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끝나지 않은 로맨스 - 우리, 둘

오직 사랑으로 행하여라.
글 입력 2021.07.27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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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 둘>은 니나와 마도라는 중년 여성의 사랑을 다룬다.

 

둘은 같은 아파트 같은 층에 산다. 평범한 이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20년이나 된 연인이다. 현관문이 서로 마주 보고 있어 아예 양 문을 활짝 열고 한 층 전체를 집처럼 사용한다. 니나는 마도와 같은 집에서 살길 바라지만 마도는 가족의 반대가 두렵다. 영화 내에서 한 번도 모습을 비추지 않는 막내아들은 이미 마도의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고, 그를 심하게 비난한 전적이 있기 때문이다.

 

마도는 가족들 앞에서 여생을 니나와 함께 로마에서 살겠다고 선언하려고 하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집을 팔고 로마로 갈 꿈에 부풀어 있던 니나는 사실을 알게 되자 크게 실망하고 비난한다. 하필 그날 마도가 쓰러진다.


영화는 시종일관 불안한 감정을 극대화한다. 시작하자마자 나오는 숨바꼭질을 하는 두 아이가 그렇다. 한 아이가 사라지면 다른 아이는 사라진 이를 찾아 소리를 지른다. 사람을 부르며 헤매는데 정작 들리는 건 까마귀의 울음소리다. 이런 불화가 관객의 평온을 비튼다. 불안감을 극대화한 연출이 니나와 마도의 감정을 관객에게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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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팬에 음식이 타고 있다. 연기가 자욱하고 음식 타는 소리가 요란해도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 관객은 몇 분 동안 음식 타는 장면만 보며 불이 나거나 큰 사건이 터질 것 같은 조바심을 느낀다. 음식이 타는 걸 무력하게 보고 있던 관객은 마도를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 니나의 무력감을 조금이나마 공유한다.


그런가 하면 크고 신경질적인 시계 초침 소리 사이로 잔을 두드리는 소리는 점점 커지고 날카로워진다. 마도를 만날 시간만 기다리는 니나의 조바심이 피부로 와닿는다. 니나와 마도의 딸이 대화하는 동안에 마도의 눈이 상영관을 가득 메울 땐 더욱 긴장된다.

 

딸은 엄마는 평생 아빠만을 사랑했다고 주장한다. 그 말을 따라가는 눈동자에 드러난 표정은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 딸의 입을 막고 싶어하는 것 같기도 하고 니나에게 변명하고 싶어하는 것 같기도 하다. 모든 게 슬프고 경악스러운지도 모른다. 딸 앞에서 연인이 부정당하니 당연하다. 화면을 꽉 채운 마도의 눈은 대화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마도의 감정과 생각을 헤아리게 한다.

 

영화는 이런 탁월하고 감각적인 연출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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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 나온 장면과 비슷한 장면이 후반에 나올 때도 있다. 앞에서 마도의 딸이 미용실에서 마도 머리를 만져주는 모습은 뒤에선 머리를 감은 후 말려주는 상황으로 나온다. 간병인이 계속해서 니나 집 벨을 누르는 듯 니나도 계속해서 마도 집 벨을 누른다. 상황이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으로 일상의 변화가 여실히 드러난다. 변하는 상황 속에서도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 바로 니나와 마도의 감정이다.


카메라까지 오직 둘에게만 집중해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둘 사이를 드러낸다. 사교의 장에서 춤추는 장면이 그렇다. 니나를 제외한 어떤 인물의 얼굴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인물에 초점을 맞출 때 배경이 그렇듯 주변 인물 모두가 흐릿하다. 하지만 니나가 집에서 마도와 춤을 추는 장면에선 언제나 둘의 표정과 모습이 뚜렷하게 표현된다. 이런 장면으로 관객은 온 세상에 단둘만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낀다.


