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괴짜가 던지는 농담, 다이너스티 핸드백 [공연]

글 입력 2021.07.1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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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한 공기 속에서는 잘 벼린 칼날도 무디어진다. 후덥지근한 날만큼 삶도 축축할 때가 있다. 바람으로 피부를 타고 흐르는 액체를 대충 무마해보려 하지만. 오래 괸 물웅덩이에 이끼가 끼듯 뇌에도 불순물이 끼는 것만 같다. 쳇바퀴 도는 일상에서 달라지는 것은 온도뿐. 날짜가 바뀔 때마다 점진적으로 치솟는 온도계의 빨간 끝을 바라본다. 습기를 가를 수 있는 것은, 털을 다시 보송하게 세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싶다.

 

진이 다 빠져버린 몸을 돌보는 방법. 겉은 축축하지만 안은 건조한 삶에 활기를 불어넣는 법은 간단하다. 웃자! 마스크 안으로 녹아내리는 자외선 차단제와 피를 탐하는 벌레들을 잊게 해주는 웃음. 참았던 숨을 한 번에 터뜨리면 머리속의 텁텁한 공기가 환기된다. 지루함은 산화되고 때로는 번뜩이는 새 주제들이 빈자리를 채운다.

 

웃음은 영감이다. 채워진 것을 비우고 새로운 것의 도래를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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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장한 다이너스티 핸드백이 악동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는 dynastyhandbag

 

 

최근 필자는 흥미로운 콘텐츠를 탐색하고자 헤매고 있었다. 그러다 이 아티스트를 만났다.

 

우스꽝스러운 풍자와 카타르시스로 미국 대중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중인 예술가다. 뉴욕타임스(The New York Times)는 ‘근 몇 년을 통틀어 가장 재밌고 가장 흠잡을 데 없는 퍼포먼스’라고 극찬했으며, 더 뉴요커(The New Yorker)는 ‘엄청나게 똑똑하고, 그로테스크하고, 혁명적인’ 아티스트라고 평했다. 한여름처럼 뜨겁고 화끈한 미국의 퍼포먼스 아티스트, 다이너스티 핸드백(Dynasty Handbag)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다이너스티 핸드백은 아티스트이자 배우인 지브즈 카메론(Jibz Cameron)의 또 다른 자아, 페르소나이자 퍼포먼스를 위한 하나의 매개체다. 요즘 말로 하면 ‘부캐’라고도 할 수 있겠다. 퍼포먼스, 비디오, 소리, 그리고 춤이라는 통로를 이용하여 카메론은 자신의 내면세계에 자리한 희극과 비극을 표출한다.

 

2002년 처음으로 탄생한 카메론의 다이너스티 핸드백은, 약 20년 동안 세계 유수의 미술관을 비롯한 다양한 아트센터에서 유쾌한 스테이지를 선보여왔다. 이 외에도 짧은 길이의 여러 영상물과 두 개의 음악 앨범을 제작해왔다.

 

다이너스티 핸드백은 호스트로서 일종의 버라이어티 쇼를 진행한다. 주제는 작업물마다 다양하다. 유명한 고전을 그녀만의 유머로 재해석하거나 퀴어적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정치적 상황에 대한 풍자 혹은 섹슈얼한 농담이 무대에 오르기도 한다. 그녀의 쇼에서는 언제나 특유의 시니컬하면서도 과장된 액션의 코멘트가 돋보인다. 헝클어진 머리와 달라붙는 긴 레오타드, 그리고 한껏 뒤틀고 찡그린 특유의 표정은 캐릭터 고유의 괴짜다운 자유분방함을 표현하는 듯하다.

 

대표작으로는 세계적 예술작품에 대한 코믹한 논평이 인상적인 <여인의 껍질(Shell of a Woman)>, 괴상한 캐릭터와 헤테로 섹슈얼 백인 여성에 대한 풍자가 돋보이는 <나, 멍청이(I, An Moron)>, 두려움, 분노, 죄책감, 부끄러움 속을 무사히 항해하는 법에 관해 이야기하는 <굿모닝 이브닝 필링스(Good Morning Evening Feelings)>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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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너스티 핸드백의 유쾌한 사진. 출처는 dynastyhandbag

 

 

다이너스티 핸드백은 한 음악 프로젝트에서 처음 출발했다. 90년대 말, 카메론은 다이너스티라고 불리는 밴드에 속해 있었는데, 멤버들 없이 홀로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하던 중 자신의 무의식과 대화하는(타인이 보면 혼잣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듯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에 영감을 받은 그녀는 자신의 퍼포먼스에 대해 직접 논평하는 형태의 작업을 처음으로 시도하게 되었다.

 

당시 성소수자인 카메론은 남편과 이혼한 후 다소 비관적인 시기를 겪고 있었다. 자신이 실패라고 명명했던 것들과 각종 트라우마를 풀어내는 매개체로 또 하나의 자아를 외부로 구축해내면서, 카메론은 해소와 예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

 

다이너스티 핸드백의 우스꽝스러운 복장은 그러한 유머를 전달하기 위한 의도에서 출발한다. 더불어 화려한 색과 패턴은 그녀가 머무르던 마이애미의 라운지웨어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알려졌다. 내면 의식을 언어로 구현하게 되면서 카메론의 표현에는 일종의 한계가 없어졌다. 자신의 모든 생각을 말과 몸짓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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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스테이지에서 거울을 보고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다이너스티 핸드백. 출처는 Carla 매거진.

 

 

최근 몇 년간 카메론은 로스앤젤레스에서 매달 ‘이상한 밤(Weirdo Night)’이라는 제목의 월간 퍼포먼스 이벤트를 기획 및 진행하고 있다. 해당 라이브 쇼를 영화화한 동명의 영화가 올해 선댄스영화제 상영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코로나로 잠시 중단되었으나 다가오는 8월 14일,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MOCA)에서 다이너스티 핸드백을 다시 만날 수 있다. 그녀 외에도 다양한 경력을 자랑하는 다섯 명의 퍼포머들이 함께 스테이지를 꾸민다.

 

카메론의 예술은 타오르는 태양처럼 격정적이며 그 밑에서 튀어 오르는 빛처럼 생동력이 넘친다. 관객은 다이너스티 핸드백의 몸짓과 문장 앞에서 깔깔대며 쓰러진다. 그러나 산란하는 빛 뒤로 따라오는 서늘한 그림자처럼, 짓궂은 농담과 함께 날아오는 선뜩한 메시지들은 얼얼한 강도로 감상자를 깨운다.

 

허벅지를 세차게 내리치고 손바닥으로 입을 막았다가, 이어 고개를 흔들며 못 말린다는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시간의 흐름조차 멈춘 듯한, 숨을 조이는 답답함 속에서 우리는 자꾸만 몸을 움직이게 된다. 필터링 없이 시원하게 내뱉는 다이너스티 핸드백의 쇼가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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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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