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들은 왜 사라져야만 했는가 - 사라진 소녀들

전쟁 중 여성들의 삶은 어찌하여 기록되지 못했는가에 대한 이야기
글 입력 2021.08.03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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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소녀들>, 처음 이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 나는 미스테리 소설 속 흔한 설정을 떠올렸다. 이를 테면 추악하고 잔인한 범죄자로 인해 소녀들이 연쇄적으로 희생되는 스토리 라든지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1946년 뉴욕의 어느 평범한 풍경 속 출근에 늦은 한 여성 ‘그레이스’의 평범한 이야기로 시작되는 것만 같았던 이 이야기는 그녀가 발견한 남루한 여행 가방으로부터 숨겨질 수밖에 없었던 거대한 진실을 쏟아 놓는다.


이 책은 1946년의 그레이스, 1944년의 마리와 엘레노어, 세 여성의 이야기를 시공간을 넘나들며 풀어내고 있다. 어쩌면 이 책의 초반부를 읽으며 누군가는 이 여성들의 공통점이 당최 무엇인지, 왜 이들의 이야기가 각자 전개되며 내용 파악을 헷갈리게 하는지 불평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만큼 이들은 처음에 그 어떠한 연결 고리도 없어 보이지만 곧 우리는 그들이 ‘전쟁’이라는 시대적 배경 아래 같은 처지를 공유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전쟁’과 ‘여성’, 이 두 단어는 어쩐지 같은 극의 자석처럼 잘 어울리지 않은 느낌이 든다. 도대체 왜 일까? 분명 전쟁 중애도 여성들은 살아왔고 그 중에는 시대적 제한 속에서도 책 속의 사라진 소녀들처럼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한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기록들 속에서 위대한 남성 영웅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애썼던 업적들이 낱낱이 적혀 그들의 후손들이 이들을 오래도록 기억하는 데에 반해 여성들의 활약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그 이유는 이 책의 제목에서부터 암시되고 있다. ‘사라진’ 소녀들, 소녀들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사라졌을 뿐 아니라 전쟁 이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조차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배경에는 오래도록 이어져온 남성 우월 주의와 여성의 자질과 능력에 대한 막연한 의심이 깃들어 있다. 전쟁 중 신체적으로 남성보다 약한 여성이 할 수 있는 이들은 남성들을 보조하는 일 뿐이라 여기던 당시의 만연한 사상이 소녀들을 지워버린 것이다.


처음 엘레노어가 여성 특수작전 요원을 양성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꺼냈을 때에도, 그녀가 남성 요원들과 똑 같은 방식으로 여성 요원을 차출하고 훈련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을 때에도, 심지어 그녀가 가르친 소녀들이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 업무를 수행하던 중에도 많은 이들이 끊임 없이 ‘여성’이 전쟁 중에 ‘중대한 일’을 맡는 것에 대한 의구심을 버리지 못했다. 그들은 소녀들이 내는 결과 하나 하나를 감시하고 평가하며 ‘역시 여자들은’ 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버렸다.


이 책을 읽으며 여성들은 전시 중에도 한 인격을 가진 개개인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참담한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그저 ‘여성 요원들’로 묶여 이들의 활약은 주목받고 인정받기 보다 낱낱이 평가되고 의심의 눈초리를 받아야 했으며 전쟁이 끝나갈 무렵, 본부 간부들의 배신으로 인해 특수작전국 요원들이 위협의 낭떠러지로 내몰렸을 때조차 소녀들은 신변의 보호는 커녕 그들이 이루어낸 일들과 그들의 존재마저도 부정당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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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소녀들> 속 세 여성들이 전하는 기억의 조각들을 따라가며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잊혀져야만 했던 여성들의 고군분투는 그들의 끊임없는 연대와 믿음 속에서 빛을 발한다는 것이었다.

 

그레이스는 왜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는 여행 가방 속 사진들을 쉽게 놓아 버리지 못했던 것일까? 마리는 어떻게 신변의 위협을 받던 마지막 순간까지도 엘레노어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일까? 조쉬는 왜 삶을 이어갈 수 있던 마지막 순간에서 자신의 목숨을 저버리면서까지 마리의 탈출을 도왔던 것일까?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들 수밖에 없는 이 궁금증은 전부 ‘여성들의 무조건적인 연대’라는 틀 안에서 완벽히 설명된다. 그들에게는 별다른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그저 서로를 향한 본능적인 공감과 신뢰가 그들의 연대를 만들었고 이들의 연대가 가진 힘은 미약할지 언정 꾸준하게 이어져 결국 2년이라는 시간 끝에 사라진 소녀들에 대한 진실을 밝힐 수 있었다.

 

아직까지도 우리는 1944~1946년을 배경으로 하는 이 책과 다르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다. 여성들은 만연한 의구심과 검열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여성의 업적과 성과는 그저 평가되고 자연스럽게 잊혀진다.

 

도서 <사라진 소녀들> 속에서 세 여성이 보여준 꾸준함과 조건 없는 연대야 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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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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