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존재와 사랑의 영속에 관하여 : A.I(에이아이) [영화]

글 입력 2021.06.29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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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걸작 중 하나로 언급되는 영화 A.I. 눈 익은 이 포스터를 보아 인공지능에 관한 이야기라는 건 알 수 있었지만 어린아이의 실루엣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전혀 몰랐다. 그렇게 사전 정보 하나 없이 무작정 보기 시작한 이 영화는 끝날 때까지 스스로 다양한 질문을 던지도록 만들었다.

 

아이의 시선, 그것도 로봇 아이의 시선을 따라 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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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공생


 

영화 속 미래의 지구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해수면이 상승해 대부분의 도시가 물에 잠겨버렸다. 삶의 터전을 잃고 위기에 처하게 된 사람들은 임신 허가제를 도입해 인구를 조절하기 시작했고, 그 자리를 로봇이 대신하도록 만들었다. 자지도 먹지도 않아 귀중한 자원을 소진하지 않는 로봇이 있어야 사회 경제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로봇들은 '메카'라고 불리며, 인간의 겉모습을 완벽하게 모방하고 인간을 위해 움직인다. 그러던 어느 날 하비 박사가 순수하고 영원한 마음으로 부모를 사랑하는 '감정'을 가진 로봇 아이를 만들 것을 선언한다. 아이를 낳기 위해 허가받길 기다리는 많은 부부들을 위한 새로운 메카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인간을 사랑하도록 만들어진 로봇 아이 '데이빗'은 '사이버트로닉스'의 한 회사 직원 헨리에게 입양되는데 불치병에 걸려 가망이 없을 것 같았던 헨리의 진짜 아들 '마틴'이 기적적으로 돌아오면서 숲에 버려지게 된다. 하지만 이미 엄마를 사랑하게 된 데이빗은 일전 엄마가 읽어주었던 동화 '피노키오' 속 '파란 요정'을 만나 진짜 인간이 되면 엄마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모험을 떠나게 된다.

 

그러던 중 데이빗은 인간들로부터 '로봇축제'에 잡혀가게 되는데 이 장면이 몹시 인상 깊다. 로봇축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종류의 밝고 신나는 축제가 아니라 일종의 로봇 공개 처형식과 같은 쇼다. 로봇과 같은 인공물이 사회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갖은 잔인한 수법을 동원해 로봇을 파괴하고 환호를 지른다.

 

이 장면에서 매우 눈살이 찌푸려지게 된다. 사지가 찢기고, 정체불명의 끓는 화학물질에 녹여버리고, 불태워 박살 내는 일련의 장면들을 통해 인간의 비인간성을 목격하게 된다. 그때 드는 의문은 기계에 불과한 로봇들이 마치 인간인 것처럼 인간의 시점과, 인간의 수법으로 파괴되는 모습이 왜 이렇게까지 불쾌하게 느껴지는가 였다. 로봇이 인간의 외형을 띄고 있어서 인가? 아니면 유모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로봇이 끝까지 어린아이인 데이빗을 향해 웃어주는 모습에서 인간의 사명, 운명, 혹은 책임에 준하는 '생명력'에 대한 착각이 들었기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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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슨이 로봇 축제를 관람하기 위해 모인 수많은 관중 앞에서 데이빗의 존재는 인간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일이라며 데이빗을 향해 돌을 던지라고 한다. 하지만 관중은 정적 끝에 데이빗이 아닌 존슨을 향해 돌을 던지기 시작한다. 방금까지 잔인하게 로봇을 파괴하는 것을 지켜봐 온 이들은 어떤 마음으로 그런 것일까? 데이빗의 외형이 너무 인간을 닮아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데이빗에게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위험 감지 시스템이 너무 실감 나서일까. 인간과 인간을 닮은 로봇을 가르는 가장 핵심적인 차이는 무엇이며 각각에 대한 윤리적 기준은 어떻게 다를까 궁금해진다.

 

영화를 보면서 '인간적'이라고 말하게 되는 인물들은 재밌게도 대부분 메카, 로봇이었다. 자신을 구해줬다는 이유로 끝까지 데이빗과 함께해준 애인대행 로봇 '조'나 진짜 인간이 되어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은 어린아이의 순수한 마음으로 동화 속 요정을 찾아다니는 데이빗이 그렇다.

