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양치를 하다가 문득 [사람]

글 입력 2021.06.26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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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모두가 잠든 어두컴컴하고 고요한 새벽, 한숨과 함께 끝내 키보드에서 손을 떼어 냈다. 동시에 처절하게 붙어있던 엉덩이도 지키던 자리를 용기 있게 떠났다. 그리고선 단번에 화장실로 직행했다.

 

가자마자 제일 먼저 집어 든 것은 이번에 새로 산 치약이었다. 왼손에는 분홍색 칫솔을, 오른손에는 치약을 들어 딱 거품이 날 정도만큼 콩알만 하게 짜냈다. 선홍빛을 띄는 그 작은 콩알이 칫솔 위에서 위태로운 몸짓으로 떨어지려는 것을 그보다 더 빠른 손놀림으로 막아냈다. 그렇게 선홍빛 콩알과 핑크색 칫솔이 한 입만에 사라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소리.

 

치카치카.

 

 

toothpaste.jpg

 

 

칫솔을 위에서 아래로 또는 아래엣 위로, 잇몸에서부터 치아로 쓸어내리듯 바삐 움직이며 구석구석 닦아낸다. 동시에 누구에게 자랑이라도 하듯 입을 과하게 벌리고 닫는 행동을 반복한다. 앞니에서는 둥글게 원을 그리고, 마지막에는 메롱 하듯 쭉 내뺀 혀를 빗자루로 쓸 듯 청소하는 일도 빼먹지 않는다.

 

그렇게 늘 하던 습관대로 손을 움직이다 보면 양치질은 끝이 난다. 어렸을 적 처음 올바른 양치 법을 배울 때에는 제대로 된 방법을 익혀야 했기 때문에 오로지 그 행동에만 집중했다면, 이제는 몸에 밴 자연스러운 행동이라 동시에 다른 일들을 할 수 있다.

 

 

 

첫째, 거울에 비친 얼굴을 본다.



양치를 시작하면 바로 거울을 본다. 엄마가 어찌나 매일 깨끗이 청소를 하는지, 매번 보는 화장실 거울은 때가 묻을 새도 없이 언제나 투명하다. 그래서 싫을 때가 있다. 예를 들면, 10cm나 떨어진 거리에서도 모공이 낱낱이 다 보일 때, 그래서 괜히 더 거울 쪽으로 몸을 기울여 얼굴을 자세히 볼 때가 있다. 그때면 유독 그 투명한 거울이 싫었다. 정확히 말하면, 나도 모르는 새에 초췌해진 얼굴을 거울을 통해 너무 적나라하게 마주하면 느끼는 부끄러움이 컸다.

 

스트레스만 쌓이면 피부는 거짓말도 못하게 거칠어질 뿐만 아니라 울긋불긋 반갑지 않은 좁쌀 여드름들이 놀리듯 작게도 올라와 있다.  게다가 하루 종일 앉아서 작업하느라 피가 안 통했던 건지 얼굴은 누렇게 떠 있고 다크서클은 안경 밑까지 축 내려앉아 있다. 그 안에 속눈썹은 어찌나 길던지 주위에 있던 먼지들이 드넓은 마당 마루인줄 착각하고선 그 위에 폭 안착해 있다.

 

그 모습을 한데 투명한 거울에 비추어 보니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나 자신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는 생각에, 괜히 나 자신이 더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내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어휴 애가 왜 이러냐’ 나를 향한 작은 질책인 동시에 ‘앞으로는 이러지 말자’와 같은 스스로에 대한 큰 다짐이었다.

 

 

 

둘째, 생각을 한다.



칫솔질을 격하게 자주 할수록 치약은 제 역할을 다하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살짝 말캉했던 치약이 자취를 감추면서 거품으로 변한다.

 

입안에서 거품이 빠르게 생성되는 동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며 생각을 한다. 찰나의 순간, 아주 빠르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하루 종일 걱정하고 불안해했던 일들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에 대해 꼬리를 물고 또 물며 생각하다 오늘 하루가 마치 파노라마처럼 아주 짧고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마치 모든 장면과 생각이 눈앞에 스크린샷으로 보이듯 머릿속에서 그려진다. 그러다 내일 예정된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행복한 모습의 나를 떠올리기도 한다. 이 모든 생각이 2분 안에 벌어졌다.

 

내가 양치를 하는 때는 생각은 많은데 풀리지는 않고 미련만 남아서 자리만 붙들고 있을 때이다. 그래서 아주 잠깐 미련한 움직임을 끊어내기 위해 그 순간 발휘해낸 가장 역동적이면서도 간단한 움직임이 '양치'였다. 3분이라는 시간이 아주 짧지만 잠깐 생각의 틈을 주고 그 사이에 혹시나 생각이 또 흐른다면 다시 이어나가는 것이다.

 

 

 

셋째, 마음을 정돈한다.



2분이 지났다. 이제 입안을 가득 메운 거품을 보내줄 차례다. 물을 후루룩 머금고선 마치 개구리가 볼을 부풀렸다 수축하는 것처럼 입안에서 정신없이 거품 섞인 물이 나뒹굴기를 반복한다. 그렇게 뱉어낸 물에서 거품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몇 번을 내뱉는다.

 

그러는 동안 가두어 놓았던 생각이 흐르기 시작한다. 운이 좋으면 양치를 하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당장 해결되는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저 마음이 안정되고 후련해짐을 느낀다. 마치 입안 구석구석 숨겨진 찌꺼기를 내뱉음과 동시에 머릿속에 끼어 있던 불필요한 잡념들을 털어벌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몸을 다른 공간에 이동시키고, 다른 행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새로운 자극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나의 몸은 양치하는 행위를 통해 또 다른 전환의 계기를 맞이한다. 이는 생각의 전환이 될 수도, 기분의 전환이 될 수도 있다.

 

다시 한번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확인한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얼굴이다. 조명 때문인지 양치의 효과인지 이전보다 환해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이와 얼굴을 동시에 거울을 향해 자랑스럽게 내보인다. 그리고선 뿌듯한 마음으로 화장실을 나선다. 마지막으로 입안을 가득 메우는 치약의 화하고 향긋한 냄새를 모아 다시 한번 밖으로 숨을 내뱉는다.

 

후. 양치 끝.

 

 

[신송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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