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도 전역이란 걸 하는구나 下 [사람]

글 입력 2021.07.22 21:18
댓글 1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격오지 근무를 하는 부대 특성상 중대의 모든 소대가 다 떨어져 생활을 했습니다. 이런 환경 때문에 소대 막내인 저는 짬 높은(군 생활을 오래한) 선임들의 시선을 한 몸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군대에서는 첫인상이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숱하게 들었던 터라 선임들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서 뭐든 나서서 했고 듣기 좋은 긍정적인 대답들만 해댔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제 자신이 안타깝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기도 합니다만 당시에는 그게 덜 욕먹고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저는 성격이 둥글다는 이유로 모두가 기피하는 선임 J와 초소 근무를 계속 들어가게 됐습니다. J는 저와 짬 차이(입대 시기 차이)가 13개월이 났습니다. 큰 짬 차이와 더불어 덩치도 컸던 J는 제 양 볼을 잡아 늘이거나 제 손에 깍지를 끼기도 했고 가슴을 주무르거나 귀에 대고 혓바닥 굴리는 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혓바닥과 침이 뒤엉키는 더러운 소리는 몇 주 동안이나 귀에서 맴돌 정도로 소름 끼쳤습니다. 지속적으로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J를 고발할 기회도 있었지만 저는 군을 믿지 않았기에 아무것도 적어내지 않았습니다. 역시나 군은 가해자가 고발자를 알 수 있는 방식으로 해결해나갔고 저는 저의 판단이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J의 부조리함에도 참고 웃으면서 대응했던 건 그의 표적이 되었을 때 듣게 될 이유 없는 욕,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그의 군 생활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J는 각설이처럼 돌아와 전문하사로 진화(?), 소대 간부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격오지 생활에 들어가서는 제 후임들이 순차적으로 그의 표적이 되었고 J는 말도 안 되는 온갖 것들을 트집 잡아 욕했습니다.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고 키보드를 부시기도 했고 늘 같은 시간에 재던 체온을 왜 지금 재냐고 욕하기도 했습니다.

 

간부들은 용사의 여건을 보장하기는커녕 화를 내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물론 아닌 간부도 소수 있었습니다). 발화점이 너무 낮아 조금만 열을 받아도 활활 타오르는 심지 같았습니다. 적어도 용사 시절을 보낸 제 입장에선 그러했습니다. 이 점이 군 생활에서 가장 어렵고 고통스러웠던 점이었습니다.

 

 

[크기변환][크기변환][크기변환][크기변환][포맷변환]20210622_074312_HDR.jpg

 

 

이른 짬(군번)에 최선임과 분대장을 맡으면서 고충이 많았습니다. ‘왜 우리 소대는 안 행복한 걸까?’, ‘내가 뭔가 잘 못하고 있는 건가?’하고 자책하는 날도 있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남의 고통을 위로해 줄 여유가 안 되는 날도 있었고 성인이 되고 가장 많이 운 날도 있었습니다.

 

그런 인내의 시간 동안 “집 가고 싶다”를 수천 번 아니, 수만 번 외쳤을까요. 전역하는 날이 찾아왔습니다. 화창한 날씨에 홀로 위병소를 나와 가장 먼저 고생했다고 스스로를 다독여줬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집에서 편히 앉아 노트북으로 글을 끄적이고 있습니다. 몇 번이고 머릿속으로 대뇌인 순간이 찾아온 겁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긴 하더군요. 밤이 지나고 아침이 오긴 합니다. 물론 그 겨울밤의 시간 동안 저는 많은 걸 배웠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것, 내가 누군가에게 배움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그렇게 못나지만은 않았다는 것.

 

고되었던 일들만을 늘어놨지만 군 생활이 마냥 힘들게 기억되지만은 않습니다. 선임들, 그리고 소중한 후임들과 신나게 놀고 웃으면서 하면서 대화했던 순간들은 평생에 잊혀질 수 없는 추억이니까요.

 

군대에서 1년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깨달은 것을 바탕으로 이제 새로운 도약을 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터널 같은 군 생활도 지나가는 것처럼 젊음이라는 이 시간도 흘러가기 마련이니까 조금만 보람차게, 그리고 열심히 ‘순간’을 살아보자고 다짐해봅니다. 충성!

 

 

 

아트인사이트 박도훈 에디터 명함.jpg

 

 

[박도훈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댓글1
  •  
  • 리원
    • 응원합니다.
    • 0 0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4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