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글 편지 맛집, 조선 시대로 시간여행 하실래요? [문화 전반]

한글 편지의 이모저모
글 입력 2021.08.0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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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한글박물관

 

 

 

기록을 거슬러 올라가다


 

애플의 창립자,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 1세대를 발표한 지 14년이 흘렀다. 아이폰 1세대가 출시된 기점으로 디지털 시장은 획기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일명 '애플 따라잡기'가 시작되었다. 당시 한국의 휴대폰은 고작 2G폰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애플의 아이폰 출시로 위기를 느낀 국내 휴대폰 기업들은 점차 '스마트폰'이란 것을 만들기에 몰두했다.

 

갤럭시, 옵티머스, 베가 등 일일이 다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은 국내 스마트폰의 역사도 약 10년이라는 세월을 거쳐왔다. '아이폰 1세대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고?'라는 놀라움도 이제는 사그라들었다. 인터넷이 기본적으로 탑재된 스마트폰에 상상을 뛰어넘는 기능들이 추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스마트폰 하나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지금, 2G 폰으로 문자를 주고받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띄어쓰기도 없이 글자 수를 꽉 채워 문자를 보냈던 그 시절. 상대가 문자를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 어떤 답장을 할지 설렜고 애가 탔다. 하지만 우리는 그때도 손편지를 쓰던 시절을 그리워했다. 진심과 정성을 담아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써 내려갔던 손편지를 추억했다. 장롱 한구석을 뒤져보면 유려한 필체로 쓴, 한 편의 시 같은 부모님의 연애편지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이처럼 '그때 그 시절, 그랬지'를 회상하게 하는 기록은 시대를 관통한다. 기록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조선 시대 한글 편지에 도착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날부터 SNS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현재까지 기록된 편지는 모두 한글 편지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상 곳곳에서 한글 편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듯이, 조선 시대 한글 편지에서도 당시 사람들의 꾸밈없는 생각과 아름다운 마음이 묻어난다. 조선 시대 한글 편지를 읽다보면 편지를 쓴 사람의 심정이 어땠을까 헤아리게 된다. 때때로 편지를 받는 사람의 마음을 상상해보기도 한다. 따라서 조선 시대로 시간여행을 갈 수 있는 한글 편지 세 편을 공개해보려 한다.

 

 

 

조선의 임금이 보낸 한글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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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한글박물관

 

 

문안 아뢰고 기후 무사하신지 문안을 알고자 합니다. 이 족건(足巾, 버선)은 저에게 작사오니 수대(守大)를 신기옵소서. 조카

 

 

내용은 매우 공손하나 글자가 삐뚤빼뚤한 이 편지는 정조(正祖)가 큰외숙모인 여흥민씨에게 보낸 편지이다. 발신자가 조카를 뜻하는 '질'로 표기되어 있으며, 바른 필체로 편지를 시작했으나 금세 글자 크기가 커지고 만다. 이를 미루어볼 때, 정조가 왕세손으로 책봉받기 전인 원손 시절에 썼음을 알 수 있다. 신하들에게 가차 없이 독설을 날리기로 유명했던 정조도 원손 시절의 필체에서는 어린아이다운 귀여움이 보인다.

 

편지 속에 등장하는 '수대(守大)'는 정조의 외사촌이다. 본명이 아닌 아명인데, 이것을 통해 정조가 매우 어린 나이에 편지를 썼음을 추측할 수 있다. 또한 버선이 본인에게는 작으니 외사촌에게 신기라는 내용에서 외가를 살뜰히 챙기는 정조의 다정한 면모가 드러난다.

 

이 편지가 수록된 <정조어필한글편지첩>은 정조가 큰외숙모에게 보낸 편지 등을 묶은 편지첩이다. 원손 시절의 필체부터 정조가 임금으로 즉위한 후까지의 필체를 보여주고 있다. 당시의 국어 사용 양상을 살펴볼 수 있어 연구할 가치가 매우 높은 사료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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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청주박물관

 

 

너는 어찌 이번에 들어오지 않았느냐. 어제 네 언니는 물론, 숙휘까지 패물들을 많이 가졌는데 네 몫은 없으니, 너는 그 사이만 하여도 매우 안 좋은 일이 많으니 내 마음이 아파서 적는다. 네 몫의 것은 아무런 악을 쓰더라도 부디 다 찾아라.

