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들, 둘의 이야기를 훔쳐보다 - 영화 '우리, 둘'

글 입력 2021.07.30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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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은 끊임없이 성장해왔다. 물론 진보라는 미명 아래에 많은 오해와 불필요한 피가 흐르지 않았던 적은 없다. 하지만 그 누구도 현대사회가 그 어떤 세대보다 더 빨리 다양성을 흡수하고 있다는 사실에 반박을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최소한 2021년인 오늘날, "여자들은 역사 공부하기를 꺼려요" 라던가 "여자에게는 결혼에서 거절할 권리만 가지죠"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때로 서로 집단의 이름으로 부른다. 따라서 어떤 집단을 창작품으로 녹여낼 때, 집단이 그들 자신의 개성과 판단을 압도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 작품들은 부자연스러운 차별로 이어지기 너무나 쉽기 때문이다. 그것이 온전한 선의에서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소수자를 소수자로 표현함으로써 그들을 소외시키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좋은 퀴어 영화가 동성애자라는 소재를 넘어서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동성애라는 소재에 지나치게 얽매이게 되면 등장인물의 개성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어떤 뚜렷한 메시지가 꿰차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성애자 당사자들이 겪는 본질적인 소외감을 지워버리는 방식 역시도 부자연스럽다.

 

그렇다면 좋은 퀴어 영화는 대체 무엇일까? 개인적으로는 집단이 아니라 캐릭터의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영화, 인간이 본질에서 가지고 있는 소외감과 사회적 차별이 만나는 그 미묘한 지점을 짚어낼 수 있는 영화라고 본다. 우리는 때로 '그들의 아픔'을 분리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사회적 차별은 존재하지만, 인간의 아픔은 언제나 인간의 아픔으로 통한다. 따라서 예술가는 그 미묘한 지점을 적절히 가리켜 작품의 메시지를 더 풍부하게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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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오늘 리뷰할 영화 '우리, 둘'은 좋은 퀴어 영화의 사례다. 이 영화는 동성애라는 사실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을 적절히 녹여내면서도, 아주 설득력 있고 인간적인 어조로 사랑의 충동과 복잡한 인간관계의 한 단면을 적절하게 녹여낸다.

 

영화 <우리, 둘>의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아파트 복도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맞은 편에 니나와 마도가 살고 있다. 이들은 마냥 가까운 이웃처럼 보이지만 사실 둘은 20년째 사랑을 이어온 연인이다. 은퇴도 했으니 여생은 로마에 가서 편하게 살자는 니나의 제안에 마도는 가족들에게 숨겨왔던 비밀을 털어놓기로 한다. 마도는 자기 아들과 딸에게 니나와 로마에서 살고 싶다고 이야기하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마도와 니나는 오랜 시간 연애를 했지만, 마도는 젊은 시절 결혼을 한 바 있다. 영화에서 니나와 마도의 젊은 시절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그래서 관객들은 마도가 위장결혼을 했는지, 결혼 생활 중에 니나와의 연애에 눈을 떴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린 소녀가 숨바꼭질하며 서로 찾는 장면이나, 호수에서 시체처럼 웨딩드레스-정확히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맥락상 웨딩드레스라 해석했다-가 떠오르는 장면이나, 호수 속에 빠지는 여자를 구출하는 장면을 고려했을 때 마도에게 결혼은 니나와 같은 사랑의 결과만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도의 결혼생활과 니나와의 연애가 무엇이 되었건, 마도의 가족들은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마도는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가족들에게 니나의 존재를 밝히지 못했다. 아들과 딸은 자신의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와 약간의 불화가 있을지언정 유일한 사랑을 나누었다고 믿고 있었다. 실제로 모든 것이 밝혀진 이후에도 그들은 어머니가 또 다른 여자 연인이 있다거나, 자신들이 억지스러운 결혼의 결과라는 사실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인다.

