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담이 낮고 문을 열어 놓아도 괜찮은 곳

글 입력 2021.07.04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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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안전한 공간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두려움과 상실 없는 평안한 삶을 축조할 수 있는 곳. 아직 일어나지 않은 실종과 미지의 사건을 향한 걱정은 베개 끄트머리에 악착같이 내려앉아 나의 잠을 갉아먹는다.

 

어른들은 내게 집에서도 커튼을 치라고 당부한다. 외출을 나갈 땐 삼중으로 된 건물의 잠금장치를 열고 키의 두 배가 훌쩍 넘는 도시의 담벼락을 따라 걷는다. 가로등과 네온사인의 빛이 휘황하게 뭉그러지는 골목에서도 나는 몸을 움츠린다.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리면 숨이 가빠오고 걸음이 본능적으로 빨라진다. 존재하지 않는 통화 너머 상대에게 장황하게 말을 걸기도 한다.

 

누군가는 벙커들이 있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나를 다독인다. 그러나 지상 위 벙커들은 모두 터무니없이 불완전하다. 나는 사방이 뚫려 있는 곳에서 잠을 자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다. 벽이 없어도 안전한 집. 오직 갑작스러운 소나기만이 나를 깨울 수 있는 집. 그곳에서는 모기에 물리지 않는 방법과 다음 날 아침 식탁만이 유일한 고민거리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사방이 막힌 방 안에 앉아서 그저 위험과 불행이 내 몸을 비켜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내가 운이 제법 좋은 사람이기를. 계속 숨 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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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돌담은 낮다. 자정 넘은 밤하늘의 색을 닮은 돌들이 얼기설기 쌓여 부드러운 곡선을 완성한다. 나는 이 돌덩이들을 담이라고 불러도 되는 것일까 고민했다. 담이라기엔 너무 낮고,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지 않는가. 콘크리트로 뒤덮여 빈틈 하나 허용하지 않는 도시의 매끈한 담을 떠올렸다. 르네상스식 창살이 날카롭게 둘린 두터운 가림막. 그러나 제주의 낮은 돌무더기는 풀과 꽃을 장식처럼 피우고 있었다. 나는 기막힌 대조에 할 말을 잃은 채로 조막만 하게 피어오른 새끼 이파리의 보드라운 솜털을 쓰다듬었다. 그새 구멍들 사이로 바람이 들어와 더운 몸을 휘감았다. 마치 나의 숨구멍에 호흡을 불어넣어 주는 것처럼.

 

대문과 창문이 활짝 열린 집이 많았다. 나를 제외하곤 아무도 이를 해괴하게 여기지 않는 모양새였다. 집 안의 가구가 빛을 받아 낱낱이 드러나고 말소리들이 두런거리며 공기를 타고 번졌다. 방충망을 뚫고 경쾌한 피아노 소리가 야트막한 오르막길까지 울려 퍼졌다. 그렇게 담은 낮고 문은 열린 곳이 있었다. 언젠가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경계를 곤두세울 필요가 없어 높게 벽을 쌓지 않아도, 출입문을 꽁꽁 잠그지 않아도 괜찮은 곳이 있다고. 훈기가 맴도는 남쪽의 섬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인적 없는 거리 위에서 나는 믿음이 형체를 입고 걸어오는 환상을 보았다. 안전에 대한 믿음. 타인과 사회에 대한 믿음. 물론 그 믿음이 불순물 없이 오롯이 순결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걸쇠를 단단히 걸어 잠근 채 이방인을 경계하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수한 세월 동안 지속해온 삶의 태도는 내게 어떤 희망처럼 느껴졌다. 활짝 열린 창문 가장자리로 나부끼는 커튼 자락을 두고 순진하다고 비난할 수 없었다.

 

가로등이 적은 밤의 거리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집집의 조명이 낮은 돌담을 타고 흘러와 발끝에 떨어지며 다음 걸음을 비추었다. 나도 모르게 움츠러든 가슴뼈를 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이 없어도 무섭지만, 사람이 있어도 무서운 아이러니에 대해 생각했다. 사실 어둠이 두려운 것이 아니다. 나는 사람에게 공포를 느낀다. 밤의 침묵을 찢고 내 뒷덜미를 낚아챌 수도 있는 무명의 손아귀 힘이 두렵다. 어릴 적 내가 동경하던 밤의 아름다움은 자라면서 오염되었다. 위험이 득실대는 범죄의 시간. 내 몸뚱이를 공포와 우울의 제단 위로 올려 두기에 적절한 타이밍이라고. 그렇게 나는 줄곧 무고한 밤을 곡해하고 있었다. 달과 독대하고 별의 자리들을 손으로 더듬을 수 있는, 그 황홀한 고요의 시간을 말이다. 안전을 파괴하는 것은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다.

 

내 안에 손을 넣어 휘저으며 깊숙이 자리 잡은 경계심을 매만져본다. 담을 높게 쌓는 이유는 지키고 감추려는 본능이고, 문을 잠그는 것은 방어이자 경계다. 그러나 나는 높은 담과 잠긴 문이 인간 무리를 더욱 각박하게 몰아넣는다고 느낀다. 나를 안전에 더욱 집착하도록 만드는 것은 담과 문이기 때문에. 그래서 잠시간 머무른 제주의 작고 한적한 마을이 너무도 부러워졌다. 길고양이가 들어와 자연스럽게 의자 위에 주저앉는 곳. 이름 모를 벌레만이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곳. 인적이 드물지만, 단절이 아닌 연결을 감지할 수 있는 곳. 그곳은 내가 태어나서 본 가장 안전에 가까운 공간이었다.

 

*


나는 지상에 건설될 수 없는 안전한 낙원과 평화로운 집을 꿈꾼다. 관음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편안히 눈인사를 건넬 수 있는 낮은 담을 꿈꾼다. 열린 문을 통해 바람이 자유롭게 드나들며 문설주에 매달린 방울을 흔들기를 바란다. 불빛이 없어도 안전한 밤에 살고 싶다. 그래도 괜찮은 곳에 가고 싶다.

 

언젠가 제주의 그 마을에 다시 가야겠다. 안전한 공간이 못 견디게 필요해질 때. 그때 다시 유일한 기대에 마음을 기대러 다시 떠나야겠다.

 

 

[최미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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