 

 

위의 편지는 <숙명신한첩>에서 확인할 수 있다. <숙명신한첩>은 효종, 현종, 장렬왕후, 인선왕후가 숙명공주에게 보낸 한글 어찰을 모은 첩이다. 숙명공주는 조선의 제17대 임금인 효종과 인선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셋째 딸로, 고양이를 좋아하고 욕심이 없는 성품이었다고 한다.

 

편지 내용에서 딸인 숙명공주를 염려하고 어여삐 여기는 아버지 효종의 마음이 드러난다. 숙명공주의 언니와 동생은 궁에 들어와서 제 몫의 패물들을 챙겨갔는데, 숙명공주는 패물에 큰 관심이 없었는지 아무것도 챙겨가지 않았다. 욕심이 없는 셋째 딸이 안타까웠던 효종은 악을 써서라도 네 몫의 패물을 가져가라고 편지로 당부했다.

 

특히 '내 마음이 아파서 적는다'라는 표현에서 효종이 딸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꼈음을 확인된다. 시대를 막론하고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다 똑같다.

 

 

 

시대를 뛰어넘은 부부의 사랑, 원이 어머니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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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이 아버님께 올림--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집에서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 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 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 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 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 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 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 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이 편지는 택지 개발 공사를 위해 고성 이씨 문중의 무덤을 이장하던 중, '이응태'의 묘에서 미투리와 함께 발견되었다. 400여 년 간 무덤 속에 잠들어 있다가 세상으로 나온 편지로시대를 뛰어넘은 부부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편지의 주인공, 이응태는 아들을 임신한 아내를 두고 서른 한 살에 사망했다. 이응태의 아내는 남편이 세상을 일찍 떠나 황망하고 서러운 심정을 편지에 담아냈다. 백년해로하자더니, 허망하게 죽어버린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이 넘쳐흐른다. 동시에 부부가 사랑하고 서로를 위하는 사이였음을 알 수 있다. 남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많은 아내는 위쪽 여백까지 빼곡하게 채워 편지를 마무리했다.

 

편지와 함께 묻혀있던 미투리는 더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미투리는 이응태가 병석에 누운 날부터 그의 아내가 자신의 머리카락과 삼을 꼬아 만든 것이다. 남편이 하루빨리 병석에서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미투리를 만들기 시작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응태는 요절했지만, 남편의 쾌유를 간절히 바랐던 아내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또, 편지에 당시의 사회를 읽을 수 있는 언어적 단서가 있다. 현대역에서는 '당신'으로 해석되었지만, 편지의 원문에서는 아내가 남편을 '자내'로 부르고 있다. '자내'는 양란 직후까지 상대를 높이거나 존중하는 의미에서 부르는 호칭이었다. 이 편지를 통해, 조선 전기까지 남녀가 비교적 평등했던 고려 시대의 분위기가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부부는 경어를 사용하는 대등한 관계였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한글 편지


 

한글 기록은 매체를 달리 해왔을 뿐, 늘 우리와 역사를 함께 해 왔다. 스마트폰으로 SNS 메시지를 주고받는 지금은 2G폰으로 띄어쓰기 없이 문자를 빽빽하게 채워 쓴 시절을 그리워하며, 2G폰을 쓰던 그때에도 정성이 가득 담긴 손편지로 안부를 주고받던 과거를 회상했다.

 

조선 시대라 하면, 멀리 동떨어져 있는 과거 같다. 하지만 조선 시대에 기록된 한글 편지를 보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선조들도 똑같이 느꼈음을 알 수 있다. 매일 볼 수 없는 가족의 안부를 묻는 편지, 부모가 자식을 걱정하는 마음이 듬뿍 묻어나는 편지, 세상을 일찍 떠난 남편이 그리워서 눈물을 머금은 편지까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이 조선시대 편지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따라서 한글 편지는 과거와 현대를 아우른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한글이라는 언어 전달 수단이 존재하기 때문에 우리는 몇백 년의 간극을 뛰어넘어 조선의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한글이라는 공감대로, 우리는 조선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일상을 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지금이 미래에 또 다른 과거가 된다면, 지금 쓰인 한글 편지가 미래 사람들에게 우리도 너희들과 같은 감정을 느꼈으며 어떠한 역사를 거쳐왔음을 알려주는 통로가 될지도 모른다고. 앞으로도 펼쳐질 한글 편지의 역사가 미래 사람들에게 지혜로운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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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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