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예술을 묻자 그들이 답하길, 직업으로서의 예술가: 고백과 자각 [도서]

글 입력 2021.06.28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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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꿈꾸고,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은 많은데 예술가를 ‘직업’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생각보다 적다. 돈을 비롯한 물질에 목맬 수밖에 없는 요즘에도 예술은 은연 중에 논외로 치부하곤 한다.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예술가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자.

 

오디션에 선발된 극소수에게만 허락된 무대 위, 인물을 더 밝게 비추는 조명, 별난 사건을 겪는 캐릭터 혹은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사람.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 환호, 박수, 열띤 함성까지. 그 사람의 손짓, 눈길, 말이 닿는 곳곳마다 빛난다.


온통 반짝이는 무대의 인위적인 요소를 모두 거두어 내고, 이름 앞에 ‘예술을 업으로 삼는’만 붙인다. 그러자 숨겨진 이야기가 쏟아진다. 이 책은 그 이야기를 26명에게서 얻어내고, 한데 모아 인터뷰 형식으로 엮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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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를 쭉 훑어보니 예술가의 직업이 크게 둘로 나누어진다. 배우와 음악가. 후자는 은근 낯선 명칭이다. 가수면 가수, 작곡가면 작곡가, 작사가면 작사가 아니던가. 세분화하지 않았기에 독자는 그들을 ‘예술가’라는 커다란 틀로 바라본다. 가사를 짓고, 뮤지컬을 연기하고, 성악 하는 개인이 아니라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비슷한 일을 해서일까. 저마다 목표나 원동력, 기준점은 다르더라도 핵심은 닮았다. 하는 일이 즐겁고, 잘하고 싶고, 그래서 열심히 하고, 쉽게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 예술가만의 고충은 아니리라. 살다 보면 한 번쯤 빠지는 딜레마다. 다행인 건 헤어나올 수 없는 어려움이 아니란 점이다.

 

생각하고, 알아가고, 말하고, 예술로 꺼내기. 일련의 과정을 통해 저마다 어려움을 극복했거나 극복하는 중이다. 이제 책의 맛보기이자 핵심가치를 하나 꺼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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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모르는 사람, 얼굴만 알던 사람, 이름만 알던 사람의 이야기를 읽어본 적은 처음이다. 말투, 어조, 목소리, 제스처 등 눈에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지만, 페이지를 넘길수록 인터뷰 모습을 머릿속으로 상상할 수 있었다. 그리보이기 시작했다. 일 얘기 속에 담긴 가치관, 생각, 고민, 노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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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배우 박준면의 인터뷰 끝자락이다. 가장 먼저 인터뷰에 응한 예술가이자 책에서 첫 번째를 장식한 인물. 이런 생각이 불쑥 들지도 모르겠다. 뒤에 나오는 아이돌 출신을 앞에 끌어다 놨으면 이목을 끌기 좋지 않겠느냐고.

 

나라고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제일 먼저 넣어 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저자는 제일 먼저 인터뷰를 수락한 사람이라서 제일 처음 혹은 마지막에 배치할 생각이라고 인터뷰 중에 밝혔지만, 정말 의리 때문일까. 박준면 배우가 편집 방향대로 하라고 말한 것을 그대로 수록하였으니까, 이 책의 편집 방향과도 맞는다는 의미일 거다.


이쯤에서 책 구성에 대해 이야기를 해본다. 새로운 인물의 이름과 사진이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인터뷰가 이어지고, 끝으로 인터뷰어의 사족이 붙는다. 인터뷰이에 대한 개인적 생각을 드러내는 대목. 어찌 보면 가장 사심이 담긴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박준면 배우의 인터뷰는 별다른 사족이 없었다. 그의 행동을 묘사한 게 전부였다. 이상하게도 저 두 문장을 읽자 소설 같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박준면이라는 사람이 지닌 매력이 느껴졌다.


나는 이야기가 담긴 시각예술에서 설명이 많은 걸 싫어한다. 촘촘한 구성으로 전개하기 어려워서 혹은 독자의 이해를 돕겠다는 오만한 생각으로 인물의 입을 빌려 이러쿵저러쿵 문제 풀이하는 상황 말이다. 반면, 인물의 감정이, 과거가, 삶이 느껴지는 한마디의 말과 한 가지의 행동을 볼 때면 그 장면이 뇌리에 박힌다. 영양제를 건네는 저 행동도 마찬가지였다. 그다음 인물을 살펴보게 했고, 페이지를 계속 넘겨 인터뷰 끝자락에 담긴 익숙한 예술가들을 만나도록 이끌었다. 이게 인터뷰가 가진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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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을 읽을 때만 해도 ‘직업으로서의 예술가’가 중요한 키워드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인터뷰집을 읽는 내내 이상했다. 예술가에게 예술을 물었는데 자기 자신에 대한 답을 돌려주었다. 누군가는 이렇게까지 말한다. 예술을 하려면 나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고.

 

이런 면에서 ‘고백과 자각’이라는 제목이 참 잘 어울렸다.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는 무엇을 하든 어렵기만 하다. 텐션이 떨어졌을 때 어떤 식으로 대처하고, 자신이 어떤 성향이고, 무엇과 잘 맞고 맞지 않음을 분명하게 말할 줄 알아야 폭넓은 세상에서 나의 길을 만들 수 있다.


개중엔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길을 다지는 건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이십 년 남짓 동안 하나의 일을 하면 당연히 습득한다고. 세상에 당연한 게 얼마나 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생기지 않듯이, 계기나 이유 없는 깨달음은 없다. 무언가를 바탕으로 무언가가 탄생한다. 즉 고심하고, 부딪히고, 깨지는 시간이 쌓여 지금에 이른 셈이다. 예술이 삶과 맞닿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그 감정에서 벗어나려고 굉장히 노력을 많이 했던 것 같거든요. 그래서 메모를 아주 많이 했어요. 내가 그런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이유에 대해서 여기저기 써놓는 거죠.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행동 자체도 스스로에게 일종의 강요를 하는 느낌이더라고요. 그때부터 감정이라는 것을 그대로 놔두기 시작했어요. 내가 나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어떤 게 나를 위하는 일일지 고민하면서요.

 

25ㅡ배우 겸 음악가

안희연(EXID 하니)

 

 

간만에 부담 없이 텍스트를 읽었다. 중년 여성 예술가가 말하는 생존법을 들으며 만연한 선입견과 차별을 새삼스럽게 깨닫고, 솔직하고 담대한 성격의 예술가를 보면서 그의 예술도 똑 닮았음을 느꼈다. 누군가에게는 가볍고 재미난 인터뷰집, 다른 누군가에겐 의외로 묵직하고 어려운 인터뷰집, 또 다른 누군가는 무던하고 삼삼한 인터뷰집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어떤 쪽의 감상이든 진입장벽이 없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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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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