가교환의 법칙으로부터 파생된다. 정당한 대가가 있어야지만 원하는 바를 획득할 수 있다는 등가교환의 냉정한 본질은 여정의 시발점인 녹색 기사의 게임을 비롯하여, 위업이라는 미명하에 촉발된 가웨인의 모험 동기를 노골적으로 가리킨다. 더불어, 가웨인에게 첫 고난을 안겨준 약탈꾼들과의 일화는, 예배당으로 가는 길을 알려준 대가로 작은 친절을 강요한 어느 소년(배리 케오간)의 사악함으로부터 발원한 등가교환의 맹점을 가리키는 사례다.


흥미롭게도, 녹색 기사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3가지 물건(도끼, 허리띠, 말)을 약탈당한 가웨인이 이후에 맞이하는 에피소드들을 통해 하나씩 되찾는다는 점이다. 자신의 목을 녹색 기사에게 바치는 기이한 여정 안에서 의도치 않게 빼앗긴 물건을 회수한다는 또 다른 여정이 벌어지는 셈이다. 모험 속 모험이라는 혼잡한 구조 속에서 영화는 교환을 통한 일련의 획득 과정들을 통해 가웨인이 미처 지니지 못했던, 녹색 기사가 그토록 강조했던 어떤 미덕에 그가 조금씩 눈을 뜨게끔 이끈다.


자신의 처지를 상기시키는 성녀 '위니프레드'의 일화에서는 비극적인 사고로 연못 안에 가라앉은 그녀의 목을 찾아준 대가로 녹색 기사의 도끼를 되돌려 받는다. 그 과정에서, 가웨인은 연못에 들어가기 전 위니프레드의 영혼을 향해 (마치 소년이 그랬던 것처럼) 대가가 있냐는 질문을 하자마자 위니프레드는 답한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죠?" 자신도 모르게 행위의 대가를 바라는 가웨인의 모습은 선의를 위해 그 어떤 대가도 생각하지 않는 기사도를 아직 갖추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이를 배가시키는 건, 원작에서도 많은 비중을 차지한 '성주'와 '귀부인'의 에피소드다.


고된 여정으로 지친 가웨인을 환대하는 '성주'(조엘 에저튼)는 자신의 성에 머무르는 동안 날마다 서로 획득한 것들을 서로 교환하자는 거래를 '신의와 우정'의 이름으로 뜬금없이 요청한다. 그 와중에 '에셀'과 소름 끼치게 닮은 '여주인'(알리시아 비칸데르)의 의미심장한 유혹 행각은 시종 가웨인의 애간장을 태우지만, 일말의 양심을 저버리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일언지하에 거부한다. 하지만, 죽음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는 여주인의 녹색 허리띠 앞에서 끝내 굴복당한 그는 주체 못할 생生의 의지를 성性의 형태로 분출한다. 급격히 밀려오는 수치심 때문에 황급히 자리를 뜨는 가웨인을 향해 성주는 묻는다, "나한테 줄 건 없는가?" 부끄러운 마음이 지배적인 와중에도 그는 끝내 자신이 받은 허리띠의 존재는 함구한다.


미신일지도 모르는 마법 하나에 성주의 호의를 배신으로 보답한 가웨인.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환대한 상대의 믿음을 저버림으로써 그는 이제껏 문자로 인식했던 신의와 우정의 실체를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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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e tried to approach the idea of loss, the idea of death, the idea that all we know will one day come to an end, with a sense of peace and appreciation."


- IndieWire, 「David Lowery Almost Quit Filmmaking Before ‘Green Knight’ Release: ‘It Was a Very Existential Year’」

 

종국에 이르러 영화는 기사로서 갖춰야 할 용맹함의 가치를 되묻는다. 1년간 가웨인이 얻었던 명성의 근원은 왕국을 위협할(것으로 추측되었던) 정체불명의 기사의 목을 내리쳤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하지만, 진정한 기사로서 갖춰야 할 용맹의 미덕은 약속을 이행함으로써 발원되는 믿음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가웨인은 자신의 미래를 암시하는 환상을 통해 비로소 눈을 뜬다. 앞서 2번의 도끼질에 주춤거린 것과 확연하게 상반된 가웨인의 초연한 태도에 녹색 기사는 존중을 담은 제스쳐로 화답한다(극 초반에 아서왕이 가웨인의 진흙 묻은 얼굴을 자상하게 닦아주던 모습과 놀랄 만큼 유사하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사뭇 흥미로운 지점이다).