  

마도가 가족들에게 니나와 떠나겠다는 말을 밝히지 못했다는 사실을 안 니나는 마도와 싸우게 된다. 싸운 다음 날, 마도는 갑작스러운 충격으로 쓰러지게 된다. 정확히 어떤 병인지 자세히 표현되지는 않지만, 쓰러진 이후로 마도는 몸도 잘 움직이지 못하고 말도 잘 못하는 온전하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이 이후로 마도는 편하게 움직이거나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다.

 

니나와 마도의 관계를 모르는 가족들은 마도를 위해 요양사를 고용한다. 쓰러진 마도를 걱정하기도 했고, 매일매일 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을 즐긴 니나는 마도와 떨어져 지내는 것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니나는 마도를 보기 위해 여러 방해 공작으로 요양사를 해고하게 만들고, 마도의 가족들에게는 이웃인 자신이 마도를 돌보겠다고 자처한다.


하지만 그런 시간도 잠시, 마도와 니나가 한 침대에서 잠자는 모습을 본 마도의 딸은 둘의 관계를 알아채게 된다. 딸은 그들을 떼어놓고, 마도를 요양원에 보내게 된다. 심신이 온전해 보이지 않았던 마도는 니나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건다. 니나는 한순간에 달려와 마도를 데리고 요양원을 탈출한다.

  

니나는 마도와 함께 로마에서 살기 위해 모아둔 돈을 챙겨 떠나려고 하지만, 니나에게 앙심을 품은 요양사의 가족이 돈을 모두 털어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런 니나에게 마도는 함께 춤을 청하고, 니나는 미소를 지으며 마도와 함께 자신의 집에서 춤을 춘다. 그들이 춤추는 집 밖에서는 마도의 딸이 마도를 되돌려달라고 마구 문을 두드린다. 둘은 행복한 표정으로 춤을 추면서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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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독특한 연출이 눈에 띈다. 우선 제일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이 영화가 가끔 스릴러 영화의 형태를 띤다는 점이다. 관객들 처지에서야 니나와 마도의 관계를 충분히 이해하고, 이들의 이야기를 아주전부터 알고 있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니나의 안타까운 행동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니나의 시선을 거두고 보면, 니나 외 인물들에게 영화의 상황은 상당히 두려운 것이다. 니나는 마도를 만나기 위해 -마도가 준 열쇠로- 무단 침입하고, 불길한 시선으로 요양사나 마도의 가족들을 살핀다. 심지어 니나는 요양원까지 쫓아와 납치하는 집요한 모습도 보여준다. 그래서 요양사나 마도 가족의 입장에서 볼 때, 니나는 스릴러 영화에서 나오는 스토커처럼 보인다. 사실 아무런 정보도 없는 이들 입장에서 니나가 일방적인 망상증 환자나 스토커가 아닌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는가?

 

공포 영화에 등장하는 것들이 늘 미지의 존재인 것처럼, 잘 알지 못한다는 사실은 공포로 이어진다. 나는 개인적으로 영화를 감상하는 내내 이러한 연출이 동성애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제 아무리 친숙해졌다 할지라도, 우리의 주변인으로서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의 모습은 기괴하고 두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사실 이러한 공포는 요양사나 마도의 가족들만이 느끼는 것만은 아니다. 니나가 마도를 그리며 이들의 집에 숨어들었을 때, 영화는 괴물을 피해 숨는 생존자와 같은 연출 방식이 사용된다. 이들에게도 외부인들은 일상을 파괴할 두려운 존재인 것이다.

 

영화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들 중 하나가, 이런 소통의 부재로 인한 인식의 괴리가 아닌가 싶다. 앞서 기술했듯이 우리의 시대정신은 성장했지만,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동성애자는 쉽게 이야기될 수 있는 소재가 아니다. 니나가 작중에서 말한 것처럼 나이 든 그들의 연애가 상대적으로 덜 관심을 끈다 해도 말이다.

