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테두리 없는 사랑 - 우리, 둘

글 입력 2021.08.03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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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몰랐다, 이런 영화인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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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정말 몰랐다. 이런 영화인 줄은.

 

황혼기를 보내는 중년 레즈비언 커플의 로맨스 스토리라고만 생각하고 영화를 보러간 나는,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보이는 서스펜스적인 얼굴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영화는 처음부터 불길하게 시작한다. 까마귀는 울고,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높다란 나무가 즐비하게 서있는 공원에서 두 소녀가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나무의 몸통 뒤로 숨은 소녀는 나무를 빙그르 돌다가 순식간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홀로 남겨져버린 소녀는 사라진 소녀를 부르는 듯하지만, 공원에는 목소리 대신 까마귀의 소리가 더욱 크게 울려 퍼질 뿐이다.


마도와 니나는 오랫동안 사랑한 레즈비언 커플이다. 둘은 같은 빌라의 맞은 편 호수에서 살며 서로의 집에 자유로이 드나든다. 사실 드나든다기보다는, 마도의 집에서 니나가 함께 살고 있는 것에 가깝다. 니나는 여생은 둘의 추억이 담긴 로마에 가서 편안히 보내자고 제안하지만, 이 계획에서부터 니나와 마도는 조금씩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우리, 둘>에서는 익스트림 클로즈업샷과 클로즈업샷을 눈에 띄게 많이 사용한다. 이는 오로지 얼굴에 집중하라는 뜻이기도 하지만, 한편 얼굴 밖의 일들은 의도적으로 상상에만 맡기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 둘>이 카메라가 뒤로 빠지며 미디움-롱샷으로 연출될 때 관객의 집중을 유도하고자 하는 곳은, 중심에 위치한 인물이 아닌 그 바깥의 배경일 경우가 많다. 이러한 연출 탓에 관객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신경을 세운 채, 저 바깥의 일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여백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신경쓰게 된다.


또한 영화의 초반부터 ‘이건 단순한 로맨스 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려는 듯, 대부분의 장면이 불안한 논-비제스틱 사운드를 남기며 성급하게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찜찜하게 툭툭 끊긴다. 그렇지 않은 씬은 유독 길다. 닫힌 문이나 세탁기 속 세탁물을 줌인하는 데에 시간을 오래 끄는 식이다. 마도와 니나가 세탁소에 간 장면에서 사용된 연출은 특히 압권이다. 평범해보이는 풍경이 지나치게 늘어지는 것에 ‘왜 이렇게 길게 끄는 거지?’라는 물음을 가지게 될 찰나, 마도의 뒤쪽 창문 너머에서 니나와 부동산 공인중개사가 우연히 마주치는 것이 화면 안에 잡힌다. 세탁기는 점점 더 거칠고 크게 돌아간다. 주변의 모든 소음을 뒤덮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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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는 독신이자 오픈리 퀴어로 지내고 있는 반면, 마도는 오랜 세월을 자신의 정체성을 숨긴 채 아내이자 어머니로 살아왔다. 마도의 남편은 몇 년 전 세상을 떠났지만, 마도를 오래 전부터 자신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은근히 의심해온 아들 프레드릭과,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마도를 ‘희생적인 어머니’로 여기는 딸 앤 앞에서 쉽게 입을 열지 못한다. 결국 집을 내놓은 뒤에도 용기를 내지 못한 마도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니나에게 거짓말을 하게 되고, 당연하게도 작은 거짓말은 더 큰 거짓말을 낳는다. 그러나 우연히 마도의 거짓말을 알게 된 니나는 엄청난 배신감을 느껴 마도에게 폭언을 하게 되고, 마도는 급작스럽게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만다.


그 뒤 니나가 마도를 되찾기 위해 하는 일들은 처절할 정도로 애틋하다. 간병인이나 마도의 딸이 있는 집 문을 밤 중에 몰래 열어 들어가고, 간병인이 해고당하게 만들고, 결국 니나와 마도의 관계를 알아차린 앤의 집에 들이 닥쳐 폭언을 쏟아내기까지 한다. 감정과 내러티브가 극으로 치달으며 영화는 공포스러운 분위기마저 자아낸다.

