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울타리 밖으로 넘어온, 직업으로서의 예술가: 열정과 통찰

그들의 열정과 통찰
글 입력 2021.06.26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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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가 아니라 직업으로 막연히 글을 쓰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가 떠오른다. 그때의 나는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달라진 것은 하나가 있다. 지금도 글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매번 결심하고 목표로 삼아, 매일 매일 글을 쓰고 있다. 책을 놓았고, 펜도 놓았으며, 또 서비스업에서 하여 나는 노트북을 업무와 유흥 외 붙잡은 적도 없다. 노트북을 나의 발전으로 붙잡고 있는 시간이 매우 오랜만이었다.

 

짧다면 짧지만, 또 길다면 긴, 5년 공백 이후 탄생한 글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졸업 후, 만져 본 적도 없었던 글은 한참 취미로 달궈질 때보다 형편없었다. 무엇보다 항상 솟아 넘치던 영감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아직도 예전만큼 무언가를 떠올리지 못한다. 나이가 그저 들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나이가 들었다고 틀에 나를 가둬둔 것일 수도 있고, 혹은 그냥 '감'이 떨어졌을 수도 있다. 다른 건 몰라도 마지막 후자는 아니길 빈다.

 

맥락을 잡기도 어렵고, 나는 이렇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어떻게 깔끔하고 정리된 문장으로 전달하는지, 또 퇴고 습관에 품을 들이기가 어려웠다. 나는 빨리 이것을 끝내고 다른 일로 넘어가야 하는데, 고쳐도 고쳐도 자꾸 눈에 잘못된 점이 밟힌다. 근무에서 사용하지 않는 글자를 쓰는 것 자체가 실로 오랜만이라, 기억이 날까 말까 한 어휘력도 문제였다.

 

그러다 문득 궁금했다. 내가 목표로 하는 이것을 직업으로 가진 이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이게 맞다 저것이 맞다 제시도 해줄 수 없는 이 길을 어떻게 걸어가고 있을까? 분명 혼자 이겨내야 할 부분이 확연히 보이는데, 망망대해 같은 이 과정을 혼자 어떻게 이겨냈을까? 어렴풋이 보이지도 않는 형체를 쫓아 뛰어가기도, 걷기도 하면서 무섭지 않았을까? 문득 뒤돌아봤을 때 아무것도 남지 않아서, 혹은 뒤돌았더니 뛰어왔던 길조차 보이지 않을 때, 앞을 보니 같이 뛰어가던 친구들은 너무 멀리 뛰어가 뒷모습의 점조차 보이지 않을 때, 그들은 어떻게 버텼을까? 직업인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었다.

 


 

직업으로서의 예술가

열정과 통찰


 

도서 <직업으로서의 예술가>는 저자 박희아의 인터뷰집으로 총 2권 중 한 권의 책에 해당하며, 26인의 예술가와 나눈 담백한 대화를 기록했다. 본인이 읽은 도서는 '열정과 통찰'에 해당하며 나머지 권은 '고백과 자각'이라는 서브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예술가라는 포괄적인 행위를 담은 직업군이 말하는 고민과 그들이 겪어온 지난 나날들을 단편적으로 접할 기회를 얻었다. 예술가에게 맞는 작가의 각기 다른 수많은 질문과 질문에 정성을 담은 답변까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을 어떻게 다루고 여기는지 관한 기준과 생각들을 소화하기는 꽤 시간이 걸렸다. 더군다나 책을 한 번에 진득하니 읽지 못하고 몇십 분씩 쪼개어 읽게 됐는데, 오히려 이 부분이 읽는 속도와 집중을 떨어트린 원인도 되지만, 도리어 곱씹어볼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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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예술은 무엇인가? 소설가 정세랑<보건 교사 안은영, 시선으로부터 등 작가>은 지구에서 예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답변으로 말한다. 한 사람이 자기 자신을 필터로 삼아서 세계의 정보를 걸러낸 결과물이요(p.110) 나는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재능과 꿈으로 넘쳐났던 10대의 필자라면, 아마 내가 재밌게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럼 20대 후반을 바라보는 지금은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선뜻 답변이 나오지 않았다. 문득 떠오르는 답이 있어도 이를 예쁘고, 깔끔하고 전달력 좋게 정리할 마땅한 단어와 문장이 떠오르지 않는다. 예술과 본인의 연관성은 내가 좋아하고, 예뻐하는 순간부터 출발한다. 하나의 작품을 보고 마음속에 몽글몽글 피어나는 것을 또렷하게 만들기 위해 감상을 분류하고 정제한다. 그리고 정제한 감상 속에서 말하고 싶은 지점을 찾아 표현한다.

 

 

 

소설가

김금희, 정세랑, 장강명 작가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한 지 4개월이 돼가는 시점에 다다라야 필자는 그나마 말하고 싶은 주제를 피력할 힘을 되찾았다. 그 외의 것들은 점차 나아지고 있지 자신 있게 말하기 어렵다. 아마 글만 쓰는 게 아니라 이것저것 동시에 진행할 것들이 많은 본인에게 들일 수 있는 품은 한정됐기에 결과물이 온전하지 않을 수 있고 이를 평가하고 소비하는 이에게 좋지 않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지만, 이런 평가를 직접 견디며 성장하는 길로 택했다. 내가 가진 리소스를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수도 있지만, 현재 내가 고안한 방법은 지금과 같다. 내가 정한 속도와 온도로 마주한 세상의 농도 속에서 차분히 열심히 살아가는 것. 이렇다 보니 다양한 삶의 방식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또 글을 쓰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다 보니 시선은 직업 중에도 소설가로 향했다. 해당권은 총 3명이 집필됐으며, 소설가 김금희, 정세랑 장강명에 대한 인터뷰에 더 집중했다. 적절한 배치로 느껴질 만큼 각자 개성이 강했다. 식견이 짧은 내가 함부로 무어라 남길 수는 없지만, 김금희 작가에게선 따뜻한 계열의 차분한 색상이, 정세랑 작가에게선 연보라색으로 빛나는 파스텔 색채감, 마지막 장강명 작가에게서는 선명하면서 차가운 계열의 차분함이 느껴졌다.

