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드라마/예능]

더할 것도, 덜어낼 것도 없이 완벽한 제목 '꼬꼬무'
글 입력 2021.07.10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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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SBS

 

 

유튜브 알고리즘에 결국 두손 두발 다 들었다. 며칠이고 시야에 걸리는 썸네일을 결국 클릭하고 말았다. 다음 에피소드, 이전 에피소드 이리저리 넘겨 가며 유튜브에 올라온 클립들을 보는 것은 시간문제였고 어느새 나는 거실 TV 앞에 앉아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이하 꼬꼬무)' 재방송을 보고 있었다.

 

*

 

'꼬꼬무'는 지난 2020년 6월 SBS의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시작되었다. 시청자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은 후 당해 9월부터 11월까지 시즌 1의 10부작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현재 방영 중인 꼬꼬무는 올해 3월부터 방영을 시작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 2'이다. 꼬꼬무의 세 출연진이자 이야기꾼인 장트리오(장도연, 장성규, 장항준 분)는 우리와 가까우면서도 멀게 느껴지는 근현대의 이야기들을 전해 준다.

 

먼 역사는 아니지만, 현대의 우리가 자세히 알지 못하는 이야기. 1980~90년대를 살아온 사람들이라면 뉴스에서 한 번쯤 들어봤을 테지만, 그 자세한 속내 그리고 현재 그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이야기. 꼬꼬무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이토록 무서운 무관심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이전의 TV 시사교양 프로그램과는 다르게 전문가의 일방적인 사실 전달에 국한되지 않고 비전문가인 출연자가 직접 본인의 지인을 '이야기 친구'로 초대해 1:1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꼬꼬무의 특징이다. 출연진이 직접 지인을 초대하다 보니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자연스러운 대화와 리액션이 돋보인다. 다루는 이야기 중 다수는 여전히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거나, 많은 피해자를 남긴 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가끔 '이야기 친구' 역할의 출연진이 사안에 비해 가벼운 리액션을 보여주어 누리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해당 구성은 시청자 한 명 한 명이 이 사회의 소시민으로서 이야기에 몰입하고, 주변의 이야기로 인식할 수 있도록 돕는다.

 

꼬꼬무와 유튜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우선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유튜브에 업로드된 꼬꼬무 클립들의 조회 수다. 1997년, 907일간의 도주극을 벌인 탈옥수 신창원의 이야기는 현재 800만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고, 다른 영상들도 모두 100만, 200만 조회 수를 훌쩍 넘긴 상태이다. 각 클립은 대체로 20~30분 정도의 길이인데, 유튜브 시장에서 이는 결코 경쟁력 있는 러닝타임이 아님에도 꼬꼬무의 클립들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사실 내가 꼬꼬무를 보기 시작하며 가장 감탄한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유튜브의 강점과 공중파의 강점을 현명하게 조합했다는 점이다. '유튜브 붐'이 처음 일어나기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유튜브 시장은 흔히 '어그로'라 불리는, 관심을 끌기 위한 소재와 제목, 썸네일에 집중했다. 그 조건들을 모두 충족할만한 콘텐츠의 소재는 미제 사건, 미스터리, 인물이나 사건의 이면 파헤치기 등이었고 그 결과 조회 수에만 집중한 여러 유튜버는 팩트 체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질이 낮은 무분별한 영상 업로드로 인해 대중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대중은 그들을 비난하면서도 가끔 사회적으로 불미스러운 사건이 크게 발생했을 때만 SBS의 유서 깊은 시사교양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 관심을 가졌고, 대부분의 시간은 여전히 유튜브 속 콘텐츠의 바다를 헤엄치는 데 소비했다.

 

꼬꼬무는 현대인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소재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면서도, 공중파 프로그램답게 실제 사건 관련자, 전문가, 사료 등을 철저히 조사하고 지루하지 않은 교차편집을 통해 몰입도를 높이며 양질의 프로그램을 완성함으로써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여기까지 감탄하고 나면, 내게 꼬꼬무를 소개해 준 알고리즘에게 감사해야 하나 싶다.

 

*

 

오피니언을 기고하기 위해 글의 섹션을 고르고, 말머리 '[Opinion]'을 붙이고 본문으로 넘어가기 전 늘 제목을 먼저 붙이는 편이다. 본문의 내용을 잘 담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있고, 무엇보다 나만의 표현으로 재구성된 문장을 떠올리려 머리를 굴린다.

 

그런데 오늘의 글은 제목으로 어떤 단어를 붙여 봐도 어색하고 과하기만 했다. 어울리지 않는 스티커를 덕지덕지 붙인 것처럼, 말끔하지 못했다. 결국, 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라는 기존 프로그램 제목의 완벽함에 깔끔히 패배를 인정하기로 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은 내가 오피니언의 제목에 담고자 했던 꼬꼬무의 핵심 포인트 두 가지를 모두 내포하고 있었다. 첫째, 지금 이 순간까지도 완결할 수 없는 이야기, 하지만 많은 이들이 모르고 있던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들에게 기억되도록 하는 것. 둘째, 매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날 듯 끝나지 않는 현대인의 유튜브 알고리즘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그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것.

 

자, 이제 들을 준비가 되었는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이건하 컬처리스트 tag.jpg

 

 

[이건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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