 

누군가는 니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거야?’라는 의문이 들 것이다. 일단 나부터, 잠깐이지만 그런 생각을 했음을 고백한다. 이해를 못했다기보다는, 줄곧 조마조마했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할 것 같다. 안타까웠다. 더 차분한 방식으로 대화해서 납득을 시키지, 왜 저럴까. 정말 사랑을 지키고 싶다면 저런 방식은 아닌 것 같은데.

 

진심으로 저 둘이 둘로써 행복하기만을 바랐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니나는 자신의 사랑을 위해 관계없는 타인을 상처 입혔고, 일자리를 잃게 했으며, 자신이 사랑에서 비롯한 자식이 아니라는 충격을 감당해야 하는 자녀들에게 진실을 받아들일 시간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둘>은 결코 아름답지 않은 노력과 처절함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더욱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스릴러의 작법을 빌린 파격적인 연출은 관객들에게 그 의미를 크게 각인시킨다.

 

 

 

테두리 없는 사랑


 

우리는 지금까지 얼마나 아름다운 퀴어 영화만을 보아 왔나? 애틋하고 반짝거리고, 끝내 포기하거나 아름다운 방식으로 서로를 지키는 퀴어 영화들. <우리, 둘>은  그런 것만이 퀴어의 삶인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니나가 그런 방식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이겠느냐는 질문을 눈 앞에 들이민다. 어리석어 보이지? 이기적이지? 왜 저러는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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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는 마도와 이십년이 넘는 세월을 함께 했고, 가정을 이루었던 남편보다 훨씬 더 많은 마도를 알고있지만 마도가 쓰러지는 순간 그녀의 곁에 있을 수 있는 모든 자격과 명분을 잃는다. 그들의 사랑과 증명해주는 것은 그 둘 말고 아무것도 없다. 서로만이 서로의 테두리가 되었던 사랑은 한 사람이 쓰러지자 무너져버린다. 아무도 그들이 사랑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영화 속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이다.


<우리, 둘>은 이토록 나약한 상황에 놓인 사랑을 지키기 위해 한 사람이 얼마나 강해지고, 또 이기적일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리고 니나의 행동을 보며 가슴을 졸이고 내심 니나를 탓하던 관객들은 영화 밖의 현실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곤 이런 질문에 봉착한다. "저런 상황에 놓였다면 나라고 달랐을까?“

 

만일 니나가 정말 차분하게 대응했더라면. 처음부터 마도와의 관계를 솔직히 밝히고 대화하려 했더라면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 예상컨대 극적으로 바뀌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둘의 헤어짐이 더욱 빨리 찾아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기에 니나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노력이나, 정당성을 부정하려는 시도는 어쩌면 유효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니나가 되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미 너무 오랜 세월을 기다려왔다. 서로가 생의 끝 무렵에 서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당장 상대를 잃을 수도 있다는데 그 누가 이성적으로 행동할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왜 내심 그들이 그렇게나 이성적으로 행동하기를 바라게 되는 것인가.

 

 

 

서로의 돌아갈 곳이 되어준다는 것


 

영화는 마도가 구급차에 실려가기까지 니나의 집을 한 번도 보여주지 않는다. 오직 마도의 집만 등장하는데, 마도의 집은 온갖 장식품과 사진, 생필품 등으로 빼곡하다. 그러나 마도가 입원하고, 마도의 집에 오가기 어려워지자 니나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이 때부터 나오는 니나의 집은 앞서 등장한 마도의 집 풍경과 사뭇 다른 느낌이다. 니나의 집은 다소 허전하게 느껴질 만큼 비어있다. 냉장고 문을 열어보지만 안에 있는 것은 싸늘한 냉기 뿐이다.

 

이 내부 풍경은 둘이 가진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니나를 진심으로 사랑하지만 지켜야 할 것도 그만큼 많은 마도와, 홀가분한 니나. 이 점은 마도와 니나가 사랑을 할 때에 일종의 무기나 약점으로도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마도가 쓰러진 뒤로 이 역할은 역전되는데, 마도의 집에 모든 기억을 두고 돌아 나온 니나는 그렇게 쓸쓸하고 비어보일 수가 없다. 니나와 마도가 사랑하는 동안 둘이 머무른 곳은 마도의 집이었기에 정작 본인의 집에 있는 니나는 전혀 편안해보이지 않는다. 새벽 내내 차갑고 흰 공간에서 시간을 세다가 결국 아침을 기다리지 못해 문을 몰래 따고 무단침입(간병인과 마도의 가족 입장에서 니나의 행동은 엄연히 무단침입이다)을 한다. 그럼에도 그녀가 돌아갈 장소는 오직 한 곳 뿐이다. 마도의 곁으로.


