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하루키, Writing to reach you! [도서/문학]

하루키의 티셔츠들, 그의 취향과 모티프들을 살펴 보다
글 입력 2021.07.22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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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잡지 취재를 위해 군자역에 있는 이자카야 식당에 갔다. 내가 담당한 콘텐츠도 아니었기 때문에 미식이나 즐겨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생선들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하는 곳이었는데 ‘바다는 깊고 물고기는 많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금태라는 생선을 아시는지. 나는 그곳에서 처음 먹었다. 연어도, 참치도, 숭어도 아닌데 입에 닿으면 사라지는, 특이한 식감의 생선이었다.

 

가장 인상 깊은 메뉴는 ‘굴 샌드위치’였다. 숙성 사시미로 유명한 이자카야에서 웬 굴 샌드위치? 시킨 이유도 단순했다. 하루키 아저씨(라 하기엔 이제 할아버지가 됐다)가 굴 튀김을 그렇게 찬양했었으니까. 아쉽게도 굴 튀김은 여름에 안 한다고 해서 굴 샌드위치를 시켰다. 굴이랑 샌드위치. 맛에 의심이 가는 조합이지만, 오늘 한번은 하루키 아저씨 느낌을 내볼까 하는 생각으로 한 입 베어먹었다. 맛이 어땠느냐고 물어보신다면 친구와 ‘이건 맥주 안주다’하고 동시에 외치며 맥주 한 잔을 시켰다. 그 정도로 맛있었다. 집에서 만들어 먹고 싶어서 찾아보니 그냥 생굴로는 못 만든다더라.

 

대충 짐작하셨겠지만, 필자는 하루키의 팬이다. 팬이라고 할 정도로 ‘하루키 아니면 못 살아!’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말이다. 그가 책을 낼 때마다 꼭 사서 읽는다. 최근에 ‘무라카미 T’라는 책을 냈는데, 서점에서 몇 번 읽어보곤 ‘참 하루키 아저씨답네’라고 생각했다. 자기가 모은 티셔츠로 쓴 잡다한 글을 모아 책을 내다니. ‘무라카미 하루키’란 인물은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다. 자기 취향 가득한 사적인 글도 이렇게 큰 인기를 끌다니.

 

 

 

하루키의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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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T’는 당시에 주머니 사정이 얇아서 못 샀었는데 내 취향을 잘 아는 동생이 생일선물로 줘서 읽었다. 대여해서라도 읽고 싶어서 마침 도서관에서 대여한 빌린 날이었다. ‘그래도 책은 사서 읽어야지. 형’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고 다음 날 바로 반납하고 선물 받은 책으로 읽었다. ‘역시 책은 사서 읽어야지’라고 생각하는 필자가 문헌정보학도라는 건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하루키 소설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들이 있다. 재즈, 비치 보이스, 굴 튀김, 맥주나 위스키. 아, 그리고 고양이도 있다. 이젠 이런 것들이 빠지면 어색할 정도로 집요하게 나타난다. 하루키의 다른 글들은 보면, 이러한 요소들이 그의 페르소나인 것 같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작가 본인의 생활이 묻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니까 말이다. 내가 이 글을 시작하면서 금태를 맛 보고 ‘요상하다 이 놈’ 하고 생각한 것처럼.

 

누군가는 하루키의 페르소나들을 ‘허영심이 가득한 아집’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의 글을 좋아하는 한 명의 독자로서는 그런 부분도 하루키란 사람을 이루는 요소라 생각하면 여간 흥미로울 수 밖에 없다. 내가 굴 튀김 대신 굴 샌드위치를 먹은 이유도 그러하다. 팬심에서 궁금하니까. ‘내 최애가 좋아하는 건데!’ 까지는 아니어도 ‘하루키 씨가 좋아하는 거네’ 라는 호기심에 먹어보는 거다.

 

무라카미 T도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빈티지 시장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름이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아저씨가 티셔츠를 모으는 취미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책은 일본의 유명한 패션잡지 <뽀빠이>에 연재한 글들을 수록한 것이다. 하루키 본인이 가지고 있는 티셔츠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쓴 것인데 역시 그의 취향이 가득 묻어나 있다.

 

 

 

무료 샌드위치맨이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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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잡지에 실렸던 글이니 글 자체는 어렵지 않다.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키 아저씨의 즐거운 수다를 듣는 기분으로 한 장씩 넘기면 된다. 티셔츠의 색감을 잘 살린 사진도 절묘하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카페에서 친구를 기다리면서 시간 때우기 좋은 책이다.


