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네가 내게 주는 사랑만큼 너에게 줄 수 있길 바라 [동물]

너를 내 세상의 중심에 둔다는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었음을
글 입력 2021.06.24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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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눈에 선명할 시간들이 있다. 눈을 감으면 그날의 순간이 선연하게 떠오르는 그런 시간들이 있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그 겨울의 순간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그러니까 동네 친구들과 농구 수업을 하던 중이었다. 2월의 초입이었던 그날은 굉장히 추웠고, 우리가 너무 추워하니까 수업 중간에 쉬는 시간이 주어졌던 것 같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던 나는 핸드폰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었다. 당연히 쉬는 시간이 되자마자 가방에 넣어두었던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때 잠금 화면을 풀자마자 보인 건 문자 메시지 한 통이었다. 문자에 담긴 사진 한 장은 충격적이었다.


바로 강아지 사진이었다.

 

 

 

너를 처음 만난 날



무언가를 간절하게 염원해본 적이 있는가? 나의 경우에는 가지고 싶은 걸 특정하는 걸 꽤나 어려워하는 편이기에 뭔가를 가지고 싶다고 간절히 바란 적은 드물다. 그럼에도 온 마음 다해 가지고 싶었던 것이 몇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반려견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강아지를 너무 키우고 싶어 했던 나는 정말 끈질기게 부모님을 졸라댔던 기억이 난다. 얼마나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했냐면, 정말 가지고 싶었던 물건 중 하나인 닌텐도 DS를 포기하면서까지 산타 할아버지에게 강아지 장난감을 사달라고 했었다. 부모님은 완강하게 닌텐도를 사주지 않겠다고 하셨기에 산타 할아버지가 마지막 기회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닌텐도보다 강아지가 더 좋았던 것이다. 닌텐도의 희생 덕에 강아지 장난감은 생겼지만, 여전히 나는 반려견을 갈망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어린 동생의 기관지를 염려하셔서, 강아지를 키울 수 없음을 내게 이해시키려 애쓰셨다.


아빠는 상심한 내게 자주 말씀하셨다. ‘동생이 4학년이 되면 그때 강아지를 키우자.’고 말이다. 나는 그 말을 항상 기억하고 있었다. 원래 어린아이에게는 함부로 무언가를 약속하면 안 되는 법이다.


바야흐로 내가 자라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을 때, 내 동생은 4학년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엄마를 설득했다. 아빠가 약속했던 시간이 되었음을 강조하며 이번에는 꼭 진짜 강아지를 우리 집에 데려와야 한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피력했다. 강아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던 엄마는 곤란해 보이셨지만, 나는 더 이상 물러날 수 없었다.


꽤나 긴 대치 끝에 나는 승리했다. 드디어 강아지를 키울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것이었다. 그날부터 두근대는 마음에 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어떤 강아지를 만나게 될지 궁금하고 기대되는 마음은 자꾸만 부풀었다. 그렇지만 나는 강아지를 데리러 가기로 한 날에 앞서 말했던 농구 수업이 있었기에 함께 갈 수 없었다. 그래서 사진으로 우리 모모를 처음 만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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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이 내가 처음으로 모모를 봤던 사진이다. 강아지가 이렇게 작을 수 있다는 사실에 한 번 놀라고, 이렇게 예쁜 강아지가 우리 집에 오게 된다는 것에 두 번 놀랐던 것 같다. 주변에서 같이 쉬고 있던 친구들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한껏 신났던 것 같기도 하다.


수업이 끝나고 다급하게 달음박질쳐 돌아온 집에는 잠든 강아지가 있었다. 태어난 지 2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기가 얼마나 피곤했을까. 나는 우리 안에서 곤히 잠든 강아지 얼굴을 한없이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몽글몽글한 기분에 꼭 발끝이 하늘에 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모모가 우리 집에 왔다.

 

 

 

난 널 사랑이라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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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는 현재 만 9살으로, 나와 햇수로 10년을 함께 하고 있다. 아침부터 나갔다 온 산책이 지쳤는지, 지금 내 발치에 누워 쉬고 있는 모모는 ‘모모야’ 하고 부르면 고개만 들어 나를 쳐다본다. 그 눈을 보고 있으면 모모의 이름을 처음 붙였을 때가 생각이 난다.


