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글은 낱말 퍼즐이 아닐까

글 입력 2021.07.05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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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든 의문이 요 근래, 거의 몇 달 내내 제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고민에서 멀어지려면 거기서 벗어나 그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아야하는데 잊을만하면 툭 튀어나와 사람을 괴롭힌다. 저도 모르게 흥얼거린 노랫말이, 현수막의 광고 문구가, 자기가 좋아하는 시라며 친구가 보내준 구절이, 아니면 책에 있는 모든 문장들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 글이 좋은 이유가 대체 뭐지?

 

세상에서 처음보는 기상천외한 단어들을 쓴 것도 아니다. 내가 다 알고 있는, 일상적으로 무탈히 쓰이는 단어들을 나열한 것 뿐이다. 그렇다고 문장 구조를 뒤틀어놓은 것도 아니다. 시적허용도 한 두 개지, 전부 말이 되고 말이 되는 문장들이다. 나도 알고 너도 아는 단어들로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문장을 만들며, 어떻게 그런 문장들을 모아놔 사람의 감정을 요동치게 만드냔 말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여전히 이해할 수가 없다.

 

뻔히 아는 단어들로 심장을 저미는 문장을 만드는 것도, 일상적으로 쓰이는 문장들로 사람들의 심장을 쥐어짜내는 것도, 나로서는 도저히 납득을 할 수가 없다. 왜, 대체, 어떻게. 한 번 이런 의문이 들고나니, 그 전이라면 그냥 좋은 말이고 좋은 글이라며 넘겼을 문장들도 다시 눈을 벅벅 비비고 의아함을 가득 담아 보게되는 것이다.

 

일상적인 문장에는 특허를 낼 수 없다. 특허법에 대해 자세하게 전문적으로 아는 건 아니라 틀릴 가능성도 있지만, 어쨌든 내가 알기로는 그렇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명대사’를 듣고 특정한 장면을, 혹은 작품을 떠올린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문장이 새로운 생명을 얻게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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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시인이 쓴 서시의 마지막 구절이다. 오늘 밤, 별, 바람, 스치다. 전부 일상적인 단어다. 심지어 나는 저 중에 세 단어를 방금 막 친구에게 말하기까지 했다. ‘와, 오늘 밤 진짜 달 예쁘다. 옆에 별도 많이 보여.’ 내 말이 문학적인가? 심금을 울리나? 전혀 그렇지 않다. 그냥 지나가는 문장이고, 와 그렇네, 달 예쁘다, 하는 대화 이후로는 잊힐 것이다. 그런데 같이 흔해빠진 단어를 사용했더라도 서시의 문장은 다르다. 밤 하늘의 서늘한 공기와 함께 서정적인 느낌에 멍하니 다시 한 번 곱씹게 되는, 그야말로 ‘문학적’이라는 수사가 아깝지 않다. 대체 이런 차이는 어디서 나오냔 말이다.

 

아니면, 별거 아닌 문장이 특정한 장면 속에서 생겨 그 뒤로 계속 사람의 마음을 울리기도 한다.

 

형, 나 경찰이야.

 

불한당을 본 사람이라면 전부 기억할 것이다. 혹은 나처럼 불한당을 열성적으로 좋아한 불한당원이라면, 곧바로 그 때의 감정을 되살리고 숨이 막히기에 충분한 문장이고. 자신의 직업을 말하는 별 거 아닌, 너무나 평범한 이 문장이 가진 위력은 대단하다. 최소한 이 영화를 재밌게 본 사람들에게는 말이다.

 

그래서 글은 참 재밌다. 어떻게 이렇게 다채롭고, 단순하고, 오묘하면서, 평범하고, 아름다울까. 글이 주는 매력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하겠다. 그러면서 괜히 질투도 나고 부럽기도 한다. 나도 언젠가는 그런 문장을 만들 수 있을까. 내가 만든 문장이 사람들에게 기억될 수 있을까. 적어도 나에게 만족스러운 글을 써볼 수는 있을까. 평범한 단어가 모여 위대한 문장이 되고, 평범한 문장이 모여 위대한 작품이 된다는 게 아직도 신기하기만 하다.

 

물론 글만 그런 건 아니다. 음악도 정해진 박자와 음정을 어떻게 배치하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세상 돌아가는 게 너무 신기하다. 보통 사람들은 이해도 잘 못할 첨단과학기술도, 결국 지구에 있는 재료들을 조합해서 만든 거 아닌가. 물론 음악이나 과학보다 내게 익숙하고 가까운 건 글이니까, 글에 대해서는 늘 신기할 것 같다.

 

생각해보니 주어와 동사를 전혀 어울리지 않게 믹스매치하는 방법도 있다. 넬의 ‘기억을 걷는 시간.’이나 윤딴딴의 ‘겨울을 걷는다.’ 둘 다 ‘걷는다.’는 동사를 ‘기억’과 ‘겨울’에 썼다. 일상적으로 쓰이는 걷는다는 동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목적어를 붙힌다니, 너무 매력적이지 않나? 기억을 걷고, 겨울을 걷고. 듣기 전까지는 한 번도 떠올려본적도 없지만, 막상 곱씹어보면 말이 된다. 말이 되다 못해 울컥하기까지 한다. 같은 삶을 살더라도 나는 길을 걷는데, 넬은 기억을 걷고 윤딴딴은 겨울을 걷는다. 살고있는 삶의 밀도가 다르다. 억울할 정도다.

 

그렇다고 전혀 관계없는 두 단어를 막무가내로 가져다 붙인다고 이렇게 말이 되는 것도 아니다. 책상을 마신다. 이렇게 되면 그냥 아무거나 먹는 사람이 되는 거다. 글이란건 생각할수록 별 거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지만, 아무나 글을 쓸 수는 없다.

 

그래서 사실 글을 쓰면서도, 아트인사이트에 기재하면서도 늘 고민이 된다. 내가 쓰는 글이 가치가 있을까? 누군가의 마음에 남을 수 있을까? 그러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세상의 모든 특별한 문장에게 경의를 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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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우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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