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모두가 뜨거웠던 그때의 이야기 [영화]

글 입력 2021.06.24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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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뜨거웠던 때를 기억해보자면 월드컵과 올림픽처럼 모든 국민이 단합되던 순간이 있다. 그리고 한 번 더 기억을 되짚어 보면, 몇 년 전 광화문에서의 촛불이 선명히 떠오른다. 지방에 사는지라 현장에는 없었지만, 티브이로 그 광경을 목격하던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아직 25년밖에 살지 않은 내 기억 속에서 모두가 뜨거웠던 때는 몇 안 되는 장면이지만, 역사 속에서의 그 순간들은 너무도 많다. 그중 내가 태어나기 10년 전인 1987년도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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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다룬 영화이다. 하숙집에서 불법체포 된 서울대생 박종철 군은 경찰에게 구타와 고문을 당하여 하룻밤 만에 사망한다. 윗선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늘 하던 대로 은폐하려 하지만 뜻하지 않는 장애물을 만나게 되고, 결국 사건의 진상이 세상에 알려진다.

 

영화는 시청 광장에서의 시위로 막을 내리지만 뜨거웠던 6월 민주항쟁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이러한 결과를 얻기까지 있었던 사람들의 작은 움직임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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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연희(김태리)는 유일한 가상 인물이자 중립적 위치에 서 있다. 연희(김태리)는 길거리에서의 데모에도, 학교에서의 운동도 모두 관심을 두지 않고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기보다는 그 속에서 묵묵히 자신의 삶을 영위해 나간다. 과거 아버지가 노동조합 운동을 하던 중 아무런 성과 없이 실패한 것을 목격한 이후 작은 움직임으로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독재정권을 외면하며 살아가는 연희(김태리)는 수많은 등장인물 중 우리의 마음속 의문을 가장 잘 표현한 인물이다. 운이 좋게도 태어나보니 전쟁은 없고, 민주주의 사회이고, 상식이 통하는 시대를 사는 세대들이 영화를 보고 난 후 가지는 의문은 대게 비슷했다. ‘과연 나라면 어땠을까?’

 

나 역시 마찬가지로 영화의 배경이 된 시대를 경험한 세대가 아니기에 당시 사람들의 상황과 심경을 완벽히 공감한다거나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다. 마음속에 품은 의문을 오직 상상에 의존하여 예측하고 구현해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그런다고 세상이 바뀌나요?’라는 연희가 남긴 이 말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을 대변함과 동시에 작은 자극을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 움직임으로는 큰 파도를 만들 수 없다는 현실을 직시한 모습의 대변과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세상에 작은 돌이라도 던져 보라는 자극을 말이다. 우리는 이미 큰 파도로 세상을 뒤엎은 적이 있으니.

 

 

 

정의감이 아닌 당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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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은 자신의 위치에서 직업윤리에 따른 상식적인 행동을 행한다. 사건의 목격자인 오연상(이현균) 의사가 시신이 응급실로 가지 못하게 막으면서 역사는 바뀌기 시작한다. 서울대생이 고문을 받다 사망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신성호(이신성) 기자는 특종을 언론에 보도하지만, 윗선에서의 통제로 인해 언론은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정부에서는 이를 쇼크사로 거짓 발표한다.

 

대공 수사처는 관례대로 처리하기 위해 곧바로 시신을 화장하려 하지만 서울지검 공안부장(하정우)은 앞뒤가 맞지 않는 상황에 승낙을 거부하며 시신을 보존하라 명했고, 시신은 부검을 받게 된다.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 속에서 기자회견을 하던 중 치안 본부장(우현)은 목격자가 있다는 말실수를 범하게 되고, 윤상삼(이희준) 기자는 이를 놓치지 않고 물고 늘어진다.

 

언론사들의 앞다툰 목격자 취재 경쟁 속에서 경찰 측의 감시 때문에 오연상(이현균) 의사는 제대로 된 진술을 하지 못하고, 거짓으로 얼룩진 사건에 의심을 지울 수 없는 윤상삼(이희준) 기자는 진실을 알기 위해 화장실에서 몇 시간을 내리 잠복하다 그를 만나 정확한 사인을 듣게 된다.

