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우울과 시간 [사람]

베르그송의 철학이 내게 주는 여운
글 입력 2021.06.22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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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순간 중 하나인 펠트공예의 시간

 

 

나에게 시간은 무척 상대적이다. 과거의 좋았던 순간은 너무도 빠르게 지나간 듯 해서 덧없고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반대로 끝이 보이질 않아 두렵다. 어느 정도의 우울감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내가 현재 벌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마다 사람이 초라해지고 자꾸만 작아진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더 스스로를 갈아먹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주변을 둘러보면 다들 자기만의 일상을 씩씩하게 영위하며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과연 나만 이런 것인지 혼란이 가중된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데, 왜 나를 제외한 모든 타인의 삶은 가까이서 봐도 결점없는 희극처럼 느껴질까. 결국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 지금 마음이 힘들구나.

 

드디어 이번 학기 종강을 앞두고 있다. 지난 학기와 비교할 때 상당히 벅찬 4개월이었다. 대학원 수업 특성상 발표가 많았는데 불안장애를 겪고 있는 나로서는 줌 수업환경에 끝내 적응하지 못하였다. 여러 명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화면을 통해 실감하고 나면 심장이 너무 빨리 뛰고 그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정해진 발표시간이 길수록 나는 점점 어찌할 바를 몰랐고, 급기야 수업시간 전에 줌을 켜두고 하염없이 우는 나 자신을 발견하였다. 그러다보니 그냥 습관처럼 앉아서 하면 되는 공부도 마음처럼 잘 따라주지를 않았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못한 채 능률이 계속해서 떨어지는 스스로가 한심했다. 휴학을 고민해봤지만 대학원에 너무 늦게 입학하였다 생각하는터라 고작 이런 이유로 학업을 중단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마 휴학을 했어도 스스로의 선택을 끊임없이 의심하며 용납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자신의 스트레스는 결국 본인만이 해결할 수 있기에 스스로가 감당해야된다 생각하는 편이다. 타인에게, 심지어 가족에게도 내가 가진 마음의 짐을 털어놓기보다는 스스로 답을 찾으려 애쓴다. 물론 고민의 종류에 따라 때로는 주변인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가끔은 그들도 어쩔 수 없는 요인에서 심적 고통이 비롯되니 아마 본인이 제일 잘 알 것이다.
 
어차피 나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나 뿐이므로 입밖에 냈을 때 즉각적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면 굳이 폐 끼치고 싶지 않다. 누군가는 그래도 고민을 나누면 슬픔이 줄어들지 않냐하지만 나는 워낙 방어적인 성향이다보니 그런 방식은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이번에도 오롯이 혼자서 조금이라도 극복해보려 여러 가지를 시도하다가 우연히 베르그송의 이론을 담은 철학입문서적을 접했는데, 예상외로 상당한 위안을 받았다.
 
베르그송은 프랑스의 관념론 철학자로 분야는 생철학과 직관주의다. 그는 20세기 전반기의 철학사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한 사상가로 평가된다. 그의 철학사상의 주요 키워드는 ‘직관’, ‘지속’, ‘생명’, ‘창조적 성장’, ‘자유’이다. 그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사랑, 곧 생명과 사랑을 강조하며, 물질의 저항을 이겨내고 모두가 스스로의 삶을 더 높은 차원으로 고양하고 승화시키기 위하여 치열한 노력을 실시해야된다 주장한다.
 
베르그송은 유물론적인 입장에 반대하는 프랑스의 유심론 계보에 자리하지만 한편으로는 생물학이나 뇌과학 분야의 연구성과를 자신의 논거에 활용하였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그는 생명에 대한 논의를 인간에 국한하지 않고 생명일반과 우주 전반으로 넓힌다. 또한, 그는 고정 불변한 성질로서의 존재에 집중하는 전통 형이상학과는 대조적으로 생성과 운동에 대하여 논한다. 그는 지성일변도의 사변철학을 부정한다.
 
내 마음을 붙잡은 것은 바로 베르그송의 시간 개념이다. 그에 의하면 우리의 자아는 반복 불가능의 순수지속성을 갖는데 이는 물리적 시간과 구별된다. 물리적 시간이 순간들의 집합이며, 가역적이고 반복가능하며 운동체의 공간 상 위치에 불과하다면 순수 지속으로서의 시간은 끊임없는 흐름과 변화이며, 운동성 그 자체이고, 분할 불가능하고 순수한 질적인 것이며, 불가역적이고, 반복 불가능하며, 예견불능이며, 자유이자 동시에 창조이다.
 
그의 이론에서는 그저 부단히 과거가 되어가고 있는 미래만 존재할 뿐이다. 이 지점에서 나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현재란 형벌처럼 느껴질 때가 많은데 정작 그의 시간철학에는 현재 개념이 부재하니 이상하게 속이 시원했고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 그동안 언제쯤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일련의 요소가, 그리고 상황이 끝이 날지에만 초점을 두고 한없이 초조했는데 차라리 無라 말해주어 기뻤다. 그의 말처럼 우리의 삶이 미래를 새롭게 창조하는 행위와 이를 행하는 자유의지의 세계라면 내가 아예 무너지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찾아오지 않을까?
 
베르그송의 시간은 본질적으로 주관적이다. 따라서 행복한 순간의 시간이 빠르게 지나간다 여기는 게 지극히 당연하다. 애초에 시간은 주체의 연속적인 의식의 흐름, 즉 ‘지속’이 있어야만 체감된다. 나는 궁극적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으며 어떤 미래를 그려나가고 싶은걸까. 지금 당장 죽을 것처럼 괴로워도 모든 시련은 영원하지 않다.
 
이번 여름에는 당장 직면한 현재의 무게에 눌리기보다는 베르그송의 이론처럼 내 안에 내재된 자유의지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혜롭게 발휘할 방안을 차근차근 강구하고 싶다. 물론 당장 이 글을 적고 있는 순간조차도 자꾸 가라앉는 것을 보면 아직까지는 온전히 회복했다 말할 순 없다. 사실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수많은 사람들 중 ‘왜 내 인생만 이런걸까’, ‘살기싫다’, ‘뭐하러 태어났을까’ 등의 생각들로 인해 괴로운 누군가가 있다면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으로서 삶의 무게를 견뎌주어 고맙다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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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민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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