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늘, 당신은 어떤 사랑에 설레시나요? [영화]

달라진 한국의 사랑 이야기
글 입력 2021.07.08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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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친구, 애인… 다양한 관계에서 우리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낀다. 이 중에서도 연애 감정과 가까운 사랑은 예술작품의 단골 소재이다.

 

수 세기 전 고전문학이나 당장 오늘 출간된 소설에서, 아니면 우연히 보게 된 연극에서, 그 외 어디서든 우리는 ‘사랑’ 이야기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는 사랑이 누구든지 살면서 한 번은 느끼게 될 보편적인 감정임에 기인한다.

 

 

 

1) 한국 로맨스 영화의 위치


 

영화도 예외는 아니다. 로맨스 장르를 빼고는 한국 영화를 논할 수 없을 정도로 로맨스는 오랜 시간 한국 영화 내 주류 장르로 자리해왔다. 먼저 1960-70년대 <미워도 다시 한번>, <영자의 전성시대> 등으로 한국영화계는 멜로 전성시대를 맞이했다. 그리고 뒤이은 1990년대 <접속>, <편지>, <8월의 크리스마스>와 같은 로맨스 영화는 제2의 멜로영화 붐을 이끌었다.

 

실제 한국영상자료원의 <21세기 한국 영화> 책 속 통계에 따르면 1990~1999년, 한국 영화의 주요 장르별 분포도에서 멜로가 차지하는 비중은 38%로 가장 높다. 본 통계가 각 년도 별 흥행작 10편을 선별해 나온 것임을 고려하면 당시 멜로영화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동일한 방식으로 2000~2019년 한국 영화 주요 장르별 분포 통계를 살펴보면 멜로드라마의 비중이 17%로 대폭 준 것을 알 수 있지만, 여전히 두 번째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주력 장르임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며 로맨스 장르의 흥행성적이 부진한 것은 사실이다. 과거보다 로맨스를 찾는 관객이 줄었다. 시대의 변화, 그 외 여러 사회문화적 요인도 하나의 원인이겠지만 그동안 이어진 멜로 영화의 전통적인 스토리텔링 방식은 관객을 지치게 했다.

 

본 오피니언은 한국 멜로영화 붐이 식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의 로맨스 영화 <너는 내 운명>과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통해 멜로영화의 전개 방식과 그 구조에 대해 살펴본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전통적’인 멜로영화의 스토리텔링이 무엇인지 알아본다. 이어 근 3년 내 개봉한 한국 로맨스 영화 <너의 결혼식>, <가장 보통의 연애> 두 편으로 최근 로맨스 영화가 과거와 비교했을 때 어떤 차이점을 가지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이 과정을 통해 한국 영화의 진부한 멜로공식이 해체되고 변화하는 양상, 그리고 변화의 의의를 탐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 2000년대 로맨스: <너는 내 운명> &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너는 내 운명>,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발표한 한국 영화흥행 순위 통계 중 2000년대 멜로장르 부분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작품이다. 두 작품 모두 약 300만 명 정도의 관객을 동원했다.

 

먼저 2005년 개봉한 <너는 내 운명>은 시골 총각 석종(황정민)과 다방 레지 은하(전도연)의 사랑 이야기이다. 은하에게 첫눈에 반한 석종이 구애하고, 처음에 거절하던 은하는 차츰 석종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그러나 어느 날 나타난 은하의 전남편 일로 어려움을 겪고 은하는 석종을 떠난다. 설상가상으로 석종은 목을 심하게 다치고 은하는 에이즈에 걸린 후 성매매 혐의로 교도소에 수감된다. 이후 영화 자체는 은하의 출소 후 두 사람의 재회로 끝난다.

 

다음으로 2006년 개봉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교도소를 배경으로 사형수 윤수(강동원)와 자살 시도 후 고모의 권유로 윤수를 만나게 된 유정(이나영)의 이야기를 다룬다. 서로 아픈 과거를 털어놓으며 둘은 가까워지나 결국 윤수의 사형집행으로 영화는 끝난다.

 

 

[크기변환]너는 내 운명.jpg

 

[크기변환]우리들의 행복한 시간.jpg


 

두 영화의 주인공들은 대립하는 인물로 설정된다. 기본적인 성향이든, 자라온 환경이든 인물 사이에는 분명한 대척점이 존재한다. 석종은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는 순박한 시골청년인 반면, 은하는 남자에 질려 사랑을 믿지 않는 다방 레지이다. 유정이 부유한 집안에서 부족함 없이자랐지만 윤수는 가난한 고아로 떠돌이처럼 살아왔다. 그런 둘의 만남은, 그들의 사랑을 더욱 운명적으로 보이게 한다.

 

은하가 석종을 거절하고, 윤수가 유정을 적대하듯, 주인공들은 처음에 감정적 대립을 겪는다. 그러나 이후 가까워지며 사랑에 빠지고 이때 인물들에게 시련이 닥친다. 이 시련은 질병, 사형처럼 개인의 의지로 해결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 영역으로 표현된다.