 

그들은 자기만의 기준이 있었다. 그 기준은 수많은 경험을 통해 방향을 잡았고, 갈고 닦아 하나의 갈래를 만들었다. 기준을 통해 탄생한 작품들은 각기 다른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 작가 본인을 담을 수 있었다.

 

 

언제부터 그런 윤리와 가치를 이야기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셨던 건가요?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런 생각은 들었던 것 같아요. 글을 시작할 때, 작품을 쓰기 시작할 때, 저는 예술가로서 제가 가지고 있는 어떤 미적 가치관 같은 것을 사람들한테 전달하고 싶다는 충동보다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한테 빛을 쬐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 사람들을 기록해주고 싶었던 거예요.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글 쓰는 능력이라면 그 능력으로 빛을 쬐어야 하는 인물들을 기록해서 많은 사람들한테 알리고 싶다는 충동. 여기에 좀 더 가까웠던 것 같아요.

 

소설가 김금희 65p

 

 

그래서 글을 쓰시는 분일 수도 있죠.

 

맞아요, 시간 관리를 잘해야 글 쓸 시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활동을 거의 못 하는 것도 있어요. 그저 오래오래 생각해서 글을 쓰는 게 좋아요. 사실 작가 중에는 달변이신 분들도 많거든요? 즉흥적으로 시작해도 완벽할 정도로 매끄럽게 끝맺는 분들이 부러워요. 저 같은 경우에는 그보다 미리 생각해둔 게 있어야 주섬주섬 대답할 수 있는 타입인 것 같아요. 물론 노출되는 자리를 지나치게 핗면 그것도 할 몫을 하지 않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를 가장 앞에 두려고 하죠.

 

소설가 정세랑 104p

 

 

아, 성격이 급한 편이시군요.

 

데뷔를 30대 후반에 해서 성과를 좀 빨리 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거든요. 무엇보다 이제 40대 중반인데, 저의 필력이 아마 60대 중반쯤이 절정 아니겠나 그런 생각을 해요. 거기까지 다다른다고 생각할 때, 1년에 책을 한 권씩 내도 스무 권 정도 쓸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시간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죠. 좀 부지런히, 게으름 피우지 말고 써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소설가 장강명 18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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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를 통해 작가들의 다양한 가치관과 배경을 알 수 있다. 흔히 생각할 법한 당연한 루트가 아니라, 다른 인생을 살다 어떻게 작가가 됐는지, 그로 인해 지금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 등을 인터뷰를 통해 느낄 수 있다. 나는 질문과 답변을 읽고 어떠한 내가 정한 기준에 따라 무슨 사람이 될 것이냐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 내가 쓰는 글은 무엇을 위한 거지?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내용을 담기 위한 하나의 수단인가? 내 글을 읽는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것이 뭐지? 등등 글 쓰는 나의 정체성에 대한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을 알았다.

 

생각해보니 막상 일단 써봐서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으로 좀 더 구체적인 글쟁이가 되는 이유에 대해 하나도 답변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했다. 아마 이 부분은 글을 써가며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다. 내가 어떤 글을 잘 쓸 수 있을지는 해봐야 아는 부분이고 한두 번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많은 시도를 통해 확연히 알 수 있다.

 

아마 이 문제는 절대 풀리지 않는 숙제와도 같다고 생각한다. 예술이란 정답이 없다. 정답이 없어 누구나 지칭할 수 있고 또 아무나 잘할 수 없으며, 누구나 성공할 수 없다. 태어났기에 즐길 수 있는 우리들의 전유물이고 자연스럽게 예술성을 쫓아가는 본능을 따라 나타나는 결과다. 같은 업종에 종사함에도 모두 다른 에너지와 아우라를 가진 것처럼 몇십 년 동안 작품을 한 사람도 본인의 잠재력을 모두 찾아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코로나 팬데믹을 맞아 많은 변화를 겪은 문화예술 분야 종사자들의 이야기는 앞으로 우리가 절대 정체돼서는 안 된다는 부분을 콕 집는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필자도 흐름을 달리하고 있다. 뾰족한 방향을 짚어 더욱더 날카로운 글을 쓰고 싶다. 날카롭기만 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감상적으로 파고들어 누군가의 마음속을 파고들 줄 아는 그런 글을 만들고 싶다. 날카롭다는 것이 차가운 쇠 재질의한 것으로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물줄기가 어느 모양이나 갖출 수 있는 것처럼 가볍지만 무겁게 적실 수 있는 감성과 충분히 전달하고 남는 뾰족한 통찰이 담긴 글로 당신들과 인사하고 싶다. 그렇기 위해 필자가 할 수 있는 모든 리소스를 활용해본다. 독서는 그 리소스 중 하나의 방법이다. 방법이고 본인의 부족한 경험을 채울 수 있는 통로다. 내가 접할 수 없는 그들의 커뮤니티를 발굴해 한 곳에 모아 울타리를 넘어와 준 박희아 작가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며 이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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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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