한 편 마도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로 거동과 대화가 어려워지는데,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보이는 그녀의 행동은 딸 앤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마도는 오밤 중에 불편한 몸을 일으켜 트렁크에 옷가지를 마구 쑤셔넣는다. 이는 마도가 쓰러지기 직전까지 가장 많은 신경을 쏟았던 니나와의 이주 계획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마도가 쓰러진 뒤에 처음으로 혼자 힘으로 일어나 걸었던 것도 니나에게 가기 위함이었다. 무언가 낌새를 알아차린 뒤 집에서 먼 병원에 마도를 입원시키자 그녀는 어떻게든 복도의 전화기를 사용해서 니나에게 연락을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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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장면들을 볼 때 나는 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한 평생 이타적으로 희생하며 살아왔다고만 생각한 나의 엄마가 실은 다른 사람의 애인이었다는 진실과, 이성이 희미한 상태에서 본능적으로 가장 원하고 있는 것이 그 애인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한 순간에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마도가 니나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보인 모든 행동들은, 그녀의 자녀들에게는 지나치게 잔인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종국에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영화는 다소 씁쓸하게 막을 내리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니나와 마도가 세상의 전부를 떠나보내더라도 돌아가고 싶은 곳이라곤 오로지 서로의 곁이라는 어쩔 수 없는 사실을, 적어도 마도를 위해 받아들이게 되었으리라고. 그렇게 바란다.


 


눈부신 평범함을 살아가기 위해


  

생활동반자법. 누군가는 관심을 가진 적도, 가질 필요조차 없는 단어겠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평범한 삶을 위해 너무나 간절하게 바라는 것이다.


생활동반자법이란 함께 생활하며 서로를 부양하는 관계에 있는 두 성인에게 주택 문제나 국민 연금, 보험 등의 문제와 같이 결혼이라는 법적 절차를 거쳐야지만 가질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주는 법이다. 비혼부/모와 자녀, 1인 가구, 동거 가구 등 낡고 경직된 ‘정상 가족’ 테두리의 바깥에 있는 가정들의 비율이 늘고 그와 관련된 논의와 이슈 또한 수면 위로 떠오르는 요즘, 생활동반자법은 더 이상 소수에게만 해당되는 법이 아니다.

 

생활동반자법이라는 명칭은 국회 보좌관으로 일했던 황두영 작가가 2012년에 만들었다. 그는 생활동반자법에 대해 다룬 책, <외롭지 않을 권리>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동성 커플이 같이 사는 모습이 보기 싫어서 생활동반자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우리는 또 기회를 잃는 것이다. 국민으로서 더 많은 권리를 보장받을 기회 말이다. 생활동반자법은 정체성과 무관하게 국민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사람과 함께 살 권리가 있음을 확인하는 법이다. 당신이 누구와 성관계를 갖든 갖지 않든, 결혼 적령기이든 아니든, 이혼한 경력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또 다른 방법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생활동반자법은 특정한 성 정체성의 문제가 아니라 행복해지고 싶은 우리 모두의 보편적 마음에 대한 법이다.

 

<외롭지 않을 권리>  P. 149

 

 

'생활동반자법', '동반자등록법'의 입법을 요구하는 청원은 해마다 몇 개씩 발의된다. 2019년 문체부와 여가부가 실시한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에서는 법적 가족의 범위를 사실혼이나 비혼 동거까지 확장하는 데 찬성하는 이들이 60.1%에 이른 것으로 집계되었다. 혼인, 혈연으로 연결된 관계 외에도 '생계나 주거를 공유하는 관계'(67.5%)나 '정서적으로 친밀한 관계'(38.2%)까지 가족으로 인식한다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우리, 둘>은 동성애와 동성혼을 중심으로, 그 주변의 다양한 이슈를 곁가지로 치고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될 수 있을 듯하다.


