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글을 써서 치킨이라도 사 먹는 사람 되기

글 입력 2021.06.28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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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의 시작은 신문지 한 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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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일기장들

 

 

어린 시절의 나는 몸이 허약했다. 우리 엄마 아빠는 그런 나를 건강하게만 키우고 싶어하는 분들이었고, 내 빈약한 수학 실력 따위에는 별 관심 없었다. 단 하나, 부모님이 나에게 꼭 요구하는 숙제가 있었는데, 그게 일기 쓰기였다. 대단한 이유는 아니었던 것 같다. 나중에 보면 너 재미있을걸? 그런 정도 이유였을 것이다.

 

덕분에 담임 선생님이 일기검사를 하지 않는 반에서도 매일같이 일기를 썼다. 나는 책을 읽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매일 똑같은 형식을 지겨워했다. 일기는 매일 달라졌다. 어느 날은 그림을 그리고, 어느 날은 만화로 그리고, 시를 썼다가, 노래 가사도 지었다가, 독후감도 썼다가 했다.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고는 뜬금없이 영어로도 일기를 쓰는 패기를 보이기도 했다.

 

문제의 그 날은 책을 읽고 시를 일기장에 남긴 날이었다. 사실은 빨리 쓰고 놀고 싶은 마음에 선택한 길이었겠지만, 막상 쓰고 나니 감상이 넘쳤던 모양이다. 내친김에 안방으로 달려가 방금 쓴 시를 들이밀었다. 그런데 그게 엄마 아빠 눈에 꼭 든 것이었다. 아빠는 신이 나서 내 글을 컴퓨터로 쳐서 신문사에 보냈다. 그 당시에는 종이 신문 한 귀퉁이에 아이들이 쓴 시를 실어주는 코너가 있었다. 우리 가족은 잠깐 흥분했다가 금세 그 일을 잊어버렸다. 내 시가 실린 신문지는 날짜 지난 신문을 버리려던 아버지에 의해 극적으로 발견되었다.

 

나는 나보다 더 신난 부모님 때문에 마음이 붕붕 떴다. 엄마는 신문지 조각을 정성스레 잘라 코팅까지 해서 액자에 넣었고, 아빠는 복사한 신문을 지갑에 넣고 다녔다. 그때부터 나는 언젠가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 나잇대는 그런 시절이라고 생각한다. 태권도 사범님께 칭찬을 받으면 태권도 선수가 되고 싶고, 과학 시간에 우쭐한 일을 겪으면 과학자가 되고 싶은. 나는 글로 받은 첫 칭찬이 너무 달콤해서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 결심은 몇 년을 내리 이어졌다.

 

 

 

내 글쓰기는 갑자기 멈췄다.



내 꿈은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물론 작가가 되라고 누가 시킨 건 절대 아니었다. 대신 공부와 상관없는 일이라도 맘껏 굴러다닐 수 있었다. 글쓰기 수업도 신나게 다녔다. 그런 데서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칭찬도 실컷 받았다.

 

조금 특이하게 미술학원도 오래 다녔다. 교복을 입은 사람은 하나도 드나들지 않던 취미 미술학원으로 다녔다. 엄마는 내가 나중에 혹시라도 책을 쓰면, 삽화를 직접 그리면 좋을 것 같아서 보냈다고 했다. 그 설명이 충분치 않았는지, 선생님은 몇 번이고 나에게 입시준비를 하는 거 아닌 게 맞는지 물어왔다. 낯선 설명과 심하게 어정쩡한 내 실력 때문에 선생님도 혼란이 많았을 것이다. 나는 내가 삽화를 그리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렴 재밌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중학교 때까진 그렇게 글도 쓰고 그림도 그렸다. 책도 읽었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가서 모든 게 갑자기 멈췄다. 대입을 위해 공부를 손에 잡으며 나는 글쓰기를 놔 버렸다. 잠깐 사이에 글 쓰는 실력이 형편없어지는 건 내 눈에도 보였다. 오래간만에 나간 백일장에는 번번이 낙방했다. 책도 안 읽었다. 어휘력도 형편없어졌다.

 

내 글은 재미가 없어졌다. 나는 갑자기 자신이 없어져서 당황스러웠다. 머릿속의 나는 여전히 엄마 아빠 앞에서 상장을 들고 우쭐대던 초등학생이었다. 머릿속 이미지와 현실의 차이가 싫어서 금세 글쓰기에 흥미를 잃었다. 대신 또 다른 칭찬 거리를 찾아 공부나 열심히 했다. 고작 3년 달달 외우고 말 지식을 머리에 욱여넣으며 나는 글과는 아예 관련 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한 건, ‘용기’씩이나 필요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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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우던 로즈메리 왓슨

 

 

내가 글과 책에 다시 취미를 붙이기 시작한 건, 대학에 들어와서였다. 크게 두 가지 계기가 있었다. 첫 번째가 교양 문학수업이었다. 우리 문학 교수님은 특이한 수업 스타일과 시험 방식으로 유명한 교수님이셨는데, 예를 들면 매 학기 초반에 로즈메리 화분을 학생 수만큼 사와 나눠주셨다. 화분에 이름을 붙이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화분을 살리면 가산점을 주시겠다고 했다. 내 화분 이름은 왓슨이었고, 그 친구는 학기 말 즈음에 병으로 죽었다. 나는 화분을 살리겠다고 고군분투를 했지만 별도리가 없었고, 언젠가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한 시간 동안 죽은 화분에 대해 한탄해서 놀림감이 되었다.