 

결과적으로 커밍아웃은 마도의 일생에 걸쳐 편한 이야깃거리가 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니나와 마도 주변의 인물들 사이에는 스릴러 영화와 같은 불편함이 맴돈다. 이들 모두가 공포에 떤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등장인물의 성격, 마도의 가족력, 동성애자라는 특수한 상황, 사랑의 충동을 숨기지 못하는 늙은 레즈비언이라는 다양한 맥락이 얽히고 얽혀 만들어진 결과다. 이 작품이 정말 좋은 동성애자 작품이라는 점이 바로 이런 다양한 상황 맥락이 존재한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스릴러적 연출뿐만 아니라, 영화 전반에 섬세한 표현방식이 눈에 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니나와 마도 외의 시선에서 니나는 불청객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마도의 딸에 의해 마도와 잠자던 니나가 쫓겨나는 장면이었다. 사실 니나와 마도가 잠든 방에서 이방인은 니나가 아니라 마도의 딸이다. 마도의 딸이나 요양 사는 마도가 직접 초대한 인물들이 아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니나는 마도가 준 열쇠를 받았고, 그날도 늘 그렇듯이 그녀의 옆에서 잠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나의 행동은 영화에서 마치 '오면 안 되는 곳에 온 사람'처럼 느껴지게 표현되었다. 매일 밤 마도를 찾아와 키스하는 그녀의 일상은 평범한 것임에도, 관객들은 그녀가 대담한 일을 하거나 위험한 일을 하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이런 미묘한 아이러니 때문에 감독이 의도하는 관객의 감상 자체가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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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 관객들의 기대를 기분 좋게 위반한 또 다른 장면으로, 마도가 요양원에서 니나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이 있다. 사실 관객으로서, 마도가 정말 의식이 있는지, 현재 명확한 인식을 할 수 있는 상태에서 니나와의 사랑을 위해 그렇게 행동하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그녀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요양원에서 마도가 빙고 게임을 할 때, 마도는 빙고게임 진행자가 불러주는 숫자와 아주 약간 틀린 숫자들을 채워간다.


만약 니나에 관한 정보를 자세히 알고 있지 않은 제 삼자가 그 주변에 있다면-그 시점에서는 관객들도 이에 속한다- 그녀가 인지장애를 겪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니나의 전화번호를 다시 기억해내기 위한 그녀 나름의 노력이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마도는 니나에게 춤을 청하고 그들만의 공간에서 미소 짓는다. 이러한 장면을 통해 그녀는 그녀와 온전한 사랑을 나누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말재간이 없어 이 영화에서 느낀 점을 잘 표현하기 어렵지만, 일련의 장면들이 외부의 시선 너머의 '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그들의 사랑'을 보여준 것 같이 느껴졌다. 뜨거운 연인이 그러하듯, 그들도 그들만의 언어로 사랑을 속삭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제목대로, 이 영화는 정말 '그들, 둘'의 이야기이다. 한 관객으로서 마도가 니나의 전화번호를 누르는 순간에는 그들에게 씌우던 온갖 프레임과 추측이 부끄러움으로 녹아내렸다.

 

모든 것을 잃은 비참한 상황에도 미소를 지으며 춤추는 그들을 담은 마지막 장면은 정말 최고의 마지막이었다. 이들에게는 영원같이 느껴지는 이 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폭풍의 눈처럼 느껴져서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다. 영화는 숨바꼭질하다가 서로 찾지 못하고 까마귀처럼 서럽게 울던 소녀들로 시작해서 늙은 두 연인이 둘만의 공간에서 춤추는 것으로 끝난다. 이후는 알 수 없지만, 서로 사랑의 충동을 확인한 그 순간만큼은 그들에게 행복한 순간일 것이다. 그 장면이야 말로 '그들, 둘'만의 온전한 장면이었기에.

 

 

+)글을 마치기 아쉬워 한 마디 더 붙여본다. 솔직히 성적 지향 자시고를 떠나, 니나같이 화끈하고 사랑에 저돌적인 사람과 사랑할 수 있다면 성별이 무슨 상관일까? 개인적으로는 마도가 정말 너무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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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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