 

반면 로봇보다 더 무장한 채로 메카를 추적하고, 자신들을 위해 만든 로봇을 다시금 잔인하게 파괴하며, 감정을 가진 로봇을 만들어 사랑을 갈구하도록 만들었지만 끝내 그것에 대한 책임은 회피해버리는 인간은 오히려 '인간적'임과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던 '인간적'인 모습과 '기계적'인 모습이 반전되며 그 언어들의 의미를 다시 되짚어보게 된다.

 

 

 

사랑의 조건


 

데이빗이 그토록 인간이 되고 싶어 했던 이유는 자신이 그토록 사랑하는 엄마에게 사랑받기 위함이었다. 데이빗은 인간으로부터 사랑의 감정을 느끼도록 프로그래밍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데이빗의 사랑이 가짜라고 냉담하게 바라보게 되기란 어려운 일이다. 데이빗은 영화 속에서 가장 순수하고 절대적이고 영원한 사랑을 부모에게 기꺼이 내어주었다.

 

이를 통해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이렇게 절대적인 감정과 의식을 로봇에게 부여한 기술에 대해, 또 그 기술 자체가 가지는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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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데이빗의 엄마에 대한 사랑은 인간의 외로움을 역설하기도 한다. 유한한 존재로서 영원히 마음을 주고받을 수 없는 엄마, 애인에게 폭력을 당하고 애인대행 로봇을 찾는 사람들은 한정된 삶 속에서 너무 쉽게 또 너무 자주 무너지고, 혼자 남고, 고뇌하게 된다. 데이빗의 인생의 목적은 엄마의 사랑 단 하나였지만, 인간에겐 아니었기 때문이다.

 

데이빗은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에 집착한다. 인간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존재이니까, 자신이 둘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인간과 같아져야만 했던 데이빗은 자신을 만들어낸 하비 박사를 찾아갔다가 자신을 똑같이 닮은 로봇을 만나자 이성을 잃고 분노한다.

 

하지만 곧 그곳에서 수많은 '데이빗'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때 데이빗의 시선으로 극한의 공포가 느껴진다. 세상에 파란 요정은 없고, 자신은 수많은 로봇 아이 중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을 뚜렷하게 직시하게 된 데이빗의 깊은 절망과 슬픔을 함께 느끼게 되는 순간, 데이빗이 여느 인간 아이와 다를 것이 없는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동화 그리고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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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동안이나 얼어 있던 데이빗은 외계인들의 도움으로 파란 요정으로부터 선물을 받게 된다. 그토록 바라던 엄마와의 단 하루를 보내는 데이빗의 모습이 너무나도 행복하고 해맑아 보여 감성을 자극한다.

 

데이빗의 시선을 따라 결말에 다다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끝내 동화에 다다랐다고. 보통의 영화들은 동화에서 시작해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는 데 반해 이 영화는 이 작고 슬픈 운명을 가지고 만들어진 로봇 아이를 최선을 다해 위로한다.

 

특별한 존재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인간이 되고 싶었던 데이빗을 보면서 존재에 대해 자문하게 된다. 로봇 축제에서 존슨은 '목적 없는 특별함은 골칫덩이일 뿐'이라고 말하는데, 2000년 후 만난 외계 생명체는 '인간의 존재 자체가 존재 의미의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애초에 누군가를 대체하기 위해 태어나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고 싶은 '데이빗'과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고 싶은 대체 불가능한 사람인 '나'를 동시에 떠올리게 된다. 특별한 존재란 무엇이고, 무엇이 나를 특별하게 만들까? 외계 생명체가 질투했다던 인간적인 것, 바로 그 '영혼'은 현재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어떻게 발현되고 있을까?


*

 

데이빗의 시선을 통해 '세상의 끝'까지 따라가면서 우리는 기술의 발견과 그에 따른 윤리적 명제에 도달하게 되고, 유한한 존재인 우리가 느끼고 기록하는 감정에 대해 낯설게 돌아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이기심 혹은 존재의 한계와 같은 벽을 만나며 가슴을 졸이게 되기도 하지만 결국 데이빗이 원하던 동화가 현실이 되는 장면을 통해 되려 관객인 나 스스로가 위로받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 이야기와 결말이 너무나도 허구적이라는 감상으로 끝이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영원한 사랑'과 같이 허무맹랑해 보일지라도 실은 우리 모두가 갈망하는 동화적, 환상적 가치에 대해 그 주위를 둘러싸는 객관적, 사실적 질문과 성찰을 끊임없이 이어감으로써 미래는 우리가 맞이할 현실을 달리 보여줄 것이다.

 

 

[고민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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