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디지털 세대에게 다가온 알츠하이머? [문화 전반]

젊은 세대의 새로운 기억 회로
글 입력 2021.07.01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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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작업을 하다가 빈 물컵을 가지고 정수기로 향했다. 손가락을 따라 흐르는 축축함에 손을 내려다보니 컵이 아닌 탁상거울이 있었다. 이런 일이 잦아지고 있다 보니 가족력을 되돌아보는 것이 인지상정. 그러나 큰 어른들은 대대손손 검고 풍성한 머리숱과 함께 매우 건강한 노년을 보내셨다. ‘치매’라는 질병과 거리가 먼 운 좋은 가정에서 태어난 나에게 아주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일을 겪는 것은 비단 나 뿐만이 아니다. 영츠하이머 (young + Alzheimer)라는 신조어가 보여주듯, 젊은 세대의 기억력 문제는 개인의 현상이 아니다. 2030 세대 중 40% 이상이 스스로 영츠하이머라고 진단내리고 있다.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량은 기억력에 부정적이라는 뉴스들이 쏟아져 나온 지 오래고, 특히 TV를 보면서 스마트폰을 하는 등 멀티태스킹을 곁들이는 경우, 기억 기능 저하에 치명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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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단순히 메모나 다른 사람의 연락처를 스마트폰이 대신 기억해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디지털 환경으로 변화하면서 필요한 뇌의 기능 역시 변했기 때문이다. 정보의 양이 많아지다 보니 짧은 시간 안에 판단을 하는 방식이 필요해졌고, 뇌는 이러한 환경에 적응했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독서가 뇌의 언어, 시각처리 영역이 융합되어 정보의 내용을 기억하는 데에 집중한다면, 웹페이지를 통한 지식 습득은 어떤 키워드를 넣을 것인지, 위키 사전의 하이퍼링크를 클릭할 것인지, 말 것인지와 같은 문제해결 또는 의사결정 영역과 직결된 전전두엽을 사용한다.

 

친구의 전화번호를 외우는 아날로그 방식을 선택하더라도 주변 환경이 변화했기 때문에 기존의 뇌 사용 방식을 유지하기란 매우 힘들다. 단순히 “개인에게 멀티태스킹을 조심하라!”고 말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쇄된 활자와 전자 매체의 텍스트를 같은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견해도 많아지고 있다. 특히 기존 활자를 이용한 책은 이미 작가의 손을 떠난 것이라면, 최근의 웹소설을 포함한 텍스트물은 끊임없이 편집이 가능하다. 누구나 편집을 할 수 있는 위키피디아 형식의 웹페이지가 많아지는 만큼 디지털 텍스트의 변화는 끊임없이 일어나면서 개방성이 주 특징으로 자리잡았다.

 

웹 검색을 하다 보면 처음의 검색어와 다르게 어느새 20km 밖에 나가 서 있는 마우스 커서를 발견할 때가 있다. 집중을 못한 나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디지털 텍스트의 특징이라고 보아야 한다. 수없이 많은 하이퍼링크는 한 단락에서 맥락을 읽어내는 목적이라기보다는 선별적 지식의 획득 과정이다. 게다가 각 링크는 순서를 가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맥락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한 페이지에서 개인에게 필요한 주요 정보는 극히 적은 부분에 불과하고, 개인의 다양성과 목적에 따라 같은 문구도 또다른 하이퍼링크와 연결되어 사용자마다 다른 수용을 할 수 밖에 없다. 결국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은 전자문서를 접한 사람과 같은 내용을 활자인쇄본으로 접한 사람 간의 차이는 더더욱 커지는 것이 당연하다.

 

책의 전체적인 맥락이 중요한 전통적 독서와 흐르는 대로 따라가는 웹 기반 지식 획득을 같은 기준으로 보기 때문에 디지털 텍스트는 저평가받고, 문제점으로 꼬집힌다. 세상은 변하는 데, 사람은 항상성을 유지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얼마나 비약적인 논리인지 모르겠다.

 

오히려 헤일스(Hayles, N. K.)가 제안한 것처럼 디지털 문해력을 향상시켜, 독자가 통제하는 하이퍼 읽기(hyper reading)가 될 수 있도록 지향해야 한다. 스마트폰의 사용량을 마냥 줄일 수만은 없는 시대다. 이미 너무 많은 것이 온라인으로 처리되고 있고, 클라우드를 포함해 더 많은 것들이 웹 기반으로 옮겨지고 있는 실정이다.

 

디지털 환경을 조금씩 제거하자는 디지털 디톡스 또한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것도 맞다. 그러나 AI도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디지털을 멀리할 수 있을까? 디지털 내에서 해결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흐름을 통제할 수 없다면 파도에 올라타 서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멀티태스킹이 지금 내 기억 장치를 망가뜨리고 있기 때문에 멀티태스킹을 당장 그만두는 것은 현실적으로 너무 어렵다. 엄청난 동기부여가 된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디지털 매체는 시간 경험 그 자체를 바꿔버린다고 말하기도 한다. 시공간적 흐름이 우리가 알고 있는 방향으로만 흐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기억 장치가 망가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스템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 우리가 아직 그 시스템을 파악하지 못한 것일 수 있다.

 

인간에게 디지털 환경은 아직 낯설다. 체감하는 것과는 다르게 우리에게 다가온 지 채 얼마 되지 않았다. 무조건적인 질병으로 명명하기보다 젊은 세대가 가지고 있는 기억 회로는 새롭게 정의하는 것이 더 옳은 방향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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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이형, 남수영, 정의진, 차승기, 이경률, 김애령, 김소륜, 박경환, 김소영, 우연희 (2019). 텍스트 테크놀로지 모빌리티. 앨피.


 

[박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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