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실패한 여행이 없는 이유 [여행]

여행에서 배우다
글 입력 2021.07.1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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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를 지나고 하반기를 시작하며 지난 1~6월을 되돌아본다. 이윽고 후회 가득한 순간들이 가득하다. 특히나 망설이며 놓친 것들. 겁이 많은 나를 알기에 기회가 오면 망설이지 말라는 말을 되새기지만 난 기회가 오는 순간 그 기회를 놓칠 준비를 가득 한다. 내가 했던 활동을 기반으로 그것을 부풀려 써내는 것쯤은 익숙하다. 정말로 두려운 것은 지원서를 작성하면서 앞으로 올 과정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면접에서 날 취조하듯이 물어볼 면접관들, 합격하더라도 내가 잘 해내지 못할 것이라는 날 깎는 잡생각들. 꾸역꾸역 내면과의 전쟁을 치른다.


이렇게 겁이 많은 나에게도 숨겨진 도전정신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 있다. 바로 여행이다. 여행에서는 색다른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내 생각보다 과감하고, 강인함이 있음을 알게 된다.

 

 


라라랜드


  

스무 살이 되어 가족여행 겸 첫 여행지로 선택했던 베트남. 그리고 스물 한 살의 두 번째 여행이자 가족과 함께하지 않는 독립적 첫 여행을 다녀왔다. 학기를 마무리하는 12월 말에 출발하기로 해 크리스마스를 특별하게 보내려 했다. 여러 행선지를 찾아보던 중 직항 80만원의 미국 로스앤젤레스 왕복 티켓을 발견했다. 예상보다 저렴했고 무엇보다 내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적합한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항공권을 결제했다. 일정을 정하며 가고 싶던 장소를 찾아보고 미리 한국에서 예약하고 이에 맞춰 숙소도 예약했다. 여행 갈 준비를 마친 후, 출국할 날을 기다리며 여행지의 사진을 찾아봤다. 몇 달 후에는 이것을 실제로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여행 갈 순간이 너무 그리워질 때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 ‘라라랜드’를 꺼내 보며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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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는 로스앤젤레스의 명소를 바탕으로 한 아름다운 장면들이 펼쳐진다. ‘LALA LAND’는 로스앤젤레스, 즉 LA를 뜻한다. 다른 의미로는 현실과 동떨어진 환상의 세계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나도 로스앤젤레스에 가면 영화 같은 일이 벌어질까?’, ‘구름에 떠 있는 듯한 환상을 느낄 수 있을까?’ 나도 ‘라라랜드’와 같은 순간을 바라며 현실에서 벗어나길 바랐다.


가고 싶은 곳을 찾아보고 여러 번 수정하며 완벽하게 계획했다고 생각하고 떠났다. 그러나 비행기 지연은 기본이고 날씨로 인한 갑작스러운 스케줄 변경하는 등. 도피처럼 떠난 나의 여행은 환상의 세계와는 다름을 알 수 있었다. 그리하여 기대와는 다르게 계획대로 동일하게 이행하지 못하고 집에 돌아오게 됐다.

 

 


그럼에도 실패한 여행이 아닌 이유


 

본 계획과는 다른 여행을 마친 후, 시간이 지나 여행의 우연한 장면들을 회상한다. 기대하지 않았던 장소와 예상치 못한 재미, 실패한 여행의 순간들을 떠올리며 함께 갔던 친한 언니와도 웃긴 추억들이 쌓였다.


 

“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여행의 이유> 중에서

 

 

나의 여행의 이유를 찾기 위한 김영하 작가의 책은 여행을 좀 더 의미 있게 만들어 주었다. 여행을 다녀오며 그곳은 어땠냐고, 좋았냐는 지인들의 질문에 좋았다는 말로 뭉뚱그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 여행의 실패로부터 여행의 의미를 찾아볼까 한다. 우리는 인생에서든 여행에서든 배움과 깨달음을 얻으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여행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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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시작은 인천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는 순간이라 생각한다. 도시를 벗어나 보이는 바닷가의 풍경은 더욱 들뜨게 한다. 한참 바다를 가만히 보다 보면 인천공항에 도착한다. (이때 몸이 가장 편하기도 하고 여행 중 가장 깨끗한 상태이다.)

