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인생을 품는 시집 한 권 - 시가 인생을 가르쳐 준다

당신은 인생의 어느 단락을 살고 있습니까?
글 입력 2021.07.10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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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인생의 어느 단락을 살고 있습니까?



인간의 일생은 네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유소년, 청년, 장년, 노년. 인간의 모든 시기에는 각자의 특성과 과업이 있다.

 

시도 이 시기를 갖고 있다. 시는 그 사람의 인생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나태주 시인은 "애당초 시는 시인의 삶에서 나옵니다."라고 한다. 먼저 살았던 사람들의 가장 아름다운 느낌을 언어로 담아놓은 것이 시이다. 시로써 사람의 일생을 훑어볼 수 있고 인생을 배울 수 있다.

 

『시가 인생을 가르쳐 준다』는 인생의 네 단락에 따라 나태주가 뽑은 인생시 125편을 소개한다. 이 단락 중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청년 시절이라 한다. 가장 왕성한 의욕과 가능성이 살아 있는 시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가는 청년 - 장년 - 노년 - 유년의 순서로 시를 배열했다.

 

 

1 그래, 아름다운 것은 짧은 법!

 

첫 파트는 청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랑에 대한, 관계에 대한, 소망에 대한 청년의 인생관이 담겨있다. 그중 제일 첫 번째로 수록된 기형도 시인의 <질투는 나의 힘>을 살펴보겠다.

 

  

질투는 나의 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 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 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기형도

 


우리는 어떤 힘으로 살고 있는가. 외부의 영향이나 대상의 자극이 원동력이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청년의 시기는 늘 누군가에 대한 동경과 선망을 하는 시기다. 나도 저 사람처럼 언변이 좋다면, 저 사람처럼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저 사람처럼 풍부한 지식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각자 선망의 대상을 품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너무나 많은 마음의 공장을 세우고 계획하고 노력하고 움직였을 것이다. 그러나 마구 쏘다녔던 것들이 공중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것이었음을, 지나가는 청춘을 다 세어갈 때쯤 깨닫게 된다.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는 시로 우리에게 스스로를 사랑하였는지 묻고 있다.

 

삶의 중심을 나에게로 가져오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사는 것보다 나보다 잘난 것을 부러워하며 살아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청년 시절 누군가를 질투하는 것은 살아가는 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삶에서는 사랑을 찾을 수 없었다는 의미를 남겨두고 있다.

 

시를 수록하며 나태주 시인의 평론도 읽을 수 있었다. 독자의 마음과 같이 설레는 마음으로 적어내린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시를 싸우듯이 써라, 유언인 듯 쓰라'는 말을 들으면 기형도 시인의 이 시가 떠오른다고 한다. <질투는 나의 힘>은 자신의 생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부정하면서 사랑에 대해서까지 부정한다.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구절에서 나태주 시인은 말한다. "자기에 대한 사랑이 온갖 사랑의 근본임을 뼈아프게 깨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놀라운 발언이다." 독자 자신만의 감상과 나태주 시인의 감상을 비교하며 향유할 수 있으며, 다양한 관점을 얻을 수 있다.

 

 

2 살아가며 꼭 한 번은 만나고 싶은 사람

 

두 번째 파트는 장년의 이야기다. 이별의 아픔, 현실에 대한 고통과 울분의 이야기와 그로 인한 깨달음이 담겨있는 시가 많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이별은 손 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데서 온다

. . .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은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 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아픈 데서 피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 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 . .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

 

- 김용택

 


"이별은 손끝에 있고 / 서러움은 먼 데서 온다" 어찌 삶의 세월을 지나온 그들의 깨달음을 다 이해할 수 있으랴. 이별은 손 닿는 곳에서 시작하지만 그로 인한 감정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천천히 시작된다. 그러나 시간이 가고 따뜻한 봄이 오면 고통이었던 감정은 다시금 희망이 되고 꽃이 된다.

 

나태주 시인은 이 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하나의 명제 같고 잠언같다. '고통은 꽃처럼 피어나고, 그리운 것들은 산 뒤에 있다.' 이런 좋은 소식을 사람들은 왜 모를까 시인은 한탄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힐난이나 한탄이 아니라 조용한 기쁨의 표현임을 작가는 역설하고 있다.

 

세 번째 파트 '3 그립고 아름답고 슬픈 눈이 온다'에서는 노년기를 말하고 있다. 인생의 마무리를 짓는 시기, 삶과 죽음 사이를 담담히 거니는 시기이다.  네 번째는 유년기의 '4 다시 찬란한 기쁨의 봄이 오리니'이다. 유년기는 생이 시작되는, 푸릇푸릇하고 무럭무럭 자라나는 시기이다. 그런 새로운 시작의 설렘과 함께 어린아이의 마음이 가득 담긴 시가 자리 잡고 있다. 어떤 시가 어떤 감성으로 내 마음을 두드릴지 알아가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놓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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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의미



시라는 것은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신비한 힘이 있다. 단어가 주는 포근함과 문장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있다. 게다가 시는 낭독이라는 매력이 있다. 입 밖으로 꺼내 읽으면 종이 위의 텍스트는 생생히 살아나고 시의 고운 문장들은 공기에 은은하게 퍼진다.

 

단 번에 모든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계속해서 읽고 읊으며 시간이 지나면 차차 시의 세상이 보이게 된다. 음미하면 할수록 다른 장면이 보이고 풍부해지는 것이 시이다. 최대한 절제된 단어와 문장만으로 어떻게 이리 큰 감정과 이야기를 담아 울림을 주는지, 시를 읽다 보면 영혼이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시인의 가장 찬란했던 순간을, 아름다웠던 순간을 그대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유소년부터 청년, 장년, 노년기까지 사람의 일생을 담은 시집, 다양한 시인들의 세계를 통해 나의 인생을 배울 수 있으니 얼마나 뜻깊은 일인가.

 

『시가 인생을 가르쳐 준다』로 모든 이들의 마음에 평안이 깃들길 바란다. 이 책을 다시 들고 저 달빛과 함께 마음에 품을 시를 찾으러 가야겠다.

 

 

 

[아트인사이트] 이소희 컬쳐리스트.jpg

 

 

[이소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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