모모 이름은 꽤나 민주적인 방법으로 정해졌다. 모모를 데려온 걸 초반에는 아빠한테 비밀로 했었기에, 나랑 동생, 엄마, 함께 살고 있던 사촌 언니까지 네 명이 각각 하나씩 이름 후보를 냈다. 동생은 나비를, 사촌 언니는 모모를 냈었고, 엄마는 초코를 냈다. 초코는 강아지가 갈색 푸들이라는 1차원적 이유를 근거로 나온 이름이었는데, 초콜릿이 강아지한테 좋지 않아서 내가 왜 강아지 이름을 청산가리로 짓냐고 놀렸던 기억이 난다.  내가 냈던 후보 이름은 심바였다. 작았던 모모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이 꼭 영화 ‘라이언 킹’에서 라피키가 아기 심바를 들어 올렸던 순간을 떠오르게 해서였다.


후보가 전부 모이고, 네 명은 각각 지인들 몇 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는 누가 어떤 후보를 냈는지는 비밀에 부친 채, 이름 네 개 중 선호도 순위를 투표로 받았다. 그 결과 가장 많은 선택을 받은 이름을 추려내는 것이 우리의 계획이었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심바가 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예비 중학생에게 상당히 잔혹한 것이었다. 내 친구들은 전부 하나같이 모모를 골랐다. 심바는 종합 3등을 했다. 내가 놀렸던 초코가 종합 2등을 차지했는데 그게 분해서 삐쳤던 기억도 난다. 아무튼 민주적이고 공평하며 반박의 여지가 없는 방법에 따라 우리의 강아지 이름은 모모가 됐다.


모모는 어릴 때부터 정말 똑똑했다. 배변 훈련을 따로 하지 않았음에도 배변판을 잘 활용했으며, 제 이름을 곧잘 알아듣고 부르는 사람에게 달려오기도 했다. 한 손에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그 몸은 항상 따뜻했고, 배 위에 올려놓고 코끝을 간질이면 내 손가락을 핥아주었다. 한 번은 산책을 나갔다가 실수로 리드줄을 놓친 적이 있었는데, 심장이 떨어질 것처럼 놀라서 모모를 잡으러 순간적으로 튀어 나간 게 무색할 정도로 모모는 제 자리에 가만히 서서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모모는 진짜 똑똑하다.


깊은 잠에 빠져 꿈을 꿀 때 모모는 종종 한숨을 쉬면서 몸을 떤다. 그럴 때 가만가만 배를 만져주면 금세 다시 고른 숨을 내쉰다. 내가 이 아이한테 느끼는 안정감을 모모도 나를 통해 느끼기를 매번 바라는데, 이럴 때 그걸 확인하는 느낌이다. 가만히 사랑한다고 읊조리면 또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내 손에 제 머리를 비벼온다.


어떻게 이 강아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가끔 나는 모모를 따라 바닥에 누워서 모모에게 말을 건다. 기분 좋은 일이 있으면 하나하나 이야기해 주기도 하고, 속상한 일이 있으면 모모에게 털어놓기도 한다. 그럼 모모는 꼭 알아듣기라고 한 것처럼 내 옆에 바짝 붙어 누워 내게 뽀뽀를 해준다. 어떻게 이 강아지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나는 가끔 무서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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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1년 전에. 모모가 심하게 아팠던 적이 있다. 집에 놓여 있던 독한 약을 모모가 주워 먹어서 급하게 병원을 찾았었는데, 검사 결과가 안 좋아서 입원을 해서 치료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입원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줄 몰랐던 나는, 모모를 입원시키고 리드줄을 손에 들고 혼자 돌아오면서 버스 안에서 정말 많이 울었다.


모모가 입원해있던 기간 동안 나는 면회도 갈 수 없었다. 나를 보고 모모가 흥분하면 위험하기 때문에 갈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 역시도 입원해있는 모모를 보고 울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그저 엄마가 찍어서 보내주는 모모 사진만 보면서 혼자 울었다.