 

탑승 수속을 다 하고 난 후, 행선지까지의 긴 비행기 여행이 시작된다. 미국 기준으로는 11시간 정도의 비행시간. 기내식을 넙죽 받아먹고 선잠이 들었다가 깨는 순간을 반복한다. 평소에는 즐기지 않을 테트리스를 두어 시간 하기도 한다.

 

기다림이 지루해질 때는 어디쯤 왔나 확인해본다. 태평양 어딘가의 망망대해 어딘가를 나는 중이다. 예상 도착 시간은 19일 오전 8시 40분. 한국 기준 출발 시간은 19일 오후 2시 40분. 6시간이나 시간을 거슬러 도착한다. 시간 마법을 부린듯한 느낌에 묘한 신비함이 든다.

 

 


연이틀 놀이공원


  

미국에 10일 정도 머무르며 여행에서 돌아왔다. 여행의 시작이 나에게 몸과 마음이 가장 편한 순간이었다면. 지금부터는 미국 여행 중 기억에 남던 ‘실패’에 대해 다뤄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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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는 놀이공원. 한국에서 여행을 계획할 때는 완벽한 스케줄로 생각했다. 첫날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짧게 관람하고 그다음 날은 디즈니랜드로 향하는 것. 스물 한 살의 어린 패기로 이틀 연속 놀이공원에서 놀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게 유니버셜은 기대보다 더욱더 재밌던 장소였다. 인형 탈을 쓴 직원들과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다. 영화에서 나오던 주인공들이 운영하는 듯한 놀이기구를 탔고, 해리포터의 성에 실제로 온 것 같은 착각도 들었다. 유니버셜에서 늦게까지 놀았던 나머지 다음 날 일정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다음 날은 몸 상태가 안 좋아 디즈니랜드에서 아스피린을 먹어가며 밤중까지 버텼고, 크리스마스 연휴와 인접해 사람이 많았다. 무엇보다 연이틀을 놀이공원에 갔던 나머지 이미 놀이공원의 환상은 이루어졌을 것이다. 디즈니랜드에 대한 기억은 피곤함에 절인 후 근처 호텔에 누워 행복했던 느낌이 남는다.


같이 여행을 다녀온 언니와 말할 때도 이 이야기는 꼭 빼놓지 않는다. 집순이인 나를 과대평가하여 호기롭게 계획을 세운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재밌기 때문이다. 추억을 이야기하며 깨닫는 것이 있다. 다음 여행에서는 어떻게 여행 계획을 세워야 할지 알게 된다.

 

첫 번째는 시간을 넉넉하게 세워야 한다는 점과 두 번째는 너무 많은 걸 보려고 하지 말아야 할 점이다. 마지막으로는 이틀 연속으로 놀이공원에 가면 피곤하니 한 곳만 가는 것으로 스케줄을 세우는 것이다.

 

 


종일 드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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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장소에 가든 여행을 가기 전에 가장 기대되는 장소가 있다. 영화 속에서 만난 명소일 수도 있고, 여행을 찾아보다 끌림이 생겨 가고 싶다고 마음먹는 장소. 내 경우에는 후자에 가까웠다.

 

방문한 곳은 ‘조슈아 트리 국립 공원’으로, 도시에서 3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는 여행지다. 별을 보는 스폿으로 유명한 국립 공원에서 나도 쏟아지는 별과 유성을 기대했다. 미국 여행에서 별을 보는 경험이 훗날 아이슬란드에 오로라를 보러 가도록 이끄는 여행이 되길 바랐다.


