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내 꿈은 너무도 다채롭지만, 그래서 좋아.

다채로울수록 더욱 소중해진 나의 꿈
글 입력 2021.07.03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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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릴 적에는 되고 싶은 것이 너무도 많았다. 동물을 좋아하니 수의사가 되고 싶었고,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의사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다. 광활한 우주를 헤엄치는 우주비행사도, 그림으로 밥 벌어먹는 화가도, 세상 모든 동물과 교감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던 사육사와 조련사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다. 명예로운 죽음을 이룰 수 있는 군인도, 경찰도, 소방사도 되고 싶었다.

 

항상 많은 것들이 되고 싶었고, 당연히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는 삶이었으니까. 가족들은 사랑이 충만했고, 따뜻한 집도 있었고,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먹고 싶었고, 친구들도 많았다. 무엇하나 1등을 하지 않으면 분해서 치가 떨릴 정도로 욕심이 많았고, 그만큼 자신감도 대단했다.

 

무엇이든지 난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2.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꺾인 것은 타국에 발을 붙이고 나서부터였다. 먹고 싶은 것은 꿈도 상상도 못했으며 식빵 하나로 하루를 버텼던 적도 있다.

 

라면 하나로 하루를 버틸 수 있다면 그날은 운수가 좋은 날이었다. 사랑이 충만했던 가족은 도박장을 전전했다. 머무를 집은 짧게는 하루, 평균 한 달, 길게는 반년, 예외적으로 일 년 반 동안 이사를 했다. 짐을 풀어낼 새도 없었다. 추위 속에서 떨었고, 더위 속에서 멍하니 하늘만 바라봤다.

 

이윽고 학교조차 가지 못할 때는 온종일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이 전부였다. 꿈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아득히 '맞아, 수의사가 되고 싶었던 것 같기는 해, 수의사뿐만이 아니라 참 많은 것이 되고 싶었어.' 문득 떠오르다가 고개를 주억였을 뿐이다.

 

10년 후 성인이 되었을 때의 걱정보다 당장 오늘 저녁 무엇을 먹을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3.

간신히 한국에 발을 붙이고 난 뒤, 다시금 꿈이 생겼을 때는 직업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흔들리는 사춘기 속에서 주문을 외우듯 가슴에 품고 살았던 꿈이 단 하나 있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


낯간지러운 말이었으나 그만큼 간절했다. 눈 뜨자마자 학교로 가서 아침 7시부터 혼자 학교에 우두커니 앉아있고 싶지도 않았고, 야간 자율학습이 끝난 뒤 괜히 집 밖을 서성이다 12시가 다 되어서야 집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주말이 될 때이면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와서 밖에서 저렴한 밥을 한두 끼 사 먹고 카페에서 죽치고 앉아있다가 또 자정이 될 때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싶었고, 주말에는 집에서 빈둥거리고 싶었고, 가끔 배달음식도 시켜 먹고 싶었고, TV도 보고 싶었다. 생일에는 케이크를 사 들고 집으로 가고 싶었다. 선물도 받고 싶었다. 방학마다 가족 휴가라는 것도 가보고 싶었다.

 

미술학원도 다니고 싶었다. 동네에 있는 미술 학원에 혼자 상담하러 가서 '부모님께서는 바쁘셔서 혼자 상담하러 왔다'라고 거짓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 잠깐 사이 괜히 미술학원을 훔쳐보고서는 만족감을 느끼는 것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떼쓰고 싶었다. 너를 누가 말리겠니, 그런 소리를 들으며 기어코 미술을 하고 싶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4.

흔들리는 삶과 마음속에서도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나는 어느새 다시금 진로에 대해 생각할 때가 왔다. 고등학교 생활기록부에는 진로를 적는 칸이 있었고, 나는 안정적인 대학 입시를 위해 진로를 확정지을 필요가 있었다.

 

안정적으로 회사에 들어갈 수 있는 일을 하자.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일을 하자. 굶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자. 대신, 창의성과 예술을 가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그렇게 마음을 먹고 진로를 찾아다녔고, 그렇게 광고기획자라는 꿈을 만들어내어 문화콘텐츠학과에 지원했다.


그와 별개로 꿈이 무엇인지에 관해 물을 때이면 아득한 미래를 다시금 꿈꾸고는 했다. 좋아하는 것들을 먼 미래에 현실성 없이 흡수시키고는 친구들과 킬킬대며 웃었다.


"한옥에서 살고 싶어. 고급 고깃집 같은 한옥. 가끔 고깃집 보면 겉은 한옥인데, 적당히 한국답지만 적당히 현대적인 곳 있잖아. 내 꿈은 그런 곳에서 사는 거야. 한복 입고 정적으로."


"방마다 컨셉을 잡아서 꾸밀 거야. 집을 놀이공원처럼 꾸밀 거야. 어떤 방은 식물을 엄청 많이 둬서 숲 같은 컨셉이고, 어떤 방은 분홍색 벽지에 엄청나게 큰 인형들로 가득 채운 인형의 집 같은 컨셉으로."


"맨날 초밥만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돈 버는 게 꿈이야. 아니다, 초밥만 먹으면 질리니까 카레랑 초밥 번갈아 가면서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돈 벌고 싶어."



