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우리의 꿈은 자유로운 삶 – 뮤지컬 '모던걸 백년사'

글 입력 2021.08.04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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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페미니스트가 과거의 페미니스트에게,

그리고 외로운 당신에게 건네는 인사

 

1920년 경성에 사는 경희는 어렸을 적 오빠의 지지로 이화학당에서 신식 교육을 받고, 유학까지 다녀온 신여성이다. 그러나 그녀는 잡지에 여성 해방을 주장하는 글을 기고하고 이혼을 한 여성이라는 이유로 조선 사회의 비난을 한 몸에 받는 '모던걸'로 불린다.
 
2020년 서울에 살고 있는 화영은 성적에 맞춰 간 대학을 다니며, 주변의 성화로 적성에도 맞지 않는 교직이수를 하는 중인 '착한 딸'이다. 주변에서 말하는 "예쁘고 학벌 좋고 직업도 받쳐줄 테니까, 걱정 없네~"라는 말이 어쩐지 불편한 화영은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동아리에 연극 <인형의 집>에 참여한다.
 
세간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경희는 조선의 여성들을 깨닫게 만들기 위해 헨릭 입센의 <인형의 집>을 번역하기로 마음먹는다. <인형의 집>을 읽으며 화영은 점차 용기를 내기 시작하지만 또 다른 벽에 부딪히게 된다.
 
1920년의 모던걸과 2020년의 페미니스트가 각각 자신들의 꿈과 사회의 요구, 비난 사이에서 갈등하며 싸워가고 그들의 삶이 교차된다.
 
*

 

뮤지컬 ‘모던걸 백년사’의 카피를 본 순간, 어떤 이야기인지 들어보고 싶었다. 100년 전을 살았던 ‘경희’와 오늘을 살아가는 ‘화영’, 두 인물의 삶이 어떻게 비슷하고 다른지 궁금했다. 함께 천천히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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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 경희의 삶


 

경희는 1920년 경성을 살아가는 여성이다. 올바른 여성이라면 딴 길로 새지 않고 현모양처를 꿈으로 삼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하는 시대였다.

 

그 가운데 경희는 신식 교육을 받고 유학을 다녀온 ‘눈에 띄는’ 여성이다. 그는 물건을 교환하는 거래처럼, 원치 않는 결혼이라도 끝까지 유지하는 게 당연하던 시대에 이혼을 선언했다. 나아가 여성 해방을 위해 홀로 목소리를 내는 인물이다.

 

경희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고울 리 없었다. 사람들은 경희의 치열한 노력과 고민은 무시하고 그저 콧대 높은 ‘모던걸’이라는 호칭으로 경희의 이름을 대신했다. 그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그저 가십으로만 소비하며 비난을 쏟아냈다.

 

하지만 경희는 주저앉지 않았다. 경희는 자신의 주장이 비난에 휩싸이더라도 조선 사회에 얼마나 크고 강력한 돌풍을 만들고 있는지 분명히 알았다. 그 믿음을 동력으로 ‘헨릭 입센’이 여성 해방을 말한 서적 『인형의 집』을 끝까지 번역해 출판한다.

 

 

 

2020, 화영의 삶


 

화영은 2020년 서울에 사는 대학생이다. 화영은 국어국문학을 전공하며 교직이수를 함께한다. 반쪽인 국어국문학은 그가 꿈꾸는 작가의 길, 또 다른 반쪽 교직이수는 부모님이 여자가 하기 좋은 일로 추천한 교사의 길이다. 화영은 두 갈래 길 앞에서 고민한다.

 

화영은 가족과 학교 선배에게 종종 불편한 이야기를 듣는다. 여성은 자고로 예쁘게 꾸며 좋은 남성을 만나야 한다는 엄마, 너는 다른 여자애들과 달라, 많은 걸 바라지 않아, 칭찬을 가장해 다른 여성들과 비교하고 급을 나누는 남자 선배.

 

화영은 세상이 어딘가 잘못되었다고 느낀다. 연극 동아리에서 『인형의 집』 공연에 참여하게 되면서 성차별적인 세상에 대한 분노는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인형의 집』 원작을 읽으며 오래전 자신과 같이 여성의 자유로운 삶을 원했던 경희와 맞닿게 된다.

 

남자 동아리원들로 구성된 단톡방에서 자기 자신을 포함한 여성들을 품평하는 것을 보았을 때, 화영은 맞서 싸우길 선택한다. 교내 징계위원회를 열고 마땅한 처벌을 가하려 하지만, 이조차 쉽지 않다. 가해자가 아닌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만 상하고 있음을 알았을 때, 화영은 좌절한다.

 

하지만 화영은 머지않아 다시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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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 그리고 연대


 

화영을 일으킨 것은 연대였다. 혼자 있을 때에도 경희가 함께 있었다.

 

경희와 화영 사이에는 100년이라는 긴 시간이 존재한다. 하지만 둘은 같은 희망으로 연결된다. 그건 바로 여성의 자유롭고 안전한 삶이다. 성별에 따른 차별 없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이해받고, 존중받으며, 원하는 바를 추구할 수 있는 자유를 바랐다.

 

여성의 자유로운 삶은 오늘날에도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느껴진다. 성별에 상관없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동등한 주체로 살아가자는 페미니즘이 왜 그렇게 어려울까 하는 생각이 든다.

 

페미니즘은 여성에게 남성보다 많은 권리, 우월적 지위를 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성별을 이유로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범죄의 대상이 되고, 사회의 사각지대로 몰리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반대로 밀어 균형을 맞춰보자고 말하는 것이다.

 

운동장을 미는 건 혼자만의 힘으론 부족하다.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야 한다. 그리고 더 큰 힘을 가진 기업과 국가가 함께해야 한다. ‘모던걸 백년사’ 속 경희와 화영의 간절한 주장에도 눈길을 돌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무응답, 무관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당장 페미니즘의 흐름에 동참하고 주장을 펼치긴 어려울 수 있다. 그 점에서 ‘모던걸 백년사’는 좋은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뮤지컬의 스토리와 음악을 통해 페미니즘을 접하고, 나의 경험을 떠올려보고,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장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게 바로 우리 모두를 위한 길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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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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