영화에서 이런 장면이 나온다. 니나가 ‘친절한 이웃 사촌’으로 잠시 니나의 집에 드나들 수 있게 되었을 때 딸 앤과 대화를 나누던 중 마도의 차도가 나아지지 않자 약 처방을 늘렸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그게 맞는 거냐, 약을 늘린다고 해서 낫는 거냐’는 뉘앙스로 묻는다. 당시 앤은 ‘의사가 한 말이지 맞을 것이’라며 대화를 마무리하지만, 마도와 니나의 관계를 알게된 뒤 옮긴 다른 병원에서 간호사가 다른 약을 들고 오자 ‘무작정 약을 늘리면 어떡하냐’고 따진다. 간호사는 의사의 지시를 따를 뿐이라며 당혹스러워하고, 그런 질문을 한 앤 본인도 다소 당황스러운 기색을 내비친다.


친딸인 앤조차 신경쓰지 않은 부분을 애인인 니나가 짚은 것이다. 그리고 뒤늦게앤이 마도의 약 처방에 신경쓰게 된 것은, 마도와 니나의 관계를 부정하지만 너무나 필사적으로 마도를 되찾으려는 니나를 보며 그녀의 진심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인정하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가족이라는 개념이 딱딱한 사전적 정의가 아니라 ‘서로를 가장 아껴주고 부양하는 관계’가 될 수 있다면, 마도의 가족은 니나이고, 니나의 가족은 마도이다. 행정 상 통과되기 어렵다는 이유-심지어 그 이유도 고작 두 사람이 동성이기 때문에-로 이미 가족인 두 사람을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고 모든 자격과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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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영화를 보는 내내 떠올렸던 인물이 있는데, 바로 김규진 작가다. 김규진 작가는 한국에서 살아가는 오픈 레즈비언으로,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라는 책을 냈다. 인식이 바뀌었다지만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오픈 퀴어로 살아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자신이 퀴어임을 밝히는 순간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많은 것들이 등을 돌리거나 불이익을 줄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이런 사회에서 김규진 작가의 존재는 그 자체로 큰 의미를 가진다.


김규진 작가는 뉴욕에서 혼인 신고를 하고,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그가 결혼식에서 배우자에게 읽어준 결혼 서약서를 이 글에서 꼭 인용하고 싶다.

 

 

사랑하는 언니에게

 

결혼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지금 웨딩드레스를 입고 하객들 앞에 서있지만, 내일 같이 구청에 가서 혼인신고서를 제출하면 거절당할 거야. 마일리지 합산도, 신혼부부 대출도, 수술 시 동의도, 사망 시 상속도 안되겠지. 함께하다 보면 분명 힘든 일이 많을 거야.

 

하지만, 원래 인생이 그런 거 아닌가?

 

마일리지 합산이 안된다면, 내가 언니 카드로 적립을 할게. 신혼 부부 대출이 안되지만, 1주택 세금으로 2주택을 보유할 수 있어. 수술 시 동의를 못하게 하면, 아는 사람이 있는 병원으로 가자. 사망 시 상속 순위가 밀린다면, 미리 공동명의의 법인을 설립할게. 힘든 일이 많겠지만, 함께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을 거야. 우리는 지금 서로가 골라준 웨딩 드레스를 입고, 우리를 축하해주는 하객들 앞에 서있어. 결혼은 이런 게 아닐까?

 

우리의 결혼은 행복할 거야. 나랑 즐겁게 살아보자. 사랑해.

 

 

김규진 작가의 결혼 서약문은 씩씩하다. 레즈비언 부부이기에 겪게 되는 어려움을 인생의 다른 어려움들과 비슷하게 취급하는 듯 하지만 똑바로 직시하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행복할 것이라고 말한다. 니나는 마도에게 이런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마도와 니나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절망적인 현실을 뒤로 하고 문을 굳게 닫은 채 둘이 즐겨들었던 노래를 크게 틀어두고 춤을 춘다. 집은 엉망이고, 앤은 집의 문을 두드리며 울고 있고,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창을 통해 쏟아지는 가을 햇살과 노란 은행잎은 눈부시게 반짝거린다. 그들이 함께 가고싶었을 세계일 것이다. 분명 닫힌 문은 허무하게 열리겠지. 문이 열린 뒤의 마도와 니나는 어떻게 될까. 문 밖을 나선 그들에게 눈부신 평범함과 테두리가 생기길, 그리고 <우리, 둘>을 본 많은 사람들이 현실의 마도와 니나들이 가고자 하는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그들과 함께 나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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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세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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