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사람]

글 입력 2021.06.28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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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학기가 끝났다. 따지고 보면 수도 없이 맞은 ‘끝’인데도 이 해방감은 지겹지가 않다. 물론 이제는 더이상 사회로 나갈 준비를 미룰 수 없는 시기가 왔기 때문에 무작정 기뻐하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나는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이 자유시간을 대부분 침대 위에서, 또는 방 안에서 보냈다. 4달여간을 정신없이 달려왔으니 이 정도는 해도 된다며 늘어졌고, 거기에 별다른 죄책감도 없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인생을 너무나 쉽게 들여다볼 수 있는 요즘 세상에서 누군가의 생산적이고 바쁜 하루는 내 무기력을 콕콕 찔러댔다. 그럼에도 바뀌고자 하는 의지는 생기지 않았다. 불안감은 애써 무시했고, 영양가 없는 것들만 대충 소비하다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이번 방학도 그렇게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얼마 전 갑자기 동기에게서 연락이 왔다. 같이 계절학기 듣자. 그는 문예창작과를 복수전공하고 있었는데, 이 과목을 듣지 않으면 졸업을 할 수 없다고 했다. 그가 영업 사원처럼 열렬히 말을 늘어놓기가 무색하게 나는 단숨에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 덕에 이 과목은 간신히 최소 수강 인원을 맞춰서 폐강을 면했다. 나에겐 대학을 다니며 처음으로 수강하는 계절학기다.

 

내 어릴 적 꿈은 작가였다. 글을 읽고 쓰는 게 좋다는 단순한 마음에서 시작된 장래 희망이었다. 만약 글을 쓰는 일을 못 하게 되더라도, 그 언저리에 있고 싶었다. 하지만 문예 창작을 전공하거나 등단을 준비하는 본격적인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나는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작가로 성공할 수 있을까? 내 글이 그렇게 가치 있을까? 뭔가 제대로 도전해보기도 전에 이미 반쯤은 체념한 상태였다. 그때는 현실의 벽에 부딪힌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와 보면 그저 글을 쓸 용기가 모자랐던 것이다.

 

결국 선생님의 제안으로 ‘영어 교사’를 꿈으로 삼았다. 영어를 잘하니까, 그리고 영문학보다는 차라리 영어 교육을 전공하는 게 나으니까.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그게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래, 글을 써서 벌어 먹고살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정말 좋은 교사가 되는 것이 나의 진짜 꿈이었던 거야.

 

물론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성적 탓에 사범대학에 들어갈 수 없어서 대신 영어과에 진학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전히 교사가 되고는 싶었고, 교직 이수를 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문제는 '영어 학습의 원리'보다 '현대미국소설'이 훨씬 재밌었다는 것이다. 난생처음 보는 원서를 읽으면서도 공부가 벅차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꼭 담임 선생님께 잘 보이려 애쓰던 초등학생 시절로 되돌아간 것처럼 교수님의 눈에 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교직 이수는 이미 내 관심 밖이었다. 교직 과목은 수강 신청조차 하지 않았는데, 아쉽지도 않았다.

 

매우 뜻깊은 학기를 보냈지만, 문제는 이제 내 학위가 길을 잃었다는 것이다. 애초에 교사를 목표로 하지 않았다면 영어과에 올 필요가 없었다. 내가 찾은 대안은 관광 마케팅이었다. 꿈과는 관련 없이 빨리 취업이나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강했다. 작가도, 선생님도 결국 내 길이 아니었던 거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고, 어떻게든 안정된 직장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짓눌렀다. 무력감이 찾아왔지만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고작 언어 관련 학위만 하나 가지고서는 이 험난한 세상에서 내 집 마련은커녕 생활비도 벌 수 없을 것이 뻔했다.

 

더 붙잡고 있으면 정말로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일단 수강 신청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수업을 들어봐도 마케팅이나 경영에는 좀처럼 정이 붙지 않았다. 그보다 크고 중요한 문제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굳이 여기에 내 에너지를 써야 하나 하는 생각이 자꾸만 나를 찾아왔다. 흥미가 없으니 공부를 하고 싶지 않았고, 억지로 공부를 한다고 해도 성적이 잘 나올 리 없었다. 내 대학 생활은 (문학 수업과 동아리를 제외하면) 자책과 실망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2019년, 2020년, 그리고 2021년의 절반을 애정 없는 공부에 매달렸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심지어 내가 선택했지만, 여전히 원하지 않는 길이었다. 그러다 운 좋게 어느 회사의 인턴 면접을 보게 되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한 가지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내가 회사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내가 얼마나 뛰어난 ‘인재’인지 어필하는 문장은 달달 외웠어도 갑자기 내 인생의 목표를 물으니 머리가 새하얘졌다. 괜찮은 답이 떠오르지 않아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대충 지어내야 했고, 당연히 결과는 탈락이었다.

 

처음에는 속이 상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는 그 질문 덕분에 나는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내가 진정으로 살고 싶은 삶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시간을 가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이 되어서야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은 너무 늦은 걸까? 하지만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 이건 내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내 친구, 내 가족의 이야기기도 하다.

 

고등학교, 대학교, 취직까지 이어진 거대한 흐름에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노력이 보여야 하고, 그 와중에 독특함도 있어야 한다.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나는 다른 모두가 그렇게 한다는 것을 이유로 거기에 순응했다. 그렇게 하는 쪽이 훨씬 간편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게 개인의 책임이며, 시스템의 잘못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학생이 보편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매우 한정되어 있는데도, 어느 날 갑자기 적성과 흥미에 딱 맞는 무언가를 찾아내라는 요구는 합리적이지 않다. 하지만 개인적인 선택을 사회와 시스템의 탓으로 돌리기에 나는 이미 지나치게 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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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다시 계절학기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미 채워야 할 학점은 다 채웠는데도 굳이 이 수업을 들은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당장 작년의 나였다면 망설였을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업에 도움이 안된다고 해도, 학위가 나오지 않아도 일단 해보고 싶은 걸 잔뜩 해보는 게 먼저 아닌가? 문예 창작과 수업은 내 기대보다 훨씬 재미있고,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생산적인'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방학만 되면 죽어도 일으켜지지 않던 몸이 오히려 학기 중보다 가볍게 느껴진다. 계절학기의 힘인지, 내 마음가짐의 변화인지는 모르겠다.

 

먼 길을 돌고 돌아 작가를 꿈꿨던 어린 시절의 나로 다시 돌아온 셈이다. 이렇게 재미있는 것을 모르고 살았던 것이 못내 아쉽지만, 그 또한 경험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정말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실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정말로 열심히 글을 쓰다 보면 작가가 될 수 있을 것도 같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상관없다. 내 장래 희망과 내가 정말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는 다르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에게도 물어보고 싶다.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세요?

 

 

[이고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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