5.

다행히 문화 콘텐츠 학과는 적성에 맞았고, 기획이라는 진로 활동은 재미있었다. 기획과 동시에 이것저것 디자인하는 것도 즐거웠다. 카드 뉴스, 포스터, 피피티, 마스코트 등 문화 콘텐츠 학도가 해야 하는 모든 디자인이 재미있었다. 높은 학과 만족도 속에서 다행히 진로에 대한 고민은 많지 않았다.


그사이 내 집이라는 것도 생겼다. 나라의 도움을 받아 복층 원룸을 저렴한 값에 구했다. 사춘기 시절의 꿈은 이뤄졌다. 식탁에서 밥을 먹고, 주말에는 빈둥거린다. 가끔은 배달을 시켜 먹기도 하고 직접 요리를 하기도 한다. 궁금했던 여름 휴가도 친구와 함께 가봤다. 여름 방학 동안 제주도로 향했다. 맛있어 보이는 것을 사 먹었고, 사고 싶은 것을 샀고, 가고 싶은 곳을 갔고, 하고 싶은 것을 했다. 그토록 원하던 평범한 생활이었다.


안정된 삶 속에서 다시금 꿈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어떤 미래를 꿈꿀까.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나는 항상 바다를 동경했다. 내가 잠시 발을 붙였던 나라는 가는 곳마다 바닷냄새와 흰 모래사장이 있는 곳이었고, 그곳에서 들었던 파도 소리를 사랑했다. 발가락 사이사이를 부드럽게 쓸어내리는 모래도, 옅은 비린내와 시원한 바람, 물 냄새가 뒤섞여있던 그곳의 향기도,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찰박이는 물소리도, 차가울 정도로 시원했던 에메랄드빛 바다도 모든 것이 나에게 행복이라는 단어를 전달해주는 듯했다.


그래, 난 바다에서 살아야겠다.


맥주를 좋아하니 맥주 가게도 차려야지. 하지만 나는 그 가게에 없을 거야. 친한 마을 사람들을 주 손님으로 두고 그 사람들에게 알아서 맥주 따라 마시라고 해야지. 나는 그런 손님들을 뒤로하고 서핑을 해야지. 짠 바닷물이 입안에 들어올 때마다 '으악, 너무 짜!' 하고 소리 지르면서 웃어야지. 서프보드에서 넘어질 때마다 허우적거리다가 기어코 이번에는 넘어지지 않겠다 다짐하며 다시 보드 위에 올라타야지.

 

내 가게에 있던 친구가 냉동실에 있는 소시지 꺼내먹는다고 소리치면 그건 내가 야식으로 먹으려고 남겨둔 거라고 함께 소리쳐야지.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마음대로 꺼내서 주방에서 구워서 안주 삼아 먹는 친구한테 친근감 있는 욕설을 하고서는 다시 서핑에 집중해야지. 그리고 잔뜩 지쳐 배가 고픈 상태로 가게에 돌아가 친구가 구운 소시지를 함께 먹으며 잘 구웠다고 저렴하게 샀는데 가성비 좋다는 등의 실없는 이야기를 나눠야지.



6.

이런 꿈을 이야기할 때이면 '너무 낭만적이다.'라며 당황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왜 지금이 아닌 먼 미래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대학교에 다닐 돈으로 당장 가게를 차리면 되잖아, 라고 이야기하며 대놓고 비웃던 어른들도 있었다. 그럴 때이면 답답한 마음에 소리를 지르고 싶다.


내 꿈은 그렇게 스케일이 작지 않아!


기획자라는 진로도 엄연한 나의 꿈이다. 현장을 다니며 내가 기획한 것이 잘 구현되는지 확인하고 싶고, 나의 기획서가 세상에 인정받고도 싶다. 이 분야에서 이름을 날리고 싶다. 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서 인터뷰도 하고 싶다. 잡지에도 실리고 싶다. 모두가 기획자로 활동하는 나의 이름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대학이라는 곳에서 공부하는 즐거움과 진로를 향해 한 발짝 나아가는 설렘과 언젠가 기획자가 되어 회사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7. 

여기서 꿈이 끝난다면 그건 나답지 않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어느새 하나둘씩 다시 생겨나기 시작한 나의 꿈은 어느새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한옥에서 살고 싶다는 꿈에서 시작해서, 모두가 한복을 입고 다니는 한국 전통 축제도 기획해보고 싶다. 세계 여행도 다녀보고 싶고, 스쿠버다이빙도 해보고 싶고, 몽골에서 밤하늘도 봐보고 싶다. 고양이와 강아지를 기르며 고양이는 새벽, 강아지는 바람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싶다. 내가 적었던 시를 묶어 시집도 내고 싶고, 소설책도 내고 싶다.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해보고 싶다. TV에도 출연하고 싶다. 세바시나 TED에서 강연도 해보고 싶다.

 

 

8.

이 모든 꿈을 이루거나 이루려고 노력하며 기획자가 되고, 내가 원하는 만큼 도시에서 살고, 회사생활도 해보고, 다른 사람들이 해본 모든 것을 다 하고 나서 이제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 때 나는 바다로 향할 것이다. 서프보드를 들고.



[김혜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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