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웹툰은 어떻게 미술관에 들어오게 되었나 - 호민과 재환 [미술/전시]

글 입력 2021.07.12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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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민과 재환》 포스터 이미지.jpg

 

 

미술관과 웹툰은 그다지 잘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시 <호민과 재환>에서, 많은 관람객에게 더 친숙하고 임팩트 있는 쪽은 ‘호민’이 아니었을까. 주호민 작가는 유명 웹툰과 파생된 영화까지 크게 히트한 경험이 있다. 웹툰에 비교적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웹툰 <신과 함께>나 동명의 영화는 꽤 익숙한 이름일 것이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웹툰 작가와 협업하여 전시한다고 했을 때, 상당히 신기했던 것은 사실이다. 내가 기억하는 웹툰 기반의 전시는, 주로 팬들을 타겟으로 한 체험형이나 포토존 형식의 전시였다. 작가와 원작의 팬이라면 솔깃할 법한 전시지만, 기존에 서울시립미술관이 해왔던 전시의 결과는 좀 다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이러한 궁금증이 첫 번째였다.

 

궁금증에 대한 서울시립미술관의 답은 신선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전시는 단순히 웹툰 작가와 그 작품에 대한 전시만은 아니다. 이 전시는 아버지이자 민중미술가인 주재환 작가와 아들이자 웹툰 작가인 주호민 작가의 연결성을 보여주는 전시다. 민중미술이 아버지 세대인 주재환 작가의 시대를 그려냈다면, 웹툰은 지금 세대의 공감을 자아내는 현재를 그려냈다. 미술관은 웹툰을 지금 시대를 담아내는 도구로 다뤘다.

 

그런 관점에서 <호민과 재환>은 아버지 세대와 아들 세대를 잇는 전시를 보여준다. 장르와 주제는 시대의 흐름 안에서 만나거나 벌어진다. 우리는 그 안에서 경험해본 적 없거나, 경험해본 적 있는 시간을 들여다보게 된다.

 

 

 

두 작가가 각자 사회를 담아내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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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환 작가와 주호민 작가는 모두 사회적인 문제들을 담은 작품들을 선보였다. 각자가 선택한 방식이 얼마나 다르면서도 유사한지를 살펴보는 것이 재미있었다.

 

주재환 작가는 생활과 가까운 주제를 직관적인 방식으로 표현해내는 작가였고 덕분에 작품이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이번 전시의 주요 작품은 아니지만, 상당히 기억에 남는 작품이 <훔친 수건>이었다. 목욕탕에 수건을 훔쳐 가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훔쳐 가지 못하도록 ‘훔친 수건’이라고 적어 둔 것을 그대로 작품에 붙여서 사용했다. 메시지와 이야깃거리가 뚜렷한 사물과 텍스트가 적극적으로 사용되면서, 강렬하지만 어렵지 않은 작품이었다.

 

이러한 작품은 동시대를 살아간 어른들에게는 때때로 웃음을 준다. 그 시대가 다소 어색한 세대에게도, 이 작품의 이야기와 감정을 전달하기란 어렵지 않다. 이렇듯 시대 일부분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소재와 이미지를 사용하고, 텍스트와 직관적이고 과감한 표현을 사용한 주재환 작가의 작품은 오늘날의 웹툰이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과도 유사하게 느껴졌다. 주재환 작가와 비슷한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에게 캔버스에 붙은 ‘훔친 수건’은, 한 장면만으로도 여러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전달하는, 일종의 웹툰과도 같은 기능을 할 수 있다.

 

주호민 작가의 작품 『무한동력1』 중 <꿈이 뭔가?>라는 에피소드는 할아버지와 청년의 대화로 이루어진다. 꿈 대신 먹고 사는 문제에 목매는 청년들의 현실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이 에피소드의 명대사는 ‘못 먹은 밥이 생각나겠는가, 아니면 못 이룬 꿈이 생각나겠는가?’이다. 꿈과 ‘밥벌이’의 문제는 현실에서 마주했다면 냉소적으로 웃고 넘겼을 문제일 것이다. 이를 할아버지와 청년의 대화라는 상황으로 풀어내면서, 같은 문제를 쉽게 지나치지 못하고 한 번쯤 다시 돌아보고 생각에 잠기게 한다.

 

웹툰이라는 장르는 작가의 손끝에서 독자들에게 와 닿기까지 시간이 정말 얼마 걸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작가가 의도한다면 시대를 가장 빠르게, 충분히 반영하는 장르가 될 수 있다. 소재는 같은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경험하고 고민하는 것들, 즉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주호민 작가는 매력적인 이야기와 독자와 함께 숨 쉬는 소재를 통해, 잠시 멈춰 일상을 한번 돌아보게 만드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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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세대와 관련 없이 공통으로 공감을 끌어내며, 멀리서 던진 공을 받아내는 탁구처럼 돌아가는 작품도 있었다. 주재환 작가의 <귀찮아>는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작품이다. 종이에 그려진 인물이 문구용 집게로 눈과 입을 집고 있는 이미지는 직관적으로 감정을 전달한다. 이것이 오늘날의 세대가 느끼는 무기력하고 지루한 감정에 와 닿은 것이다. 작가의 직설적이고 직관적인 표현 방식은 다양한 연령층을 설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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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전시에서는 두 작가 각자의 더 깊은 작품 세계와 더 많은 연결고리를 찾아볼 수 있다. <신과 함께>의 모티브가 되었던 신화와 민속신앙의 주제가 어떻게 세대를 거쳐 다르게 표현되었는지도 볼 수 있고, 아버지의 작품을 주호민 작가가 웹툰의 방식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볼 수 있다.

 

특히 전시 마지막에서 볼 수 있는 영상인 <주재환 월드컵>도 흥미롭다. 실제 여러 플랫폼에서 영상을 제작하며 독자들과 소통하는 주호민 작가가 주재환 작가와 함께 작품 이야기를 하며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고르는 영상이다. 아버지 세대의 예술세계가 오늘날 어린 감상자들에게 가장 익숙한 영상 형식으로 표현된다. 실제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듯이 편안한 형식이 특징이면서, 또 작품을 관람자들에게 편안하게 설명하는 기능을 하는 영상이기도 하다.

 

많은 이야기를 담은 전시이다. 서로 다른 사회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려냈음에도 두 작가의 작품 사이에 느껴지는 유사성이 나에게는 가장 인상 깊었고, 그래서 그에 대한 글을 썼다. 그 과정에서 웹툰이 어떻게 미술관에 들어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나의 의문은 완전히 풀렸다.

 

사람마다 생각은 제각각이겠지만, 지금 세대를 대변하는 소재와 표현이라는 관점에서 웹툰을 바라본다면, 전시가 더 선명하게 느껴질 것 같다. 우리 세대의 이야기가 미술관 안에서는 어떻게 보이는지를 느낄 수 있어서, 20대인 나에게도 신선하게 느껴졌던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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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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