앞에 장황하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취향에 대해서 얘기했지만, 이 책의 묘미는 농담이다. 하루키 아저씨가 의도하고 쓴 건 아닐지라도 실소가 나오게 하는 문장들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제프 벡 일본투어’ 티셔츠를 입고 뉴올린어스 호텔의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같이 탄 미국인 아저씨가 하루키에게 말을 걸었다고 한다.

   

 

“내 아들 제프 벡”

“네?”

“그러니까 말입니다. 내가 존 벡이고 아들이 제프리 벡이라고. 제프라고 부르죠”

“하지만 그 기타리스트와는 관계없죠?”

“아, 전혀 관계없죠. 그냥 이름이 같을 뿐”

그렇게 대답하면 난감하다. 거기에서 대화가 더 발전할 여지가 없으니. 아드님 잘 계십니까? 하고 물을 수도 없고(모르는 사람이니까). 그 다음부터는 둘 다 말없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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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셔츠에 얽힌 어이없는 에피소드는 이 책을 읽는 묘미다. 하루키가 아닌 무명의 작가가 이 이야기를 썼다면 실소는커녕 그냥 그랬구나 하고 넘어가겠지만 말이다. 하루키의 솔직한 면모도 볼 수 있다. 그런 점이 ‘그도 우리랑 다를 바 없구나’란 생각이 들어 미소 짓게 된다. 도마뱀이 그린 티셔츠들을 소개하는 부분이 특히.

 

 
도마뱀이라고 한마디로 표현됐지만, 여기 있는 세 마리는 모두 종류가 다른 도마뱀이다. 제일 앞 사진은 갈라파고스 제도에 있는 이구아나. 다른 하나는 하와이의 게코, 또 한가지는 무슨 종이었더라? 기억이 안 난다. 도마뱀들 사정은 잘 몰라서.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샌드위치 맨 이다. 샌드위치 맨이 뭐냐면 영화 <조커>에서 아서가 표지판을 둘러매고 춤을 추던 그 장면을 떠올리시면 된다. 인간 홍보판. 하루키는 기업 홍보 티셔츠를 소개하는 장에서 샌드위치 맨에 관한 얘기를 한다. 샌드위치 맨은 사라졌지만 홍보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샌드위치 맨이 되었다고. 위트 있는 하루키식 농담이 아닌가? 무릎을 탁 치고 공감한다면 당신도 하루키의 팬이다.

 

 

 

Writing to reach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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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가진 티셔츠로 재밌게 글을 쓰고, 사람들이 읽어준다는 건 멋진 일일 것이다. 심지어 사적이고, 자신의 취향으로 범벅된 에피소드들인데 ‘역시 하루키 씨’ 하면서 책을 산다는 것은 더더욱. 글을 쓰는 사람에겐 감사하고도 축복받은 일이다.

 

하루키 아저씨는 작품 내내 자신의 취향을 고집스럽게 밀어 붙였다. 하루키 하면 마인드맵처럼 떠오르는 요소들이 있지 않은가. 취향을 보고 누군가를 떠오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뉴발란스 992를 보면 스티븐 잡스를 떠올리고 바라쿠타 자켓 하면 제임스 딘을 떠올리는 것처럼, 하루키는 나에게 하나의 아이콘이 됐다. 러닝, 재즈, 위스키 하면 하루키. 고양이보다 강아지라서 아직까진 고양이는 좀.

 

무라카미 T를 읽으면서 나는 하루키의 소설보다 그의 생활력이 묻어나는 글을 더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소설 자체보다 하루키란 사람에 매력을 느끼고 있던 것이다. ‘하루키 아저씨처럼 나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글을 쓰고 돈을 벌 수 있다면’ 하는 존경심도 더불어서.

 

영국의 브릿팝 밴드 Travis의 곡 중 ‘Writing to reach you’라는 트랙이 있다. 제목부터 누군가를 동경한다는 느낌이 팍팍 드는데, 악기를 연주하시거나 귀가 좀 예민하신 분이라면 Oasis의 ‘Wonderwall’과 코드 진행이 똑같다는 걸 알 수 있다. 가사에도 ‘Wonderwall’이란 단어가 등장하는 걸 보면, ‘Writing to reah you’는 Travis가 ‘당신들처럼 되고 싶어요’하는 존경과 헌정의 의미로 만든 곡임에 틀림 없다.

   

나도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되고 싶다. 되도록 문화에 큰 족적을 남겨서, 대중들이 나의 잡다하고 사적인 글에도 끄덕일 수 있는 정도로 인정 받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생각과 더불어 ‘Writing to reach you – 나의 빈티지’란 글을 쓰는 상상을 한다. 몇 안되는 컬렉션이지만 나름 애정이 담긴 빈티지 옷들에 관한 글을 쓰는 그런 상상을 말이다. 그리고 그걸로 돈도 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다.

 

 

[지정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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