단 둘밖에 없는 세상. 영화 은 그런 세상에 사는 니나와 마도가 현실에서 겪는 시련을 고스란히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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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나는 마도에게 누구보다 가까운 사람이다. 니나 집 냉장고는 전원이 켜져 있지도 않다. 선반에도 비상용 통조림 하나 없을 만큼 둘은 늘 같이 식사하고 생활해왔다. 그런데도 마도가 심각한 병에 걸렸을 때 니나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병원엔 자식들이 있고 집에선 간병인이 있어 쉽게 접근하기도 어렵다.


니나가 겪은 불편은 현실에도 존재한다.

 

한국에서 수술하기 전 환자 보호의 이유로 받는 수술동의서는 가족 외엔 서명할 수 없다. 동성 연인은 친구로 간주하여 연인이 위급한 상황에서도 다른 가족이 병원에 도착하길 기다려야 한다. 가족과 연을 끊은 경우는 더욱 난감한 상황에 빠진다. 심한 경우 병원에서 법적 혼인 상대와 부모가 아니면 인정해주지 않아 형제·자매 남매조차 서명할 수 없는 일이 존재한다.


가족에게 연인으로 소개되지 않은 니나에겐 간병인이 잠시 장을 보러 가는 상황에서도 연인을 만나는 게 쉽지 않다. 마도 옆에 있기 위해 불법 침입에 자동차 파손에 이르기까지 온몸을 불사르는 니나의 과격한 행동은 이러한 무력 상태에서 기반한다. 은연중에 유교 문화에 영향을 받고 자란 한국인 관객은 영화를 보며 저래도 되나 싶지만 저렇게까지 하는 니나의 마음은 십분 이해된다. 사소한 도움은 줄 수 있어도 결정적인 상황에선 그저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으니 오죽 답답할까. 신발을 신겨줄 순 있어도 지탱해줄 수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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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극 시작부터 성급한 성격을 잘 보여주는 니나에 비해 신중하고 조심성 많은 마도가 새벽에 갑자기 니나의 집 문을 두드리는가 하면 무작정 여행용 가방을 싸는 행동은 다소 충격적이며 감동적이다. 말을 하지 못하고 움직이기도 어려워진 마도가 여전히 니나를 절실하게 사랑하는 걸 짧고 강렬하게 보여준다. 언뜻 일방적인 사랑처럼 보일 수 있는 영화는 둘 모두의 사랑에 정확하게 초점을 맞춘다.


요양원 장면은 결말 부근과 마찬가지로 오래도록 인상 깊다. 의사가 권고하는 약물 사용을 반대하는 보호자 딸의 모습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일이 무엇인지 간접적으로 고민하게 만든다. 이와 이어지며 니나와 헤어진 마도는 내내 잠만 자며 그저 살아있을 뿐이지만, 니나를 만난 마도는 희망차며 평화롭다.


영화를 보고 나온 지 이틀째, 아침마다 결말 부가 생각나 심장이 저릿하다.

 

니나가 모은 돈은 둘의 미래 그 자체였다. 미래를 빼앗기고 어쩔 줄 몰라 멈춰 있는 니나와 달리 마도는 둘이 같이 있단 사실만으로도 행복해 보인다. 음악 없이 춤을 추는 두 사람의 표정은 복잡하다. 마도는 니나만을 바라보며 웃는데, 니나는 웃으면서도 눈에는 눈물이 그렁한다. 관객 마음도 복잡하다. 더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좋은 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도 웃고 있는 둘의 모습은 안타깝기도 사랑스럽기도 하다.

 

영화는 끝났지만 마도와 니나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 만지는 손, 미소가 고작 95분으로 사라질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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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황혼이라 한다. 삶을 마무리하고 죽음을 준비할 단계에 무슨 사랑이 있겠느냐고. 영화 은 그런 은은한 편견을 벗겨내는 노년 여성 영화라는 점에도 주목할 만하다. 니나는 끝의 끝까지 희망을 품고 있고 마도는 끝에서야 사랑에 솔직해진다. 그러니 둘의 인생에서 황혼은 죽음을 준비하는 차분한 시간이 아니다. 여전히 서로를 사랑하는 시간이다.

 

죽기 1초 전까지 삶은 계속된다. 삶이 계속되는 동안 니나와 마도의 사랑은 식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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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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