 

나는 그 수업을 정말 좋아했다. 교수님의 시험은 언제나 자유분량이었다. 중간고사는 문제를 받아 집에서 쓰는 형식으로 여러 편의 글을 써야 했다. 첫 문제로, 나는 내 재수생 시절에 대한 글을 썼다. 시험 기간, 앉은 자리에서 쓴 글은 순식간에 6장을 넘어섰다. 열 몇 페이지가 다 되어가는 시험지를 묶어 내면서 내가 이렇게 할 말이 많았다는 걸 깨달았다. 교수님은 내 과잉된 감정과 그로 인한 비문들을 지적하셨으나, 내 글을 흥미롭게 읽어 주셨다.

 

그 시기 나는 다시 책과 글에 흥미를 붙였다. 교내 근로를 시작하면서 생긴 비는 시간에 책을 한 권씩 들고 다니며 읽었다. 글도 썼다. 오랫동안 만들어진 채 방치된 블로그에 비공개로 몇 개씩 올리기 시작했다. 비공개로 쓰이는 글은 자연스럽게 게을러졌다. 책도 글도 점점 뜸해졌다.

 

내가 정말 다시 글을 쓰게 되기까지,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이 읽는 글을 쓰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계기가 된 건 아트인사이트 에디터 생활이었다. 이걸 시작하는 건, 나에겐 용기까지 필요한 일이었다. 덕분에 한 차례 지원을 미뤘다. 비어 있는 지원서를 컴퓨터 어디엔가 내버려 두고, 거의 반년이 지나서야 지원할 용기를 냈다. 그때도 시험 기간이었다. 시험공부를 끝내고 밤마다 조금씩 지원서를 써 나갔다. 지원서가 신나게 불어나고 나서야 겨우 지원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 다행히도 에디터에 합격했다.

 

뭔가 되었다는 기쁨도 잠시, 마감일이 다가올 때마다 내 글쓰기는 점점 전쟁이 되어갔다. 일주일에 한 편씩 글을 썼다. 지금 쓰는 걸 많은 사람이 읽는다고 생각하면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기분이었다. 비웃음당할 것 같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어앉았다. 글감, 문장, 더 나아가지 않는 진도랑 씨름하는 날이 많았다. 그냥 재밌게 글을 쓸 때도 있었지만, 머리를 싸매고 새벽까지 고군분투할 때도 잦았다. 나는 쓸데없이 스스로 너무 많은 부담감을 지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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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작년 11월부터의 일이었다. 나는 반년이 넘는 시간 동안 터무니없는 글을 많이도 써냈다. 이걸 누굴 보여준다는 게 너무 싫은데 마감은 다가와서, 눈 질끈 감고 제출한 글도 많았다. 그런 글은 다시 읽기도 겁이 났다. 사실은 무책임하게도, 써 놓고 나도 읽지 않는 글이 수두룩하다.

 

스스로 몇 번을 심하게 실망하고 나서야, 내 글쓰기는 조금씩 평화로워졌다. 나는 이제 내 안의 글쓰기 천재 박경원 같은 건 믿지 않는다. 글솜씨는 형편없지만, 할 말은 많은 내가 노트북 앞에 앉아있을 뿐이다. 엄살은 그렇게 떨었지만 나는 글 한 편씩 써 나가는 게 좋았다. 조금 괜찮은 걸 썼다 싶을 땐 혼자 그렇게 뿌듯했다. 이젠 누가 읽고 칭찬해주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글 쓰는 게 재밌으니까. 사실은 이제야 정말 글쓰기를 좋아하게 된 게 아닐까 싶다.

 

내 꿈은 계속 글을 쓰는 거다. 마지막 학기를 끝내고 이제 막 백수가 되어가는 내가 무슨 일을 하게 될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놓지 않고 꾸준히 글을 쓰는 거다. 거창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꿈이라고 자부한다. 오래오래 지켜내면 틀림없이 뿌듯할 것이다. 조금 욕심을 낸다면, 글로 아주 적은 돈이라도 벌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돈이 큰 문제는 아니다. 그저 글만 꾸준히 쓰는 밋밋한 꿈에 세워볼 수 있는 작은 목표였다. 액수는 당연히 중요치도 않다. 그래서 내 꿈은, 오래오래 글을 써서 치킨이라도 사 먹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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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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