 

이때, 오연상(이희준) 의사는 사인을 물고문이라 칭하지 않았다. 욕조가 있었고 물로 흥건한 바닥에 속옷만 입은 채 누워있는 박종철 군은 온몸이 젖어있었으며 폐에서 수포음이 들렸다고 했다. 그는 의사로서 본 대로 들은 대로만 이야기했다. 부검의도 마찬가지였다. 청와대에서는 시신의 부검을 진행한 황적준(김승훈) 박사에게 돈 봉투를 건네지만, 그는 액수를 확인해보지도 않고 부검 확인서에 ‘경부압박에 의한 질식사’를 표기한다. 부검의로서 본 대로 느낀 대로 기술한 것이다.

 

부검 확인서는 최 검사(하정우)의 손에서 윤상삼(이희준) 기자의 손으로 넘어오게 된다. 이후 정부에서는 각 언론사에 언론 지침을 내리지만 동아일보 사회부장(고창석)은 이를 무시하고 사건의 진상을 기사화한다. 의사는 본 대로 기록하고, 부검의는 부검한 대로 기록하고, 기자는 사실만을 언론에 보도했다.

 

 

제 양심이자 직업윤리였습니다. 학교에서 공부할 때 스승님이 늘 그랬지요. 부검을 잘못해서 사인을 틀리면 부검의를 그만둬야 한다고요.

 

- 황적준 박사의 인터뷰 중에서 (한겨레 2017.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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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선택이 세상을 바꾸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지금보다 훨씬 더 언론 통제가 심했던 시절이다. 사건의 진상이 기사화되는 걸 막기 위해 내려오는 말도 안 되는 언론 지침과 기자회견에서의 그 유명한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습니다.’의 대사를 통해 당시 얼마나 많은 것이 통제되었고, 대중을 우습게 보았는지를 알 수 있다.

 

열악한 미디어 환경이 조성된 사회일수록 언론의 역할은 더욱이 중요하다. 대중과 사회의 소통 창구가 오직 언론 하나뿐 이기에 사람들에게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정보는 곧 사실이자 현실이었다. 이 때문에 저널리즘은 그 무엇보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져야만 하며, 기자들은 기자윤리를 바탕으로 직업적 활동을 수행해야 한다.

 

비단 과거와 같은 시대적 상황뿐만 아니라 현대에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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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장항준은 처음 이 사건을 기반으로 한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실제 인물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사건을 깊이 알수록 자신은 이걸 두 시간 안에 담아낼 깜냥이 안 된다고 판단해 포기했다고 한다.

 

그는 사건에 관련된 각기 다른 사람들을 만나 저마다 보고 느꼈던 것을 인터뷰했고, 그 결과 마지막엔 모두가 공통된 말을 담아냈다고 한다. 자신이 한 건 정의감이 아니라 직업윤리와 상식에 따른 행동이었다고.

 

그렇다. 생각해보면 그들이 했던 선택에는 정의감도 포함되지만 당연함이 바탕이었다. 모두가 제 위치에서 제 할 일을 수행했을 뿐이다. 그들의 당연한 선택이 상식을 거부했던 사회에서 변곡점을 만들어냈고, 훗날 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탄생하였다.

 

*

 

영화를 보는 내내 이상하리만큼 많은 거물급 배우들의 등장을 보며 대체 누가 주인공인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고, 너무 많은 인물로 인해 조금의 혼란이 생기기도 했다. 이 의문은 2시간 30분의 러닝타임이 지나고 나서야 해결되었다. 많은 사람의 노력이 모였기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다는 것을. 이 사건에 대한 한 명의 주인공은 없고,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작은 움직임이 모여 큰 파도가 된 것임을.

 

실제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장준환 감독은 비밀리에 영화를 제작하던 중 태블릿 PC가 발견되고 또 다른 새로운 광장이 펼쳐지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그때도, 지금도 누군가는 대중을 속이려 하지만 사람들은 계속해서 움직였고 변화를 만들어냈다.

 

영화를 보며 끊임없이 거짓으로 사건을 은폐하려는 권력자들의 모습에 ‘어차피 대중들은 개돼지입니다.’라던 영화 <내부자들>의 대사가 생각났다. <1987> 속의 권력자들과 비슷한 행태를 보이는 이 대사에 내가 좋아하는 한 사람이 남겼던 말로 답하고 싶다.

 

“결국은 바보들이 세상을 조금씩 바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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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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