모모는 퇴원한 후에도 꽤 오랜 시간 동안 약을 먹어야 했다. 알약과 가루약을 함께 먹어야 했는데, 먹이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모모 입장에서는 내가 퍽 미웠을 것 같다. 한 달 넘게 못 봤던 언니가 만나자마자 하루에 두 번씩 맛도 없는 약을 억지로 먹여대니 얼마나 미웠겠는가. 그래도 나는 해야 했다. 모모가 또 병원에 가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그 후 조금씩 차도를 보이던 모모는 이제는 더 이상 아프지 않다. 그런데도 나는 가끔 무서울 때가 있다. 모모가 아픈 게 나한테는 정말 큰 일이라는 걸 온몸으로 느껴버렸다. 언젠가 내가 마주해야 할 이별의 순간이 정말 가끔 떠오르곤 하는데, 그 생각들을 억지로 지우면서도 나는 무섭다.


그래서 매번, 모모와 함께 하는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나중에 후회하고 싶지 않으니까.

 

 

 

언제나 고맙고, 또 미안한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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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모의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 하지만 그게 또 마음대로 쉽지가 않다. 모모가 어릴 때는 사촌 언니랑 같이 살았기 때문에 사촌 언니가 모모를 열심히 돌봐줬었다. 내가 하는 거라고는 산책에 따라 나가거나 모모가 목욕을 한 후에 드라이기로 말려주는 것, 아침에 밥을 주는 것뿐이었다.


지금은 사촌 언니와 함께 살지 않아서 모모를 주로 내가 돌보고 있다. 아침마다 밥을 주고, 간식을 챙겨 주고, 식기를 씻어주고, 빗질을 해주고 함께 산책을 나가는 등, 목욕을 제외한 모든 케어를 도맡게 되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부족하다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다.


되도록 매일 산책을 나가려고 하고 있지만, 하루씩 산책을 빼먹는 날도 있다. 저녁밥을 정해진 시간보다 늦게 준 날도 있다. 모모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청소기를 돌리는 사람도 나고, 두 번째로 싫어하는 빗질을 시키는 것도 나다. 먹고 싶어 하는 게 뻔히 보이지만 간식을 너무 많이 줄 수는 없으니까 포기시키는 것도 나고, 모모가 정말 좋아하는 장난감인 헌 양말을 빼앗아 세탁기에 넣는 사람도 나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다툰다. 모모도 이제 다 커서 자기주장을 완강하게 펼칠 줄 아는 의젓한 강아지가 되었기 때문에 마음에 안 들면 나한테 그르렁거리곤 한다. 그렇게 다투고 나면 주로 한 시간 정도 내에 모모가 화해 요청을 해 오기 때문에 일단락되기는 하지만, 길게 싸웠을 때는 하루 정도 냉전한 적도 있다. 그럴 때마다 참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는 좋은 주인이 아닌데도 날 사랑해주는 모모가 항상 고맙고, 미안하다. 그 애가 내게 주는 사랑만큼은 꼭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모모에게서 사랑을 주는 법을 많이 배웠다. 내 안에서 차오르는 사랑을 느낀 것도 모모에게서 느낀 게 처음이다. 나는 사랑을 잘 믿지 않는 편이지만, 내가 모모에게서 느끼는 이 감정이, 그리고 모모가 나를 보는 눈에서 느껴지는 그 감정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것보다 큰 사랑은 내게 없을 거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언제나 고맙고, 또 미안한 내 영원한 친구 모모가 아프지 않길 기도한다. 오래도록 건강하게 나와 함께 거리를 걷고, 내 배를 베고 누워 잠에 들고, 좋아하는 간식을 마음껏 먹으며 행복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내가 일을 나가거나 약속이 있어 나갈 때마다 혼자 남겨지는 모모에게 항상 미안하지만, 그만큼 모모와의 시간에 진심을 다하는 내 마음이 이 아이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다.


내 모든 기쁨의 원천에게 이 글을 바친다.

사랑해, 모모야. 아프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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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시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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