그러나 출발하는 당일 아침부터 비가 왔고, 구름이 잔뜩 머금은 하늘은 별을 보여주지 않을 것 같았다. 우선 가보자는 마음으로 차에 탔다. 계속 흐린 하늘과 다시 밝은 하늘을 반복하였다. 별이 보일 것이라고 마지막까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지만, 결국 하늘에서 본 것이라곤 두 개의 별뿐이었다.

 

이 정도는 한국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별을 보기 위해서 이 장소에 온 것인데. 매우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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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망쳤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는 투어 가이드분께서 해주신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가이드분께서는 자신이 투어를 하며 비가 오는 날을 처음 접해봤다고 하셨고, 여러분(투어를 함께한 여행객분들)은 실망하셨겠지만 정말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라고, 오늘이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하셨다. 그러니 다음에 올 기회가 생긴다면 그때는 맑은 날 와서 쏟아지는 유성우를 보라고 하셨다.


어쩌면 별을 보기 위해 온 우리를 위로해주기 위해 해주신 말씀일지 모른다. 그래도 다음 미국 여행을 계획할 때 다시 방문할 예정이다. 가이드분의 말씀처럼 저번에는 국립 공원의 특수한 풍경을 즐겼다면 다음에는 쏟아지는 유성우를 보기 위해서 갈 생각이다. 그리고 또 헛된 기대일 수 있으나, 무수히 많은 별의 풍경보다 내가 2년 전 마주한 비가 내리던 조슈아 트리 국립 공원이 더 아름답길 바란다. 평소 날씨가 맑을 때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을 본 몇 안 되는 운 좋은 사람이면 좋겠다.


볼 것을 남겨 놓는 것이 이래서 좋은 것인가 하고 생각한다. 보통 일생에 한 번 가볼까 하는 다른 나라의 국립 공원임에도, 나는 한 번 더 그곳을 보기 위해 다시 방문할 이유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 여행 계획이 빗겨나더라도 실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최소한 나에게는 다음에 또 그곳에 가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여행에서 배운 태도


 

코로나가 끝나면 나는 어느 나라에서 또 시행착오를 겪고 있을까. 여행 후 좀 더 과감해진 나를 느낀다. 보는 시야가 넓어진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사는 곳이 나의 온전한 세계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다른 나라도(미국도) 내가 갈 수 있는 곳이었다는 것을 체감한다. 내가 사는 곳은 한국이 아닌, 한국을 포함한 지구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 수학여행의 대표적 명소로 알려진 제주도와 경주에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그런 내가 미국에 다녀왔다는 생각에 못 다녀올 곳이 없다. 가족여행을 제외한 첫 여행을 미국으로 다녀왔다는 것도 지금 생각하면 세삼 놀라운 점이다.

 

독립적 첫 여행을 멀리 다녀오니 겁이 안 난다. 해외가 치안이 안 좋다는 이야기를 뉴스에서든, 사람들을 통해서든 자주 접한다. 그러나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고, 안전한 여행의 방법은 관련 카페나 서적을 통해 정확한 정보를 찾아서 알 수 있다. 지레 겁을 먹던 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걸어서 세계속으로’, ‘세계테마기행’과 같은 프로그램을 보며 여행의 행선지로 선정해보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언젠간 가고 싶은 장소이니 집중해서 보겠다는 마음으로 시청하면 마치 방구석에서도 여행한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풍경을 열거해보면 내 취향을 알게 된다. 풀밭과 호수, 아이슬란드, 폴란드, 북극. 나는 자연의 모습을 사랑한다. 실제로 만날 자연 풍경에 대한 기대를 하며 오늘도 여행 프로그램을 열심히 시청한다. 혹시나 헛된 기대여도 모든 것에 행복하고 다시 의미를 찾을 준비가 되어 있다.


계획을 잘 세운 여행에서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그것이 실패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인생은 긴 여행이라는 말도 있다. 그것이 인생과 비슷하다고 한다면, 그러니 인생에서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다시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패에서 배워 나아가는 것, 여행에서 파생된 인생 태도이다.

 

 

[임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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