 

여기서 소위 말하는 신파극으로 흘러가 결국 과도한 비극적 정서가 지배적으로 나타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에이즈 감염 사실, 아픈 과거처럼 숨겨진 진실이 밝혀지는 단계가 공통으로 드러난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진실이 밝혀지며 두 인물의 서사가 극적으로 떨어지는 장면은 둘의 사랑이 운명적임을 강조하는 하나의 장치이다.

 

 

 

3) 오늘의 로맨스: <너의 결혼식> & <가장 보통의 연애>


 

근 3년간 개봉한 로맨스 영화 중 흥행한 영화 2편 <너의 결혼식>, <가장 보통의 연애>는 앞서 말한 로맨스와는 결이 다르다. 2018년에 개봉한 <너의 결혼식>은 고등학생 때, 대학 시절, 현재에 이르기까지 총 세 시점으로 첫사랑 중심의 플롯이 구성된다. 우연(김영광)과 승희(박보영)는 과거 고등학생 시절, 대학생 시절 만남과 이별을 반복한 후 끝내 이별한다. 그리고 영화는 승희의 결혼과 함께 승희와 우연 모두 각자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결말로 막을 내린다.

 

2005년 둘의 첫 만남인 과거 이야기에는 전통 멜로영화의 클리셰들이 등장한다. 첫눈에 반해 사랑을 시작하지만, 승희 아버지의 가정폭력으로 승희가 전학을 가며 헤어지는 전개다. 남녀가 사랑하다 해결할 수 없는 시련으로 이별하는, 둘의 인연을 더욱 ‘첫사랑’답게 만드는 의도적인 설정으로 보인다. 이런 정통 클리셰는 ‘과거’의 사랑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관객은 그들의 사랑에 진부함보다는 향수를 느끼게 된다.

 


[크기변환]너는 결혼식.jpeg

                                    

 

<너의 결혼식>에서 눈여겨 볼 점은 그들의 첫 재회이다. 고등학생 때 헤어지고 그들은 같은 대학에 진학하여 다시 만나게 되는데, 이 재회는 다분히 의도적이다. 그간 과거의 멜로영화들은 사건의 전개가 ‘우연성’에 크게 의존해 개인의 노력보다는 단순 사건 발생에 의해 극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너의 결혼식>에서는 우연이 승희를 만나기 위해 고군분투하여 같은 대학에 진학한다는 점이 다르다. 이 외에도 우연과 승희가 결국 이루어지지 않는 결말이라는 점에서 기존 로맨스 영화의 공식과는 배치되는 노선으로 영화가 구성됨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2019년 개봉한 <가장 보통의 연애>는 사랑에 실패한 재훈(김래원)과 선영(공효진)을 다룬다. 두 사람은 사수-부사수 관계로 만나 차츰 가까워진다. 이 영화가 과거의 로맨스와 차별화되는 점은 ‘밝히지 않은 진실’에 있다. 앞서 말한 <너는 내 운명>과 <우행시>에서는 두 주인공의 숨겨진 진실이 밝혀지며 극이 절정에 치닫는다.

 

그러나 <가장 보통의 연애>에서 재훈과 선영은 서로의 치부를 이미 알고 있다. 그들 사이에는 숨겨진 진실이 없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서로에게 기대하는 바도 없다. 이런 둘의 관계성은 그들의 사랑을 더욱 ‘의외’로 보이면서도 담백하게 만든다.

 

 

[크기변환]보통의 연애.jpg

 

 

 

4) 당신은 어떤 사랑에 설레나요.


 

최근 개봉되는 로맨스 영화 속 사랑은 결코 운명적이지 않다. ‘너 아니면 안 돼’ 식의 사랑은 과거 이야기이다. 심지어는 상대를 잊고 새 출발을 하는 모습까지 영화에 담아낸다. 관객들은 필연적인 사랑보다는 현실적인, 언제든 헤어질 수 있는 사랑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현대 로맨스는 관습처럼 내려오던 [ 우연적만남 – 감정적대립 – 사랑 – 시련 - 극복/이별 ]의 공식에서 한두 단계씩을 비튼다. 시련이 없다든가, 이별의 원인이 불가항력적이지 않은 식이다. 이는 기존 멜로영화의 답습을 깨면서 신선함을 주는 하나의 트렌드이다. 이 외에도 신파극으로 흘러가지 않고 비극적 정서를 최소화하는 등 최근의 사랑 이야기는 과거 과잉된 감정에 부담을 느끼던 관객을 사로잡고 있다. 과하지 않으면서도 현실적인 것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경향을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한국의 로맨스 영화가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지는 알 수 없지만, 하나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식이든 현대사회의 니즈에 맞춰 영화가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변화가 로맨스 안에서 새로운 장르가 생기고 발전하는 기틀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이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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