주요한 가치를 무시한 채 지속되는 삶은 결코 온전한 삶이 아니라는, 형태 없는 초자연의 엄징한 경고성 메시지. 설령, 녹색 기사의 칼날이 가웨인의 목을 가를지라도, 이는 결코 비극이 아니라는 점을 '데이빗 로워리'는 기나긴 여정을 통해서 설파한다. 가웨인이 맞이할 그 어떤 결과도 약속을 지켰을 시 응당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사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화 <그린 나이트>는 자신의 선택에 따른 운명을 부정하지 않는 태도에 관한 운명론적 시각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며, 앞서 지적한 대로 아서왕과 가웨인의 어머니 사이의 공모로 이뤄진 여정이라면 자연(혹은 운명)을 무자비하게 이용하려다 역으로 당하고 마는 또 다른 생태학적 교훈극에 다름이 아닐 것이다(이 방면에 대표작은 단연 <반지의 제왕> 3부작일 것이다).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자연의 장엄함은 J.R 톨킨의 필생의 테마였던 환경보호를 상기시키며 생태학적으로 영화에 접근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특히, 환경 파괴를 자아낸 전쟁이 더 넓은 땅을 얻으려는 상류층의 욕망으로부터 자행되었다는 의미에서, <그린 나이트>는 인간을 향한 환경의 신의와 우정을 배반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우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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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린 나이트>는 단순히 기성 신화를 해체하는 것이 아닌, 여정을 둘러싼 숨겨진 화두들을 도출하고 이미지를 풍부하게 활용함으로써 원전이 지닌 본연의 상징 의미를 새롭게 전달하는데 집중한 작품이다. 가웨인과 여주인 사이에서 일어나는 특정 행위나, 에셀이 사랑의 징표로 전달한 (동그란) 방울이 가웨인의 생명을 위협한 (둥그런) 독버섯으로의 쇼트 전환은 삶과 죽음 그리고 성의 얼굴이 동일하다는 상징의 복합성을 형태의 유사성을 통해서 적소에 활용한 예다.


영화 속 상징 활용의 방점은 가웨인의 여정을 함께하는 동반자로서 간사함을 상징하는 동물, '여우'다. 여정 중간에 우연히 조우한 여성형 거인들과의 의사소통 능력, 그리고 종국에 이르러 녹색 기사와의 만남을 만류하며 가웨인의 생존을 우선시하는 태도는 머나먼 여정으로 인해 부재중인 모성母性의 대체를 암시한다. 이는, 자식의 앞날을 위해 냉정한 선택을 내렸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자식의 안위를 누구보다 걱정하는 모성의 명암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는 추측 또한 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영화 <그린 나이트>는 다층적 상징 활용을 기반으로, 수 세기에 걸쳐 구전된 모험극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을 황홀한 비주얼과 함께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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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위로 펼쳐지는 압도적인 스케일의 자연 비주얼은 그 자체로 사람을 매료시키는 풍경을 선사한다. 틀에 박힌 모험극으로서의 외피를 해체시킨 뒤 자신의 비전대로 재조립한 '데이빗 로워리' 만의 신화는 중세 판타지로서의 매력과 더불어,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스크린에서 마주하지 못했던 새로운 이야기가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마법까지 발휘한다. 판타지라기엔 현실과 밀접한 이야기, 현실적이기엔 너무나도 황홀한 이미지들의 상충이 탄생시킨 '데이빗 로워리'의 신화는 오늘날 여전히 영화예술의 또 다른 가능성을 입증한 작품이 극장에 상영되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그린 나이트>는 영화예술의 가능성을 언제나 신뢰하며 우정을 다지는 관객들에게 믿음으로 보답한 또 다른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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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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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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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네필
    • 리뷰가 진짜 너무 좋네요... 감탄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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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네필2
    •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을 건드려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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